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의 아이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
김재홍 지음 / 길벗어린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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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아이들>을 보니 김재홍님의 또다른 작품인 <숲속에서>가 생각난다. 둘다 다연스러운 그림 속에 또다른 그림이 숨어있도록 신기한 장치를 해두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런데 <동강의 아이들>은 다 보고나니, 뒤쪽에 이 그림책의 무대가 된 동강의 한 부분을 찍은 사진이 나왔다. 그 사진을 보고서야 작가가 실제로 동강에서 가졌던 바로 그 느낌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진에는 정말로 머리에 작은 보따리를 이고 장에 가는 어머니의 모습도 있었고, 큰새, 아기곰의 모습을 한 바위가 물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가의 상상이 거기서 시작되었으리라. 그리고 거기서 이야기를 풀어냈으리라.

이야기가 끝난 곳에 작가의 말이 있다. '물과 숲의 아름다움에 반해 동강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던 어느 날, 평소에는 있는 모습 그대로만 보이던 바위며 산이며 물이 모두 새롭게 보였습니다. 아니, 새롭게 보였다기보다는 그 동안은 못 보고 지나쳤던 모습들이 언뜻언뜻 다른 모습들로 다가왔지요. 어쩌면 저 바위는 오랫동안 물 위에 누워 누군가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든 순간, 그 바위는 착한 아기곰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옆에서는 큰새가 물을 차고 날아오르고 있었지요.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왔는지...' 이 그림책은 바로 이 순간 태어날 준비를 막 시작한 것이다.

이 책에서 김재홍님의 그림들은 편안하고 아름답다. 애정이 깃든 눈으로 바라본 작가의 시선에도 그 비결이 있겠고 동강이 지닌 그대로의 아름다움 덕택이기도 할 것이다. 편안히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중에, 오누이의 이야기가 그 풍경들을 끌어간다. 장날, 깨랑 콩이랑 팔아 순이 색연필도 사고 동이 운동화도 사주신다며 어머니는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장터로 가셨다. 오빠 동이는 어린 순이를 동강 가에서 긴긴나절 데리고 논다. 그러면서 순이와 동이는 강에서 큰새 바위와도 얘기하고 아기곰 바위에게도 물으며 지루함을 달랜다. 탄광가신 아빠도 동강의 바위에서 장에 가신 엄마도 동강에서 만나면서 논다. 그렇게 긴긴 나절 보낸 끝에 드디어 엄마는 저 모래밭을 자박자박 걸어오고 계신다.

너무 아름다운 동강 가를 따라가는 것은 즐겁다. 동이가 오빠답게 어린 순이를 달래느라 온갖 놀이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정답다. 탄광에 일하러 가신 아빠의 등만큼이나 넓고 단단한 바위를 타기도 하고...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오누이의 모습이 마치 옛날 이야기속 해와 달이 된 오누이마냥 정답고도 안스럽다. 다행히도 엄마가 해님이 다 지기 전에 오시니... 그 안스러움이 가신다.

이렇게 동강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순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이도 좋아해서 함께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여러번 읽다보니 내게 한가지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공감이 가고 이해도 되는데도 글맛이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이학년 정도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아이에게 읽어줄 때도 글이 살아있는 생생한 느낌으로 오지 않았다. 오빠와 어린 여동생의 모습도 어쩐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끼워넣어진 듯,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오누이의모습이 아닌가 싶고... 그러나 그 자그만 아쉬움도 그이의 아름다운 그림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동강의 모습 앞에서 봄눈 녹듯 사라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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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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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수퍼스타즈라...
야구에 대한 내 조촐한 관심은 고교야구에서 끝나버렸다. 프로야구 원년이라는 82년에는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니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도 끝나있었고, 그때는 그 정권의 3-S 정책이라는데 대한 반감으로도 웬지 프로야구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보다 관심을 가질 데가 너무나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삼미 수퍼스타즈라고? 단언컨데 그들의 경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야구 이야기라고?

책을 읽기전에 올해의 한겨레문학상으로 이 책을 뽑은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박범신이 쓴 글을 인터넷으로 먼저 보았다. '자본주의 세계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은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주제가 자본주의 세계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라고? 게다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자유자재 섞어 향기로운 이야기로 빚어낸다'고. 정말로, 내가 훌쩍 건너뛰어 오히려 궁금해진 프로야구의 이야기와 그 통렬한 비판의식의 합주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책을 구입한 뒤,
다음날 버스를 타고 청주로 가는 길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작가의 수려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고, 그 촌철살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휘어잡았다. 나는 버스 안에서 숨을 죽여가며 킥킥 웃다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 없을 때 다행히 버스의 소음에 묻히기도 했다. 하여간에 남들에게 피해를 안 끼치면서, 내가 우스운 꼴을 안 당하면서 즐기느라 애를 먹었다. 한가운데로 치달을 때까지 너무 재미있어서 꼴딱 넘어가는 줄 알았고, 쪽수가 넘어갈수록 은근히 불안해졌다. 벌써 반 밖에 안 남았네!!

