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 미술사학자 고종희와 함께 이상의 도서관 26
고종희 지음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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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와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도시들과 더불어,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되는 미술작품과 건축물을 가지고 있는 작지만 특별한 여러 도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 

이탈리아 하면 찬란한 역사와 예술이 먼저 떠오른다. 이 둘을 결합한 것이 바로 미술사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서의 외야을 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술사 전공자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예술 에세이다. 

, 라고 지은이가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정말 그런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건물을 내세운 표지- 특이한 소용돌이 무늬라 인상깊었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가 우선 마음을 사로잡았던 책이다. 이탈리아의 세 도시를 며칠 새 돌아다녔던 적이 있는지라 절로 관심이 가기도 했다. 생각대로 아주 수월하게 읽히고 뒤가 궁금해서 책장이 절로 넘어갔다.  

작가의 말마따나, 정말 이탈리아 미술품과 건축물 안내서이다. 밀라노, 베로나, 만토바, 파르마, 베네치아, 파도바, 라벤나, 피렌체, 빈치, 피사, 시에나, 피에트라산타, 로마, 폼페이, 우르비노, 아씨시. 자그마치 열여섯 도시를 다닌다.(헉헉.. o o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에 간단한 이탈리아 지도가 준비되어 있다. 그 지도를 보며 지은이의 행로를 따라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래도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또는 밀라노 정도의 유명한 도시에 아무래도 미술작품이 집중되어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완전한 무지의 소산이었을 뿐이다.  이탈리아 전역에, 이토록 여러 곳에 -게다가 소개 안 된 곳이라고 볼 게 없을 것 같지도 않다- 미술사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도 가치 만땅인 작품들이 쌓이고 넘쳐나다니. 지은이가 바로 나같은 사람들이 단순무지하게 생각하고 마는 게 안타까와서 숨차게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사실 지은이의 말을 듣고보면 보고싶은 작품들도 정말 많다... 봤던 것도 또다시 보고싶어지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다시 천천히 이탈리아를 다니며 아름다운 건축과 미술작품에 흠씬 빠져보고싶어진다. 이 책과 함께 짤막한(몇몇은 풍성한) 작품 소개와 숨은 이야기, 같은 것들로 무장한 뒤라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다시 이탈리아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더 참고하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정보의 가짓수는 풍부하다. 

그러나 미술사학자인 지은이가 말한 것처럼, 예술 에세이인가? 하는 데서는 약간 걸린다. 문학적 향기가 나는... 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은이의 미술사적 지식은 독자를 위해 충분할 것이고 스스로 느낀 감동의 깊이도 아는만큼, 일테니 무척 크겠지만, 그 감동이 어떤 문학적인 과정을 거쳐 독자에게 전달되기에는 밋밋하기 그지없다. 책을 읽는 내내, 정서적 공감을 거의 하지 못하고 정보를 따라 숨차게 다녔다. 지은이와 함께 생각을 공유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아쉬웠고, 예술 에세이라는 말에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마치 미술관람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사람이 그 이상의 공감을 청자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부당한 느낌 말이다.

어쨌거나, 이탈리아, 가서 천천히 다녀보고 싶다. 언제 그런 호사를 누릴 기약도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인류의 이천년의 세월이 연대기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그 곳을 특별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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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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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쪽 분량의 책 세 권, 적지않은 양이지만 또 쉬어가며 읽을 수도 없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그 비틀린 형태로 드러나는 내면들.. 처음에는 기이하여 대체 어째서 이렇게? 싶었지만 결국 이유있는 비틀림. 슬픈 행로다. 결국은 상처가 지배하는, 어린 시절의 풀지 못한 트라우마가 인생 전체를 지배하고 뒤틀어버린다는 아픈 이야기다. 살인 사건과 맞물려 추리소설의 형태가 되었다.  

지독한 트라우마가 있어도 누구나 그렇게 스스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두 피해자는 어린 시절, 밝은 태양의 시간을 빼앗기면서 무너진다기보다, 스스로를 다구지게 세워가면서 다시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들에게 가해할 수 없도록 칼날같은 장벽을 세워나간다. 동시에 냉혹함과 위해요소를 제거할 수 있을 만한 치밀함과 능력.. 같은 것들을 벼리면서. 그런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행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듯하다.  들여다보기만 해도 섬찟한 그 내면의 바탕은 역시나 아픔이라는 것. 그러니 그들이 걸어가는 그 위태로운 길은 결코 태양 아래가 아니라 밤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는 시선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서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자신에게만 빛이 되어주는 어슴푸레한 존재를 안고 가니 어쨌든 캄캄한 밤길은 아니다. 하얀 어둠 속을 걷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쓸쓸한 길은 분노가 아니라 아픔을 준다.  

