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으로 걷는다 웅진책마을 8
오카 슈조 지음, 다치바나 나오노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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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멋있다!

스무살이 넘도록 한 번도 혼자서 앉아보거나 걸어본 적이 없다. 누워만 있어서 몸은 오그라지고 아이처럼 조그마하다. 그런 다치바나의 몸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이리 뒹둘, 저리 뒹굴'이 다이지만, 그러나 물론

"우, 우리도 산책 정도는 하고 싶습니다!" 이다.

그래서 한다. 어머니가 하루 나들이를 위한 준비물을 챙겨서 집앞 거리에 다치바나를 내놓으면, 다치바나는 혼자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거미줄에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듯하며 ^^ 자신을 싣고있는 침대차를 밀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 나타나면 말을 걸고, 밀어주기를 부탁해본다. 안 될 것도 없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약간은 당황하며 약간은 재미있어하며 동의하면, 다치바나의 외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친구네 집까지 가는 동안, 한두 사람만 만나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 여러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다치바나는 만나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그저 영향이 아니라 감동을 주고받기도 한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앞에 두고 보면 누구나 약간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다치바나는 물론 어려운 처지에 있고, 도움을 주기보다는 받을 처지이다. 모두 그걸 느낀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치바나의 용기있는 행동, 활달한 사고방식, 낙천적인 삶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당신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는걸요. 제가 당신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당신도 저에게 힘을 주고 있어요."

물론, 이런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남한테 폐를 끼치면서까지 산책을 하려는 심보를 모르겠구먼. 무엇보다 그런 몸으로 혼자 밖에 나올 생각을 하다니, 너무 뻔뻔해!" 

이럴 때, 모든 약한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일까...!'  사실 이것은,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생각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생각에 좌절하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보면, 그래서 상황이 달라지고 보면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우리 모두는 누구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지은이 오카 슈조의 말처럼,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힘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 다치바나가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않고 그 모습 그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는 일은 우리에게 오히려 신선한 깨달음의 기쁨을 안겨준다. 인생, 그림자만 보지 말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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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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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말 경에 이 책을 읽고는 너무나 흡족하고 또 한편 안타까워서 한참을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지냈다.

  사실상 '번역'이란, 평범한 책읽기를 하는 우리에게는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일인데도 대체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읽고 만족스럽든 아니든, 원서를 구해서 볼 생각까지는 하기가 어려운 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계속 읽다보니 나름대로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서도 입장이 생겨서, 믿는 번역가도 생기고 어설픈 혹은 엉터리가 분명한 번역에 대해서는 '원본에는 대체 뭐라고 되어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어보기도 한다. 실제로 대조해보는 경우도 있는데, 가끔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번역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번역은 사실상 이렇게, 내 책읽기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책을 읽고는 번역의 중요함에 대해서, 또 어이없게도 우리나라에서 번역을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게 벌써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도 번역의 문제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지, 지금까지도 김용옥이 제기한 그  문제들은 내게 번역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내 책읽기에도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십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역에 대한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나를 돌아보면, 당연히 거쳐야 할 번역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변변하지 못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다 드디어 이 책, 본격적으로 번역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우리나라의 번역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이 책을 만나니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격이었다. 다행히 이 책은 번역을 하고 있거나 희망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의 독자에게도 다가올 만큼, 주제가 절박, 뚜렷하고 문장은 유려하며, 난해하지 않다. 번역에 대해 막연히 느끼고 있던 문제의식들이 장을 거듭할수록 선명해진다. 쪽수를 넘길 때마다, 그만큼 흡족했고 또, 현 상황은 안타까웠다.

