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에서
진 크레이그 헤드 조지 지음, 김원구 옮김 / 비룡소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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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같은 작가의 책인 <줄리와 늑대>를 아주 흥미롭게 읽어서 다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그냥 동화, 라고 생각했다가 아주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서 혼자 사는 것을 꿈꾼다는 것. 누구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테마일 것이다. 하지만 꿈만 꾸는 것일 뿐이다. 덜컥 시작했다가도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일상인 걸.

작가인 진. C. 조지도 어릴 때 그런 꿈을 꾸었고 어느날 출발했다가 40분 뒤에 돌아왔다고. 그이의 딸도 어느날 숲으로 도망가겠다고 나섰다가 곧 집으로 돌아왔다고. 그리고 이 책 속의 샘 그리블리는 정말로 출발하고, 일년 정도를 혼자 숲에서 살아간다. 그의 숲에서의 생활이 어찌나 이 책에 생생히 살아있는지 이것이 실화인지 허구인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실화다, 라고 생각하고는 그곳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한다.)

도망가는 꿈을 꾸는 것과 실제로 도망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도망을 실제로 안 가봤으니 샘의 숲에서의 생활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에 불과한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불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왜 우리들은 일생에 한 일년이라도 이렇게 살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단 말인가? (일생에서 일년이라면 겨우 1/60 일 뿐인데.) 어째서 학교생활, 교회, 결혼, 직장.. 이런 것들은 척척 제도화 되어있다시피 하면서 우리의 인생에서 한 일년 정도는 이런 홀로인 시간, 자연과의 절절한 교감의 시간을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해놓지 않았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학교 과정을 거치듯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중의 여러 가지가 지금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샘은 어쨌든 내 꿈의 일부를 성취시켜주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솔송나무 집 속을 들락날락 거리는 꿈에 젖어 있었으니까...언젠가 숲으로 들어가게 될 때, 분명히 숲은 내게 마치, 샘 그리블리를 그 안에 품고 있는 듯 여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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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조금만 더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1
존 레이놀즈 가디너 글, 마샤 슈얼 그림, 김경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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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으로는 동화라고 한정짓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꼬마 윌리와 할아버지와 번개의 삶은 단순하고 정직하다. 게다가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삶이 또 그러하듯이 그들에게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그런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열살짜리 소년이지만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윌리는 주어진 현실을 천천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 자신과 자신의 훌륭한 벗인 번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는 도저히 선택하기 어려웠을 일을 결정하게 된다. 그것이 아니고는 평화로운 이전의 삶을 다시 찾을 수 없으리라는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결국은 전설적인 인디언 '얼음 거인'과의 격돌을 맞게 된다.

문장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서도 이럴 정도다.

윌리가 외쳤다.
'조금만 더, 번개! 조금만, 조금만 더!'
번개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결승선까지 30미터 남았다. 그때 번개의 심장이 터졌다. 번개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무 고통 없이.

그 간결함, 그러나 그것은 마치 수정 얼음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번개의 심장이 터졌다.> 다시 보니... 그 한 줄의 말이 너무나 중요한, 모든 것이었다. 그것이 다였다. 더이상의 말로서는 도저히 줄 수 없는 무게가 거기 다 실려 있었다고나 할까. 그리고...인디언 얼음거인은 그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자신의 존엄과 성실한 인간에 대한 우애를 지켰다. 윌리, 번개, 얼음거인. 그들이 함께 승자가 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마샤 슈얼의 고요한 그림들은 그 순간들을 더욱 깊이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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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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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에게 빌려서 봤는데 다 보고 나도 또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하지만 다 봤는데... 하며 망설이다가 몇 년이 지나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결국은 사게 되는 책이 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책들을 쌓아 놓고서도 자주 다시 보고 싶어져 기어코 손대게 하는 책이었다. 쉬우나 가볍지 않고 즐거우며 진지한.

<하늘 호수...>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인도란 도대체 이런 나라인가?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능한가? 인도인들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이런 사람들이 정말 지구상에 살고 있단 말인가? 나와 같은 시간대에?

지은이가 인도에서 겪은 크고 작은 모든 에피소드 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고 놀랍고 달라 보였지만, 책이 넘어가면서 그것들은 점점 같아보이기 시작했다. 예측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니까! 인도 사람이니까!

