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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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쓰고 싶은 마음에... 또 2권에 대한 기대감을 담으며 쓴다.

  <남쪽으로 튀어!> 라는 제목에서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잡은 책은, 놀라울 만큼 단숨에 읽혔다. 평등한 세상에 대한 이상, 일본 학생운동의 기수 혁공동, 그 이후 20년간의 세상의 변화, 아나키스트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 등... 모양새로는 주인공이 지로이지만 그 아버지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시작되니 실제 주인공은 아버지 이치로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대책없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인가 했으나, 아니다. 국가가 커다란 손아귀로 장악하고자 하는 개인의 삶을, 웃기지 말라며 거부하는 한 실천가의 삶이 온갖 좌충우돌을 불러 일으키는 바람에 엄청나게 특이해진 한 집안의 이야기가 책을 이끌어간다. 그렇지, 모두들 고분고분하게 살고 있으니까 '나대로 잘 살 수 있으니 고만 놔둬!' 라고 소리치는 게 오히려 이상하고 거북하게 들리는 세상이다. 게다가 그런 '나'는 신념에 따라 또 그렇게 산다 하더라도, '나의 아들'에게까지 그런 방식의 삶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삶의 방식은 인생에 있어서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굴레가 될 수도 있는 바, 조숙한 아들 지로에게 아버지의 삶의 방식은 지금까지는 무거운 굴레로 보인다. 지로는, 특별한 아버지로 하여 끊임없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제기랄, 다른 아버지들처럼 밖에 나가서 일해. 집에서 데굴데굴 놀기만 하지 말고!'  '앞으로 미나미 선생님을 괴롭히면 가만 안 둘거야!'

  아버지가 아니라도 지로는 자라느라 겪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악의 화신인 듯한 중학생 불량배 가쓰가 그렇고, 친구들이나 선생님과의 관계가 그렇고, 갑자기 나타난 상류층 외가가 그렇고, 난데없이 집에 살러 들어온 수상한 어른인 아키라 아저씨도 그렇다. 그런 일들도 때로 힘겹게 겪어내야 하는 지로에게, 아버지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짐스러운 존재다. 그 무거운 지로의 마음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집안에는 수수께끼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뭐, 캐고들 마음도 나지 않았다.

  시종 이렇게, 잔뜩 무거운 마음을, 어쩐지 슬쩍 들어올리듯, 한 발짝 물러나 이야기하듯.  그런 지로의 이야기가 독자인 내 마음도 자꾸만 무거워지려는 걸 막고 슬쩍 들어올린다. 불행, 아픔, 이런 감정에 떨어지지 않고 담담히 바라보게, 혹은 막다른 곳에서 오히려 실실 웃음이  비어져나오게 한다. 작가가 누구던가? <공중그네>를 쓰고 <인 더 풀>을 쓴 오쿠다 히데오가 아닌가. 불행이나 슬픔에 먹혀버릴 작자가 아닌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다. 이 아버지나 이 엄마나, 도대체 왜일까? 이미 애어른이 다 되어버린 지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들의 접점은 어디이며, 하이파이브는 오는 것일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이제 그들은 짐을 쌌다. 도쿄를 떠나 남쪽으로! 무엇인가의 상징인 도쿄를 떠나, 그것과는 상이한 무엇인가의 상징인 남쪽나라로 말이지. 어버지와 어머니의 남쪽나라는, 지로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 오리무중 2부가 기대된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 방식, 그가 던져버린 질문은 이미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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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2-0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요. 빨리 읽어보세요 ^^

