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로디아의 비밀 ㅣ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평점 :
책을 읽고보니 어째서 이 책이 뉴베리 상을 받았는지, 어째서 평점에서 보듯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새롭고도 재미있다. 그 속에는 아이들이 보이고, <비밀>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아이와 엮어지는 어른도 보이고, 무엇보다 미술관에서의 비밀스런 생활이 듬뿍듬뿍 우리를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한다. 이 책을 반짝거리게 하는 한 장면. 가출해서 미술관에서 숨어 지내는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목욕을 안 하고는 하루도 더 못 참겠어!' 그러나 어떻게? 분수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물론 둘은 일반인이 아니니까 들어갈 수 있다!) 뜻으로 쳐 놓은 벨벳 밧줄을 지나, 화장실에서 구한 빻은 비누로, 유쾌하게 목욕을 한다. 한밤중 분수대에서의 유쾌한 목욕이라니! 뒷면, 작가가 직접 그리기도 한 그림에서 그 장면은 얼마나 빛나는지... 꼬마 제이미는 더 즐겁다. 분수 바닥에서 수입을 챙기는 것이다. 자그마치 2달러 87센트나! 둘은 한밤의 축제를 즐기고 우리는 그 축제를 감탄하며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해낸 작가가 놀랍기만 하다.
미술관에서의 가출이 미켈란젤로 조각상의 비밀로 이어지면서 두 아이들의 가출보다는 비밀 쪽으로, 더 나아가 바실 부인과 함께 나누는 인생의 비밀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왜 이 이야기가 바실의 서술로 시작되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알고보니 그 설정조차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우아하기까지 한 가출 이야기는 흥미로왔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내부는 눈에 잡힐 듯 섬세하게 다가와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도 알싸하다. 그 부인과 클로디아가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 철학' 하는 것도 이 책을 풍요롭게 한다. 이 한권의 책에서 풍성하고도 조화로운 여러가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작가가 썼다는 다른 책, <내 친구가 마녀래요>를 꼭 읽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한가지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한 것인데... <바실 E.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뒤섞인 서류철에서>라는 원제. 이런 제목을 두고 보면 <클로디아의 비밀>이라는 제목을 달고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이 책과 아주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뒤의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클로디아를 내심 주인공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 치밀하고 꼼꼼한 아이가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는 최대한 편안하고 안전한 가출을 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을 겪는대로 따라가면서 읽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 <비밀>에 촛점을 맞추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한대로 만일 앞의 제목을 썼다면, 읽는 이들은 바실 E.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그이의 변호사 색슨버그(클로디아의 친 할아버지이기도 한데)에게 서술해나가는 형태로 시작하는 이 형식의 매력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제목은 아주 길고 뭔가 모호해 보인다. <클로디아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보다 덜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제목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작가가 의도한 바도 있을 것이다. 번역한 이들도 물론 충분히 이 문제에 대해 논했겠지만, <클로디아의 비밀>이라는 제목이 너무나 클로디아의 시점을 따라다니게 한다는 사실은 이 책의 새로운 형식과 바실 부인의 시점을 약화시킴에 틀림없다. 하지만 물론 이런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대체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경우에나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그러긴 해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