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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미 수퍼스타즈라...
야구에 대한 내 조촐한 관심은 고교야구에서 끝나버렸다. 프로야구 원년이라는 82년에는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니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도 끝나있었고, 그때는 그 정권의 3-S 정책이라는데 대한 반감으로도 웬지 프로야구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보다 관심을 가질 데가 너무나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삼미 수퍼스타즈라고? 단언컨데 그들의 경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야구 이야기라고?
책을 읽기전에 올해의 한겨레문학상으로 이 책을 뽑은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박범신이 쓴 글을 인터넷으로 먼저 보았다. '자본주의 세계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은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주제가 자본주의 세계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라고? 게다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자유자재 섞어 향기로운 이야기로 빚어낸다'고. 정말로, 내가 훌쩍 건너뛰어 오히려 궁금해진 프로야구의 이야기와 그 통렬한 비판의식의 합주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책을 구입한 뒤,
다음날 버스를 타고 청주로 가는 길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작가의 수려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고, 그 촌철살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휘어잡았다. 나는 버스 안에서 숨을 죽여가며 킥킥 웃다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 없을 때 다행히 버스의 소음에 묻히기도 했다. 하여간에 남들에게 피해를 안 끼치면서, 내가 우스운 꼴을 안 당하면서 즐기느라 애를 먹었다. 한가운데로 치달을 때까지 너무 재미있어서 꼴딱 넘어가는 줄 알았고, 쪽수가 넘어갈수록 은근히 불안해졌다. 벌써 반 밖에 안 남았네!!
언뜻,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생각났다. 절대로 절대로 가볍지 않은 주제를, 그토록 시종일관 무겁지 않은 목소리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랄까, 아예 삶이랄까, 그런 힘이 부러웠다.
나는 주인공이 겪었던 그 시기를 비슷한 느낌으로 겪었다. 그때 주인공은 갓 중학교에 입학한 시기였고 나는 이미 대학생이긴 했지만, 주인공의 정신 연령이 나보다 훨 높고 조숙했던 탓인지 나는 그의 성장을 따라가며 내 성장을 회고했다. 작가의 말마따나 나도 모르게 프로가 되려고 애쓰며,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진 자의 부담속에서-- 어찌해도 프로가 못 되는 나의 유전자와 배경을 원망도 하다가 드디어는 비장하게 포기하기에 이르러 이즈음에는 겨우 조금 편안한 루저로 살던 중이다. 평생을 그 직업으로 살아가야 할 것 만 같던 생각도 희한하게 느슨해져 십오년 쯤을 이어오던 전문직도 놓아버렸다. 전문가의 세계에서 발을 빼자 한동안 매달려왔던 줄에서 툭, 하고 떨어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던 바로 이때 이 책은 복음처럼 나타났다. 읽는 동안이나마 나는 완벽한 루저로 거듭나는 나의 환영을 느낄 수도 있었다. 나에게 임무를 기대하고 있는 온갖 속박들이 그래도 아쉽다는 듯 아스라한 메아리를 남긴 채 사라져 가는 환영. 내 몸이 부풀부풀하더니 그냥 무게를 잃고 둥 떠오르는 가상의 체험. 나도 참 어지간히-- 뭔가 해야하는,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무거운 삶에 짓눌렸던 것 같다. 최근에야 겨우 내게 원래 주어져있던 웃음과 개구진 면, 가벼움들을 알아채고 기꺼이 즐기던 참이었다. 느슨하고 유쾌하게, 내가 원래 해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일들에 대한 사명감들을 조금 비껴서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비껴서서 그것들을 보기 시작하자 그 거리 사이에서 조금씩 웃음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라, 이 책은 나를 더 강력한 힘으로 띄워버렸다. 약발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고, 장밋빛의 환상도 아직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하여간에 저어기,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이 있다(책을 펴면 언제나 있다), 는 생각을 하면 다시 발걸음이 느긋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느긋해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좀더 느린 속도로 회전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