sprout 2007-02-08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리뷰들을 미리 읽어버렸는데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 생명의 온기 가득한 우리 숲 풀과 나무 이야기
이유미 지음 / 지오북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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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이유미님,  참 행복한 분이 아닌가 한다. 나무와 풀 가득한 숲과 산이 그의 일터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골라내서 글을 쓴다. 마치 풀과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전혀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주는 분이 아닌가. 그것도 풀과 나무의 입장에 서 보려고 하면서. 나에게 이유미님은, 실로 풀과 나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통번역자에 다름 아니다. 그것들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을 퍼뜨리고 싶은 열정, 그리고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온갖 우행을 일삼는 우리 인간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것들의 기가 모이면 이렇게 쓰지 않을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당연하게도,그렇다고 누구나 이렇게 쓸 수는 없다. 이유미님은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글솜씨로 이미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글쓰는 학자이다. 그래서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벌써 이십여년이 넘은 일이지만, <샘이깊은물> 이라는 잡지에서 풀과 나무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볼거리, 읽을거리를 우리에게 제공한 사람이 그이다. 그때, 그 읽을거리 뿐만 아니라 그이의 글맛에도 반해서 자주 음미하며 읽었다. 그때 그이가 쓴 글들은 나중에 <이유미의 우리꽃 사랑, 한국의 야생화> 라는 책에서 부분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때는 책 한권을 앞에 두고 여러가지 감회와 함께 한참을 행복하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오백 쪽이 넘는 책에 백여 가지 풀들을 실었으니 하나에 약 네댓 쪽 씩을 차지하여 비교적 상세한 정보와 느낌도 아울러서 참 풍요롭게 여겨지던 책이었다. 지금 들여다봐도 그 책에는 계속 볼 거리가 있다. 물론 정보가 많으니 한번에 다 볼 수 있는 책이 아니기도 하고, 한 번 본다고 그 내용을 다 알아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데다가, 언제 봐도 촘촘한 그 책은, 지금도 내 곁에 두어서 든든하다. (물론 그 분야를 전공하는 독자가 아니라 일반 독자인 내게 그렇다는 말이다. 전공자들에게는 오히려 쉼터와 같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작가 이야기인지,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인지가 길어졌는데, 이 책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보면서 당연하게도 앞에서 길게 이야기한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이 책, <광릉 숲..>은 상대적으로 아주아주 성글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두 해에 걸쳐 일간신문에 매주 한차례씩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사진을 보태어 묶어낸 것이다. 그말은 곧, 체계적인 분류와 지식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지은이가 그때 떠올리는 풀과 나무들, 다시 말하자면 그때그때 지은이에게 말을 건네는 풀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니, 우리의 삶과 함께 흘러가되 삶의 흐름에 따라 한 군데 머물러 진득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제한성으로 하여 한 이야기에 두세 쪽, 그것도 전문적이기보다는 우선 흥미로운 이야기-예컨대 일반 독자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 아는 듯하지만 무심코 넘겨 실제로는 모르고있기 십상인 이야기들, 지은이의 느낌, 인간사에 엮어 풀어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손에 잡으면 전혀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히고, 뜻밖에 듣는 이야기들로 하여 흥미롭고, 자연현상을 인간사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꼭히 이 책이 숲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숲을 빌어 이야기하는 한 편의 수필을 읽고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이, 독자에 따라서는 끌리는 점이 되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 풀과 나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살아올 틈 없었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은 더할나위없는 반가운 손이 될 것이다. 우리네 삶과 연결되어 살갑고, 약간은 낯선 첫 손길이지만 묵직하지는 않아 사소하고, 이제 막 귀를 열기 시작한 독자에게는 그지없이 신선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이 한 권의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어느새 그 땅에 발을 성큼 들여놓아 이제 열혈독자가 될 준비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여태 풀과 나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살아올 틈을 조금이라도 낼 수 있었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은 그저, 잘 아는 이의 가벼운 인사이거나 오며가며 나누는 세상사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새로울 것 없으나 한번씩 주고받고 싶은 정다운 이야기라고나 할까... 잊고 있던 그들과 잠시 길거리에서 조우하듯, 그래서 다시 그들을 상기하듯. 그러나 보잘것 없다고 말해지기보다는, 그렇게 만나서 반가웠노라고 말해주고 싶은 그런 만남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그들의 인사는, 오히려 그 단순함으로 하여 다른 무관심한 이들에게 그들의 인사를 전해주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내가 자주 만나는 어린이들이나 세상사에 하릴없이 바쁜 그 어머니들에게 이 쉬운 인사는 곧바로 그들의 마음을 열게하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풀과 나무들이 보내는 인사는 때로 신비롭고 때로 소박해서 이 책의 지은이를 공명시키고 나를 공명시키고, 이어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공명시킨다. 이렇듯 이유미님의 '편지'는 곧바로 내가 또다른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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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와 기계의 원리
데이비드 맥컬레이 글 그림, 박영재.박은숙 옮김 / 서울문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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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한 책이다. 도구와 기계에 대해 워낙 아둔하면서도 그 원리에 대해 항상 궁금함을 품고 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게 이 책만큼 매력적인 책이 어디있으랴. ^^ 남들에게는 간단한 것이라도 나는 그 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고, 그러니 신기하고 또 궁금해서 잘 묻고 다닌다.  책에서 뭔가를 설명하면 또 열심히 보기도 하는, 아예 포기하지는 않고 나름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시나, 들어도 잘 모른다. 아무래도 그 쪽으로는 트이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이 책에, 당연히 끌렸다. "도구와 "  "기계의"  "원리" 라니!! 도서관에서 책을 후루룩, 펼쳐보니 거의가 그림이다. 글씨도 엄청 많다. 왠지, 나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팍, 희망적으로 오는 책이었다. 그래서 빌려와서, 펼쳤다.