언뜻,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생각났다. 절대로 절대로 가볍지 않은 주제를, 그토록 시종일관 무겁지 않은 목소리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랄까, 아예 삶이랄까, 그런 힘이 부러웠다.

나는 주인공이 겪었던 그 시기를 비슷한 느낌으로 겪었다. 그때 주인공은 갓 중학교에 입학한 시기였고 나는 이미 대학생이긴 했지만, 주인공의 정신 연령이 나보다 훨 높고 조숙했던 탓인지 나는 그의 성장을 따라가며 내 성장을 회고했다. 작가의 말마따나 나도 모르게 프로가 되려고 애쓰며,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진 자의 부담속에서-- 어찌해도 프로가 못 되는 나의 유전자와 배경을 원망도 하다가 드디어는 비장하게 포기하기에 이르러 이즈음에는 겨우 조금 편안한 루저로 살던 중이다. 평생을 그 직업으로 살아가야 할 것 만 같던 생각도 희한하게 느슨해져 십오년 쯤을 이어오던 전문직도 놓아버렸다. 전문가의 세계에서 발을 빼자 한동안 매달려왔던 줄에서 툭, 하고 떨어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던 바로 이때 이 책은 복음처럼 나타났다. 읽는 동안이나마 나는 완벽한 루저로 거듭나는 나의 환영을 느낄 수도 있었다. 나에게 임무를 기대하고 있는 온갖 속박들이 그래도 아쉽다는 듯 아스라한 메아리를 남긴 채 사라져 가는 환영. 내 몸이 부풀부풀하더니 그냥 무게를 잃고 둥 떠오르는 가상의 체험. 나도 참 어지간히-- 뭔가 해야하는,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무거운 삶에 짓눌렸던 것 같다. 최근에야 겨우 내게 원래 주어져있던 웃음과 개구진 면, 가벼움들을 알아채고 기꺼이 즐기던 참이었다. 느슨하고 유쾌하게, 내가 원래 해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일들에 대한 사명감들을 조금 비껴서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비껴서서 그것들을 보기 시작하자 그 거리 사이에서 조금씩 웃음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라, 이 책은 나를 더 강력한 힘으로 띄워버렸다. 약발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고, 장밋빛의 환상도 아직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하여간에 저어기,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이 있다(책을 펴면 언제나 있다), 는 생각을 하면 다시 발걸음이 느긋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느긋해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좀더 느린 속도로 회전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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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2-0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감동입니다.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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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부 팔렸다는 그이의 시집 말고는 읽은 게 없지만, 당당한 듯 휑한 듯 서있는 그이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이의 그 모습에서는 성가신 것에 대한 짜증이 묻어있는 듯 보였고, 순전히 내가 받은 첫 인상은 다소 지친 듯해 보였다. 그런 모습조차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시대의 우울이라는 제목도 상당히 지적인 느낌이다. 고르는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좀, 싫었다. 왜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서평 같은 것도 하나 보지 않고 책을 골라서인지 나중에는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느낌조차 궁금해질만큼, 읽는 동안 곤혹스러웠다. 간신히 다 읽고, 정말로 궁금해서 다른 이들의 느낌들을 들춰보니, 대부분이 작가에게 공감과 흠모를 보내고 있어서, 글쎄, 왜 싫은지도 모르는 채 싫다고 느끼는 나에게는 저으기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정말 좋은가? 뿐만 아니라, 뒷면 박재동과 주철환의 소감을 보면, 나는 더 혼란스럽다. 정말 그런가? 정말로 나는 안 그랬다.

내 서평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몸달아하기가 좀 민망하지만, 아마도 이 책이 왜 그리 맘에 안 드는지 스스로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별 그럴 것도 없는 내용들인데..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그 성마른 느낌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너무 주관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써본다. 좋은 책 기쁜 마음으로 좋은 얘기하는데만 익숙해서, 거슬리는 느낌은 잘 표현해보지 않았다. 아주 아닌 책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내게 이 책은, 딱 뭔가 주절거리고싶을 만큼 거슬리고...끝까지 보게 되는데 계속 어떤 거부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이 책의 작가 최영미에게는 어쩐지 너무 많은 집착, 저절로 우러나지 않는- 세우고 싶어하는 고집,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많은 것에 대한 짜증, 냉소적인 시선, 특별해야한다고 스스로 느끼는 듯한 무거운 부담감, 이런 것들이 느껴져서 실망스럽다. 작가가 가진 철학, 사색의 깊이가 마치 포장된 듯 느껴지고, 강박적으로 읽힌다. 그건 정말 부담스럽다. 자연스런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학적이고 독선적인 작가의 시선이 거북하다. 하여간, 깊지 않되 깊음을 위장하는 듯 하달까. 깊음에 대해 강박적이라 할까.

내게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주관적인 내 느낌일 뿐이다. 다들 자신의 상태와 또 깊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뿐이겠지만, 내게 왔던 것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고 한 여행, 자기의 껍질의 견고함을 확인하듯 쓴 기행문을 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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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의 모험 풀빛 그림 아이 31
이름가르트 루흐트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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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작가가 자전거를 타고 국도를 달리는데, 국도 위의 나무그림자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조금 후에 커다란 애벌레가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보았다. 작가는 그때 자신이 어려울 때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R. O. 비머의 시 '풀쐐기가 운 좋게 길을 건너네' 가 생각이 났다. 정말 그 시가 생각날 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책이 탄생했다.