  이 책은 많은 학자들에게, 혹은 번역을 하고 있거나 꿈꾸는 이들에게 텍스트로 주어질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지은이의 지적처럼, "모든 인류 역사의 문화 교류에서 번역은 보편적 선결 과제이다.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 또한 이 세상 어느 곳에 존재하는 어떤 탁월한 사상, 유려한 문장도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나 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상 어느 문명이든 다른 문명과 처음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수행하는 작업은 바로 번역이라고 한다. 그 중요함을 깨닫고 투철하고도 열린 마음으로 그 작업에 임한 곳에서만 새로운 문명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렇게 새로운 문명을 만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또한 새로운 문명을 꽃피운 예가 제시되어 있다. 저자가 인용하고, 소설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 수사가 인용하였거니와, 번역의 시대인 12세기에 프랑스의 수도사 베르나르가 처음 했다는 말은 인류와 문명의 한 단면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지혜 가득한 말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와 같아서, 그 어깨로부터 거인들보다 더 멀리 많은 사물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우리의 시력이 예민하거나 우리의 재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거인다운 위대함에 의해 지탱되고 고양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양해야 될 일이다. 이렇게 당연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얼마나 도외시되었나를 돌아보는 것, 또한 이 책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 중의 하나다. 책의 앞부분에서 번역의 중요함과 실제의 무게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애쓴 지은이는, 이어 우리나라 번역의 슬픈 자화상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그린다.

  "번역이 궁극적으로 정보의 대중화,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때, 아무리 우리의 열악한 조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런 중요한 작업을 경시한다는 것은 '지식인의 반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지은이는 깊은 어둠 속에서 그 어둠을 헤치고 빛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할 이들이야말로 지식인이 아니었던가를 각성시킨다. 어둠에 묻혀버린 지식인을 그 상황과 함께 이해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책의 상당 부분을 번역의 실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수준 미달의 번역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더라도 '번역'이라는 작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성, 즉 "원문에 대한 충실성이냐 텍스트의 심리적 의미에 대한 충실성이냐"하는 문제에 접근한다. 이러한 두 주장의 대립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어온 번역 논쟁의 핵심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유명 번역가 이세욱의 번역에 대해 2003년 신문 지면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한 프랑스어 번역가 백선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번역에 대한 번역가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문제는 사실상 나에게도 번역의 딜레마로 여겨지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왔다.

  "번역에서는 원작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충실성'과 번역문의 '가독성'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번역에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충실성을 희생하여 가독성을 높이느냐, 아니면 가독성을 희생하더라도 충실성을 기해야 하느냐의 기로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오래고도 내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역주를 필수적으로 둘 것을 역설하고 더불어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142~2쪽)  번역자들 사이에 충실성과 가독성을 두고 성향이 갈라진다면 독자들 또한 성향이 다양하리라고 추정할 수 있으므로,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환경은 같은 원전을 번역한 다양한 책이 쏟아져 나와 주는 것이다. 독자들이 '골라 읽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는 상황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반문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고전 텍스트마저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서 이런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현실을 딛고 설 미래를 위해, 젊은 인문학도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말미에 지은이가 자신의 번역작업을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보여주는 부분도 이 책의 구체성을 높이는데 한 몫을 한다고 본다. 한 번역가의 진지한 고민을 더듬어보며 번역이라는 작업의 매력에도, 고난에도 생생하게 다가가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역은 중요하다. 번역을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더불어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으로 독자로서 이 책을 만든 이에게 갚음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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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1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프라우트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추천 꾹~

sprout 2006-03-1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 배혜경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쭈~욱 활동하셨지요? 저는 정말정말 오랜만에 들어와서 드뎌 리뷰를 썼는데 덕분에 반가운 분이 오셨네요. 추천에도 감사! ^^
 
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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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에서 헨쇼 선생님이라는 대상을 두고 편지를 쓰고 또 일기를 쓰는 아이 리는, 사실 그 대상에게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에게 쓴다.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지만 평범한 행복을 누렸던 리에게 어느 날 닥쳐온 부모의 이혼이라는 힘에 겨운 일, 전학 간 학교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곤 했던 맛있는 도시락을 누군가 번번이 몰래 먹어버려 화가 나는 일, 이제는 헤어져 사는 아버지가 과연 자기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심지어는 아직까지 사랑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일....   이런 일들을 겪으며 리는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적어나간다.  그저 적어나갈 뿐, 특별한 계획을 세우거나 결심을 다지지도 않는다.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쓰다듬듯, 돌아볼 뿐이다.  그러면서 리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그러나 감당해 나가야 할 일들을 받아들이며 자란다.  책의 첫 부분에 서툴고 조심스럽게 헨쇼 선생님의 문을 두드리던 리는, 책의 말미에서 어느새 훌쩍 커있다.