한동안 일본 추리소설에 탐닉했더랬다.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히가시노 게이코, 기시 유스케... 이젠 익숙해진 이름들이다. 그럭저럭 서른 권 이상을 넘기니, 일본 추리소설, 이라는 것이 형태가 어슴푸레 잡힌다. 진짜, 일본 추리소설에는 어떤 특이한 유형적인 공통점이 느껴진다. 그들은 정말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타인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하고, 미리 짐작해보려고 한다. 타인의 생각에 이토록 관심 많은 사람들이라니...! 그들 소설에서는 너무나 자주 타인의 생각을 짐작하는 문구들이 등장해서 이건 일본 사람들의 공통되고 자연스러운 정신 현상인가, 하고 생각하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남의 생각에 관심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라니! 어쩐지 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듯한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정신 상태다. 며칠 전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수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차를 타고 파리에서 밀라노를 가노라면 프랑스 구간에서는 조용하다가도 이탈리아 국경만 넘으면 기차 안은 갑자기 시끌벅적해진다. 분명 승객은 많이 바뀌지 않았는데 자기네 나라에 들어오자마자 의기양양해서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들은 안으로 품지 않고 뭐든지 밖으로 발산해내는 사람들인 것 같다. 바로 그들의 발산 본능이 철학보다는 예술을 더 발달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고종희,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 여행을 떠나다>의 서문에서 작가의 말) 

그에 의하면, 발산 본능이 예술을 발달하게 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내면으로 들어가야 철학이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쩐지 그럴 것도 같다.. 주어진 환경이 그 집단의 인간의 기질을 결정짓고 그 기질은 예술적이니 철학적이니, 이런 형태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일본이나 한국이나, 굉장히 다른 조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읽어보면 너무나 다른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익숙하지 않은 그 느낌, 타인의 행동에서 언제나 생각을 더듬고 있다는 그 느낌이, 역으로 누군가 별 의미없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며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오싹하다. 남을 헤아리는 것은 배려의 품새로 읽히기도 할 것이다. 물론 행동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고, '나의 발산'과 '남에 대한 배려' 사이의 균형이 깨지고 억압된 자아는... 폭발성을 내재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엽기적인 이야기들이 생산되는 일본 문화의 특질은 그런 억압된 자아들의 기묘한 분출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간다. 그만큼 일본 소설에는 어떤 일반적인 흐름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에도 그런 예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이라기 보다는 작가적 특성으로 읽히는데 일본 작가에서는 그것이 일반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백야행>이라는 책 한 권을 읽고 (세 권이라 해야하나?..) 쓸 이야기는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저 몇 년 새 일본 추리소설(그 장르 외에도 어쩌다보니 일본 소설이라는 걸 여럿 읽게 되었다)을 읽다보니 쌓인 어떤 느낌 같은 것을 이참에 표현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일본 추리소설은 일본에서는 아주 유서깊은 장르이고 인기있는 분야이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금세 그 재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건져올리는 또 다른 감정은, 분명 두려움 같은 것이다. 어두운 심연과 같은 내면들, 그런 내면의 세계에서 발을 딛지 못하고 부유하는 영혼들.. 그런 영혼들에 마주치는 느낌은 내겐 거의 언제나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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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gogo 2010-01-2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 내면의 세계에서 발을 딛지 못하고 부유하는 영혼들..이라...좋네요^^

파란 2010-03-1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조금 읽었는데 님이 일본풍이라도 말하는 그런 두려움 같은게 조금 무섭더라구요. 몇권 읽지도 않았는데 오싹해져서 덮어버렸어요. 모방범 2권 읽고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거야. 하면서 (그때 갓난아기 키우던 때라) 그 뒤로 손이 안가네요.

2010-03-29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DSLR 사진의 완성 - 내셔널 지오그래픽 얼티미트 필드 가이드 내셔널 지오그래픽 포토그래피 필드 가이드 8
데비 그로스만 외 지음, 김문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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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이를 넘어서! 이 맘에 드는 책과 함께 시작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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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 2009 용산참사 헌정문집 실천과 사람들 2
작가선언 6·9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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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다 가기 전에 마음 먹은 일을 하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용산의 일을 잊지말아야겠다는 것. 2009년의 이 땅에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서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면 그 첫 번째가 내게는 용산이었다, 는 것이다. 일 년이 다 되어 다시 겨울이 왔고 이제  곧 새봄이 오고야 말겠지만, 순리대로 풀릴 기미가 아직은 보이지 않고 천천히 잊혀져가는 중인 그 일, 신문으로 티비로 잡지로만 보았던 그 일, 결국 광장의 촛불이 되지도 못했던 그 일,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에 생채기로 남아 가끔씩 서늘하게 만드는 그 일.  

이 책의 소개를 보다가 이 문장을 보았다. 

오늘 바로 이 땅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은 도둑이 아니면 바보일 것이다. 

조세희 작가의 말이다. 마음을 찌르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나는 혹은 우리는, 때로 행복했지만 결코 정녕 행복할 수가 없었다.  

뭔가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가기도 어렵고 어떤 할 일이 있는지도 모를 때, 문정현 신부님이 신문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보았다. 책의 수익금을 용산의 일에 어떤 식으로든 보탠다는 말이다. 거기는 당장 피해자가 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을 잊지않기 위해 알리고 추도하는 일이 있고, 해결하라고 촉구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걸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일들, 그 사람들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사고싶었다. 사서 좀더 자세히 보고,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는? 

또 한권을 구입해서 누군가에게 알리면서 선물한다. 그리고 꼭, 그에게도 좀더 자세히 보고, 다른 누군가에게 한권을 구입해서 알리면서 선물하라고 권할 생각이다. 그건 작고도 작은 일이지만, 그런 릴레이가 끝나지 않는다면, 그건 작고도 작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감히, 용산에 마음빚이 있는 '도둑도 바보도' 아니지만 딱히 어째야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많은 소박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이렇게 해보자고 권해본다. 우선 잊지 않기 위해 좀더 자세히 보고, 그걸 다른 한 명에게도 전파해보자고. 그게 올해 이 땅에서 크나큰 불행을 겪은 이들에게서 고작 한걸음이라도 더 멀어지지 않는 방법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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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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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를 수면 위로 떠올렸지만, 희망을 찾기까지는 사실은 요원한 현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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