이 작가 말고 또 누가 우리에게 인도를 이렇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한번 먹어보지도 않은 코코넛 열매--황홀한 맛이라는--에 빨대를 꽂아 그 달콤하고 시원한 천상의 맛을 한껏 들이키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코코넛 열매를 그렇게 먹어보게 될 때, 이 책에서 만났던 인도는 내게 현실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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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방 일곱 동무 비룡소 전래동화 3
이영경 글.그림 / 비룡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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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압권이다. 이 그림책을 처음 본지 이년이 지났지만 아직 (어떤 분야에서) 이만큼 나를 사로잡은 그림책을 만나지 못했다. 그냥 그림책이라는 분야를 정말로 좋아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자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더 내가 보고싶어서 그림책을 구입해서 보다보니 오백권은 족히 넘을 듯싶은 그림책들 중에서도, 이만한 내공이 실린 그림책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이그림책을 만나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규중칠우쟁론기>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였던가? 빨강두건 아씨의 바느질 바구니 안에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고물거리고 있었던가? 서로 내세워 자기를 중요하게 여겨주라는 공명심, 그 고물거림에 역정을 내는 큰어른인 빨강두건 아씨, 그러자 실쭉 샐쭉거리며 삐끼는 모습들.--이부분의 묘사는 정말 이 그림책의 백미이기도 하다.

성질 급한 가위 색시는 방을 뛰쳐 나가려 하고 역시 노장인 골무 할미가 간신히 그 팔을 붙들어 말린다. 요조숙녀 청홍각시는 성질을 못 이기는 듯 이빨로 청홍실은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분을 삭이고 있다. 막내 격인 인두 낭자와 소심한 다리미 소저는 그저 신세야, 하고 다리를 뻗고 엉엉 운다. 역시 새침떼기 바늘각시는 남들에게 그런 모습을 안 보이려는 듯 아주 뒤돌아 앉아 고개만 외로 꼬고 있다. 자부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리는데 그 큰 키를 이불이 감당하지 못해 버선발이 쑥 나와있고 이마도 가리지 못한다.

이런 장면 뒤에 빨강 두건 아씨는 두목 노릇도 그를 받쳐주는 졸개들의 공이로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꿈을 꾸면서 허우적거린다. 역시 졸개들은 싹 무시당했던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위기에 몰린 두목을 구해내고 두목은 졸개들을 바라보고 아이고나, 하면서 그들의 공을 인정한다. 얼마나 절묘한 이야기인가!!

원래 이야기 구조가 그렇게 재밌고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 책을 만들어 낸 이영경씨야말로 대가의 솜씨를 지녔다. 그림새, 색깔, 그 여덟 인물들의 면면들을 표현해내는 섬세함, 아름다운 우리의 옛 도구들을 살짝살짝 배치해 보여주는 배려까지, 게다가 그 표정들의 분방한 변화까지 너무나 섬세하면서도 시원시원해서 정말 감탄을 연발하게 만든다.

공연히 우리나라 그림책을 조금씩 아랫잡아 보는 화가인 후배에게 이 그림책을 보여 주었더니 완전히 입이 쑥 들어가버렸다. 이런 그림책은 본 적이 없다나! 게다가 요즘 내게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착한 미국인 미쉘에게도 언젠가 이 그림책을 내 힘으로 영역하여 소개하리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 집에 가보면 우리 집보다 더 많이 한국의 고물들이 지천으로 굴러다니는데 그이가 이 책을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진심으로 이 그림책을 만나게 해준 이영경씨와 비룡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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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조끼야 비룡소의 그림동화 24
나까에 요시오 글, 우에노 노리코 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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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호호 히히. 우리집 그림책 애호가 세명이 함께 낸 소리다. (각각 40, 12, 7세인, 순수 그림책 애호가이다) 엄마인 내가 그림책을 허벌나게 좋아하는 관계로 우리 아이들도 그림책을 벗하며 지낸다. (?? 다른 집에서는 자주 이 관계가 반대인 것을 봤다) 아름다운 그림책, 예쁜 그림책, 웃기려고 애쓰는 그림책, 애쓰는 것 같지도 않게 진짜 웃기는 그림책, 의미심장한 그림책, 고요한 그림책...등등 여러가지 그림책이 있는데 이 그림책은?

반복, 단순함, 간결함, 그리고 천진함. 유머 그림책의 모든 조건이 이 그림책에서는 유쾌하게 살아난다. 생쥐가 입고 있는 조끼를 오리, 원숭이, 물개, 사자, 말, 코끼리가 차례로 입어보다보니 '조금 (!!) 끼나?' 순서대로 입다보면 단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니까...이야기가 되는데... 정말 이야기가 되나? 이야기가 된다 싶어서 재밌는 거겠지.

회복불능으로 늘어난 조끼를 발견하는 생쥐의 팔짝 뛰어오를만큼의 놀라움, 그 뒷장의 쳐진 어깨와 훌쩍거리는 뒷모습에도 불구하고 실처럼 늘어나버려 질질 끌리는 빨간 조끼에 우리 셋은 우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생쥐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어쩔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그 무한한 조끼의 가능성에 대해서 실컷 웃었다. 게다가 조그맣게 보여주는 그 행복한 결말에서는 그 미안했던 마음까지도 오월 하늘에 구름 흩어지듯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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