  익숙한 대상에게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편지쓰기가 아이를 이끌어가는 곳은 다행히도,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지만 또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누구나 상처받고 아프고 억울한 일을 겪는다.  그러면서 내면에 분노를 쌓아가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발 딛는 곳은 어디인가?  더러는 세상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쏘아대고, 더러는 마음을 꽁꽁 닫아걸고 언젠가 폭발할지 모르는 분노를 쟁여간다.  리는 헨쇼 선생님이 편지에서 던진 질문에 답하며 자신을,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하나하나 돌아본다.  숙제를 하기 위해 온갖 시시콜콜한 질문을 해댄 리에게, 조금은 익살맞은 어른이기도 한 헨쇼 선생님은 어느 날 거꾸로 질문을 던져 답하라고 한다.  그냥 툭 던진 듯한 그 질문들은, 실은 누구에게나 너무나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것들이기도 하다.  그 질문들이 담고 있는 함의를 헤아려서 그런 것은 아닐 터이나, 어린 리는 헨쇼 선생님이 던진 그 질문들에 답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다.

  "너는 어떤 아이니?"    "너는 어떻게 생겼니?"   "너의 가족은?"   "너는 어디 사니?"   "너는 애완동물을 갖고 있니?"   "너는 학교를 좋아하니?"   "친구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   "무엇이 너를 짜증나게 하니?"   "너는 무엇을 바라니?"

  사실 헨쇼는 심사숙고했음에 틀림없다.  이만한 질문을 던지기가 쉬운 일은 아니리라.  리가 이 질문들에 때로 툴툴거리기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진지한 대답을 하는 동안, 헨쇼가 리를 파악하는 이상으로 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리는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희망까지도 이미 헤아려보게 된 것이다.  자신을 알고 상황과 희망에 대해서까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는 것은, 이미 그 아이가 내적으로 쑥 커져있다는 뜻이 아닐까.

  리가 답하는 이 질문 말고는 그 어떤 메시지로도 직접 나타나지 않는 헨쇼 선생님은 끝까지 독자인 내게 호기심을 준다.   결국 리의 성장에 깊은 영향을 준 헨쇼는, 이 책에서 그 뒤까지는 기약하지도 않으니 그저 어린 시절의 리의 과거에 묻혀버릴 수도 있다.

  세상일이란 어쩌면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고 호들갑스럽게 드러나지도 않는 일들이 실은 큰 깊이를 지닌 채, 웅숭깊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 보이듯 끝까지 별로 특별해보일 것도 없는 리와 헨쇼의 주고받음처럼.  그래서일까, 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혹은 '나'이기도 했을 어린 리와 혹은 '나의 지인'이었을 헨쇼 선생님이 인생의 한자락에서 주고받은 영향을 어느새 되짚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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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손 보리 어린이 12
오색초등학교 어린이들 지음, 탁동철 엮음 / 보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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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오색 초등학교 어린이들 시, 탁동철 엮음.

전부 21명의 3, 4, 5, 6학년 어린이들이 98년부터 2001년까지 탁동철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쓴 시들을 탁선생님이 엮은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년이 바뀌니 5학년 최아름이 6학년 최아름이 되기도 한다.  2002년 9월에 초판이 되었는데 그때 바로 사서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읽고, 두고두고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이야기도 해주는 책이다. 