아, 내게는 감격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나...ㅎ) '빗면' 항목에도 '지레' 항목에도, '스프링'이나 '나사' 항목에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부분이다) 예를 들어 '빗면' 항목에 나오는 "자물쇠와 열쇠"를 보면,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대체 뭔 말이야? 싶던 것이 한 네 번 쯤을 집중해서 읽으니 결국 "아, 그게 그 말이구나!" 하고 유레카가 터져나왔다. 그때의 감격!  ^^ 

처음부터 죽 이어서 읽지 않고 부분 부분 건너뛰며 관심있는 것, 좀 쉬워 보이는 것을 골라서 읽었다. 그래서인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드문드문 나와서 신이 났다. '나도 드디어, 도구와 기계가 알고보면 원리대로 움직이고 있는 그 세상에 한 발을 들여놓기 위해, 그 선에 발을 밀어넣고 있는 거란 말이지!! 물론 조심조심 조마조마~~'  아무래도 이 책에서는 가장 초보적인 것일듯한 '수도꼭지- 나사', '스테이플러- 스프링' 에서도 나는 신이 나서 봤다. 솔직히, 여태까지 잘 몰랐던 것이어서. ^^  책 전체 내용으로는 엄청 조금밖에 안 봤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볼수록 대단해지는 책이다. 실은 지금 내게는 대부분이 이해가 안된다. ㅠㅠ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보여봤다. 도구와 기계, 그리고 그 원리를 특히 좋아하고 해결도 잘 하니까 이 책을 정말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가격이 만만찮은 책이기도 해서 (물론 내용 대비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보여주고 은근히 좋아하면 생일날 선물하면 딱 좋겠다는 꾀바른 생각도 하면서. ^^ 한시간 쯤 보더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을 했다. "다 봤다."