멋진 그림과 이야기, 그리고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정말 이 그림책이 좋았다. 책에서 그토록 많이 보았던, 고약한 냄새가 나는 빨간 뿔을 무기로 갖고 있을 뿐인 선명한 초록, 빨강, 검정의 산호랑나비 애벌레. 그 애벌레가 주인공이다. 애벌레는 그냥 저 건너편의 풍부한 먹이를 보고는 그쪽을 향하지만, 도로와 그 위를 느릿느릿 기어서 지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애벌레였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물론 애벌레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도로에 대해서 알 리가 없다. 그래서 간다. 운 좋게 길을 건너고 그리고 어느날 멋진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우리의 삶도, 비록 도로가 위험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얼마나 미지의 것이던가. 그 앞에 도사리고 있을 숱한 위험들, 아픔들을 모르는 채 우리는 그냥 간다. 마치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이. 작가가 첫 장에 '길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라고 박아두어서인지, 맨 끝에 시인의 풀쐐기의 시를 보아서인지, 애벌레가 가만 응시하고 있는 그 보랏빛으로 어른거리는 도로가 내 앞에 놓인 삶의 길만 같다. 쌩쌩 달리는 커다란 트럭과 박을 지도 모르는데, 노란 색의 부리를 가진 까만 큰 새가 다가올 지도 모르는데... 무기라고는 고작 빨간 뿔 하나만을 믿으며 간다.

어떤 애벌레는 트럭과 박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노란 부리의 새에게 먹히기도 하리라. 그리고 또 어떤 애벌레는 저너머, 하얀 꽃 피는 풀이파리들을 먹을 수도, 언젠가 아름다운 산호랑나비가 될 수도 있으리라. 내 앞에 어떤 길이 있을지를 모르는 채 그냥 그렇게 앞으로 간다.

산호랑나비 애벌레가 한걸음 한걸음 나가고 있는 모습을, 그 아름다운 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받게 되는 책이다. 작가가 의도한 '인생의 길'까지를 보지 않더라도 애벌레의 길,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답다. 책 맨 뒤,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견실한 예술적 훈련을 통해 자연과 자연의 기적을 정겹고도 놀라운 관찰로 잡아내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자신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기 위해 색채와 형태의 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이의 특별한 훈련과 공부는 이렇게 깊은 울림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글은, 애벌레를 고요히 바라보는 듯,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씌어져 더 깊은 느낌을 준다. 고요한 관찰자의 시점, 내 삶의 길을 앞에 두고 고즈넉히 보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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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 안녕 하야시 아키코 시리즈
하야시 아키코 글ㆍ그림 / 한림출판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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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보니 다시 새로운 마음이 든다. 이미 아이들이야 작은 녀석이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이 책은 벌써적에 졸업을 해 버렸다. 그래도 가끔 한번씩 꺼내서 양념처럼 보여주면, 잊을만 할 때 한번씩이어선지 여전히 씩 웃으며 좋아한다. 내가 가진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이 아이들을 키우며 하나씩 구입하다보니 열 권도 넘었지만, 이 책은 여전히 가장 눈에 띄는 그림책이다. 조금 큰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들은 그렇지 않은데 이 <달님 안녕>과 <싹싹싹> <손이 나왔네>, 또 <구두구두 걸어라> 까지는 정말 한 마디로 놀라왔다.

이렇게 유치해보이는 색깔로, 이렇게 단순한 그림으로 어떻게 이렇게 좋은 걸 만들어낼 수 있지? 거의 불가사의한 느낌이었다. 달님이고 아이들이고 할 것없이 볼때기는 왜 그리도 촌스럽게 빨간지... 거의 탄성이 나올 수준이었다. 그러나 결국 좋은 것은 좋은 것. 아무리 촌스러워도 아무리 단순하고 또 유치해도,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그 티없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른인 나마저도 감염시켜 다시 보니 그만, 그 유치함도 매력이라. 메롱, 하는 달님에 나도 메롱, 하고 말았다.

그림이나 색은 어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해도, 이야기는 절대 유치하거나 촌스러운 게 아니다. 이 책에는 한 순간 깨닫게 되는 밤하늘의 즐거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이들과 무심코 보름달의 하늘을 보고 있다가 그 티없이 맑고 둥근 달을 가리는 미운 구름을 볼 때가 있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그냥 구름이 가리고 좀 있으면 또 달이 환해지고... 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보고 난 뒤는 물론 그게 아니다.

구름이 하나도 밉지가 않다. 그냥, 잠시 달님과 이야기를 하는 달님의 친구다. 어떤 때는 좀 이야기가 길다... 한동안 나와 아이들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림책 하나로 하여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달님과 구름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림책 한 권이 우리 아이들과 나를 따뜻하게 이어주고 또 밤하늘 저 높은 곳의 비밀 한 가지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었지.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들 앞에서 그림책과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마지막에 덤으로 이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들은 너나없이 빙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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