이 시집에 실린 아이들의 마음은 어찌나 맑은지, 또 아이들이 쓰는 글들은 어찌나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지, 지금도 나는 이 책을 꺼내보면 그저 내 마음까지도 그렇게 물들어버리는 것만 같다.  이미 어린이들이 쓴 다른 시집을 여러 권 보기는 했다.  보리에서 만든 <엄마의 런닝구> 와 같은 시집들도 다 내가 참 좋아하는 아이들시집이다. 80년대 초반인가, 이미 오래오래적에 이오덕 선생님이 <일하는 아이들> 을 펴내 많은 이들에게 '두 눈이 확 떠지는'  놀라움과 여태까지의 글쓰기교육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이래,  많은 학교에서 올바른 글쓰기를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생겨나고 진지한 고민도 커져왔다.  그 결과물들도 여럿 나와 있어 이제 더이상 어린이 시집은 낯선 것도 아니고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글은, 하나하나가 참 새롭게 보이고 모여있는 걸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네 해동안 탁선생님이 맡은 아이들이 스물둘, 그중 하나만 빼고 스물한 명의 어린이들이 쓴 글이 다 들어있는데( 그 한 아이의 글이 없는 이야기는 맨 끝 선생님 글에 얼핏 비친다), 아이들마다 참 나름대로 가진 마음들이 드러나보이면서도 다들 고르게 그 마음들이 맑다.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바란 것이 '자기를 사랑하고 동무를 사랑하고, 자기들 둘레에 눈길을 주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인데, 바로 그 바람이 아이들이 쓴 글들을 읽으면 그대로 느껴진다.  '아이들이 참 잘 자라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나도, 내 아이들도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뻐근해진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고 지금 중 2인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샛별초등학교에서 혹은 엄마인 내가 하고있는 동화읽는어른 모임에서도 글쓰기가 중요하며 어떤 글쓰기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오래도록 고민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간에,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시와 같이 '내용'과 '형식'에서 고루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를 쓰는 게 쉽지가 않은 일이다.  우선 생활이 그러하지 못하고, 쓰는 게 편해지는 데도 참 시간이 걸린다. 

'오색 아이들이 시로 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집에 실린 아이들의 시들은, 신기할만큼 시를 쓴 아이들의 속이 그대로 다 들여다보이는데 그 속이 참 아름답다.  읽다보면,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 여러번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속이 아름다운 아이들이 쓴 시라서 그걸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아름다운 속을 우리가 어떻게 보나?  그 내용은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긴다.  그 내용을 담는 방법, 형식에서도 자연스런 이어짐과 끊음의 절제가 돋보인다.  탁선생님은 아마도 훌륭한 글쓰기선생님이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훌륭한 생활인일 것이라고, 나는 이 책을 본 이래로 믿고있다. 

이 책은, 내가 보고 남에게 어서 보여주고 싶어지는 책이다.  요즘은 잠드는 아들의 머리맡에 앉아  날마다 몇 편씩 읽어준다.  아들은 어느새 스르르 잠들고, 나는 그 머리맡에서 한참을 더, 찌릿찌릿해진 마음으로 앉아있곤 한다. 

 

버들강아지

 

버들강아지는 보들보들하다.

강아지 털같이 너무 보들보들하다.

어우 진짜 보들보들해.

야, 연실아! 이거 만져 봐.

진짜 이뻐.

보들보들해.

강아지 만지는 거 같애.

눈 감고 만지면 진짜 좋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5학년 이수연)

하.  이걸 읽으며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마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상장

 

현관에 들어올 때

아름이 누나가 세라 누나보고

"너, 장려상 받는다." 했다.

상을 받아서 무엇을 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상을 못 받았던 미경이는 손뼉만 치다가

눈물을 찌끔찌끔 흘렸지.

상은 우리를 외롭게 한다.

(5학년 차상훈)

 

 

차를 세운 할머니

 

어린이날

선생님 차 타고 속초 '어린이 한마당' 잔치에 가는 길,

거마리를 지나갈 때

파마 머리 하고 이마가 다 보이는 할머니가

길가에 서서 손을 들었다.

선생님 차가 멈췄다.

"저기까지 갈라 그러는데요."

머리에 나물 보따리 이고

손에도 보따리 들어서

몸이 한쪽으로 비틀어져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죠."

선생님은 죄송하다고 그랬다.

할머니 이마에 주름살이 보였다.

할머니도 차를 세워 미안한 얼굴이다.

거마리 지나가는 길에는

버스가 거의 안 오는데.....

잘라 그러는데 그 할머니가 자꾸 생각났다.

내가 그 할머니 손자였으면

차에서 내려 그 할머니 태우고

나는 걸어갔을 거다.

(5학년 이명준)

 

세 편을 고르기도 참 힘든다.  하나같이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간에 들려주고 읽어주고, 나누고 싶은 시들이 너무 많아서다.  나는 어린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내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지도 모르는 그 마음밭에 슬금슬금 들어간다. 그 마음밭은 참, 한참 전에 잃어버린 듯한데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런 어린이시들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오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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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꿈 2005-09-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들 글쓰기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런 귀한 책도 나오고, 귀한 책 알라보고 권해주시고....저도 그 귀한 마음밭 한구석에라도 발을 담구고 싶습니다.

sprout 2005-10-0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의 표현, 참 고맙고 이런 곳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네요. 언젠가 더 편안하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
 

여름방학이 막바지에 이르니

아이들과 함께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지곡 휴빈이네 가서 나뭇가지를 주워서 나무곤충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한겨레신문에 반쪽이 최정현 씨가 연재한 <나무곤충 만들기>를 쭉 봐 왔는데,

그게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그 책을 펼쳐놓고 아이들과 함께 야심차게 시작했건만....

 

막상 톱으로 굵고 가는 나뭇가지를 썰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힘을 써야 할 때는 절대 빠지지 않고 엮이게 되곤 하는 김봉은이 계속 톱질을 하고 아이들은 잠자리 날개 하나씩 받아들려고 기다린다.  책을 펼쳐놓고 다들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어, 풀칠을 해서 붙여도 계속 떨어진다.  한참 지나고 봐도 또 다시 떨어져있곤 하니... 아이들은 그만 다른 재밌는 놀이감을 찾아 벌써 떠나고 없다.  처음 만져본 전정가위, 그걸로 작은 나뭇가지를 톡 톡 끊어내는 게 재밌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열심히 만들다 둘러보니, 어... 아무도 없다.  난 재밌는데... 왜 다들 없어졌지?

김봉은도 열심히 톱질 하고나서 아이들 자리에 와서 이리저리 부실한 부분을 손봐주더니, "머.  이제 고만.."  이런 얼굴로 앉아있다. 

결국 나 혼자 잠자리와 대벌레를 만들고 접었다.  아이들은 물놀이하러 갔다.

휴빈이아빠가 하던 일을 마치고 전기톱으로 굵은 나뭇가지들을 잘라줬다.  그것들이랑 잔가지들을 챙겨서 집으로 왔다.  그날 저녁, 승현이를 옆에 앉혀놓으려고 노력하며, 좍 펼쳐놓고 곤충들을 하나씩 만들었다.

승현이는 공벌레를 더 만들더니 갖고논다고 정신없고,  나는 그저 한 마리씩 곤충이 늘어난다는 그 단순한 재미에 빠져 자꾸 만든다.  나중에는 반쪽이 최정현씨가 만든 게 성에 안 차서 아예 곤충도감, 나비도감을 펼쳐놓고 나대로 만든다.  나비, 길앞잡이, 사마귀는 도감을 펼쳐놓고 만들었다.  나뭇가지가 더이상 없어서 못 만들었는데, 들에 나가 바로바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있으면 끝없이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머..

재밌었다.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

 


휴빈이네 집 배 위에서 만들기 시작.


반쪽이 아저씨가 만든 곤충들을 들여다보며 연구. 음... 머 어렵지 않겠는 걸.


붙이고 자르고 다들 열심히.


이 정도로 마무리.. 어느 새 다 달아나버린 녀석들. 앞일을 기약하며 나뭇가지와 도구들을 챙겼다.


휴빈이아빠가 전기톱으로 잘라준 나무 토막들. 그 옆에 반쪽이가 만든 나무곤충의 모습들.


무엇보다 먼저 만들어보고 싶었던 반딧불이와 매미.


도감을 펼쳐 사마귀를 조금 개성적으로 만들고 대벌레도 나뭇가지 생긴 대로 만들었다. 가운데 한 마리는 승현이랑 함께.


나비와 하루살이.


왼쪽은 길앞잡이, 오른 쪽은 거위벌레. 둘 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앞잡이는 도감을 보고 눈과 이빨(혹은 턱)을 보탰다.


아기 공벌레와 엄마 공벌레.


맨 첨 아들과 함께 만들었던 잠자리 두 마리. 아들이 만든 걸 나뭇가지 위에 앉혔다.


모두 모여 기념촬영.  2005년 8월 29일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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