잘 만들긴 했는데,....다 아는 내용인데 뭘 그러냐는 말이다. 살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듯이. 물론 겨우 훑어봤을 거면서.... 대충 보니 다 아는 내용에 가끔 궁금한 게 있어서 좀 보는 데 한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음... 거짓말이겠지...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 뻥이고 허세라는 것 다 알고 있다. 그래도 다는 아니어도 상당부분 아는 거였을 수도 있을까...? 사람의 인식 구조는 어째서 이토록 다를 수 있는 것일까? 신기하다.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이렇게, 나와같은 기계치에게는 이 책은 우선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키고, 가끔은 쉬운 것도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들고,  또 작가가 매머드를 전속모델로 써서 상당히 유쾌한 유머를 구사하기도 하면서  나를 적당히 사로잡는 방법으로 유인한다. (아들도 매머드 이야기를 무지 좋아하게 되어서 건너뛰며 매머드 이야기는 벌써 다 봐버렸다 ㅎㅎ)  그림을 보면, 한 사람이 이 책을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사람의 능력 밖의 일로 보인다. 이 사람은, <큰 건축물>, <피라미드>, <땅 속 세상> 등등... 또다른 놀라운 책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나 말이다. 언제 이런 걸 다 그리고 설명한담? 다 해 놓은 것 이해하기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지금은 '기계 시계' 항목을 열심히 보고있다. 예전에 밥을 줘야 움직이던 그 시계, 그러니까 태엽을 감아줘야 움직이던 시계 말이다. 항상 그 속이 신기했다. 그 신기한 속을 낱낱이 펼쳐놓고 설명을 붙여놓았는데, 역시 어렵긴 하다. 용어부터 어렵다. 그래도 계속해서 읽어보고 있다. 점점 더 신기하다.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을 돌려줘야 하니까 내 책을 사야할 듯 싶다. 이건, 분명히 대를 물려볼 책이다. 사놓고는, 보고싶을 때마다 보고,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보고, 아이를 슬슬 끌어들이고, 암만 봐도 이해가 안되는 건 남편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보도록 아예 거실 탁자 위에 놔둘 책이다. 물론, 기계치인데다가 호기심은 또 잔뜩인 나 같은 사람의 생각에는 그렇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다 읽으려면 아직 멀고먼 책인데 급하고 설레는 마음에 진작 리뷰를 쓰고만다. 좀더 읽다가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또 쓰고... 다 읽으면 또 쓰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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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2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03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청전 : 어두운 눈을 뜨니 온세상이 장관이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6
정출헌 지음, 김은미 그림 / 나라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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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 책으로 읽으면 새롭고도 재미있다.

이야기로만 생각해온 심청은, 어쨌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다. 우선,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곤고하면 잠시 부모를 원망도 할 법하건만 오히려 사려깊지 못한 부모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리하여 우리가 언감생심 꿈도 못꿀 효녀여서 감동도 주지만 그만한 부담감도 준다. 또, 자신을 그리 귀애하는 승상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살아서 효도도 하고 승상부인에게도 부모마냥 효도하며 두루 좋게 살 수도 있었건만, 굳이 그 길을 마다하고 자기 희생으로 밀고나간, 요샛말로 자아도취에 비호감 매저키스트 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거북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이, 행여 내가 원본 심청전을 못 읽고 각색하여 상품성을 극대화한 것만 읽어와서 그런가 하며 이 책을 읽을 마음을 냈다.   읽고나니,  뭐라할까, 내용이 같기는 한데 역시나 조금 다르다. 익히 아는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질 리 없으나, 내가 아는 내용 사이사이를 연결해주는 편안한 이음새가 좀 다르다고나 할까. 물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심청의 선택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하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심청은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당차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여자이다. 어려서 먼눈으로 젖동냥으로 자신을 키운 아버지의 처지를 깨닫고 일곱살이 되자 바로 스스로 밥동냥을 하러 나가겠다고 아버지께 고한다. 아버지가 양반의 후예로 여자를 그리 밖에 내보낼 수 없다며 말리나 청이는 "효는 인륜의 근본이고 남녀칠세부동석은 사소한 예절이라"며 단호하다. 그렇게 밥동냥을 다니며 동네 사람들의 동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랴, 하여 세상 물정에 눈을 뜨는 듯,  죽으러 가는 길에 이런 말을 남긴다. " 너희들은 팔자 좋아 부모 모시고 잘 있어라, 나는 오늘 우리 부친 이별하고 죽으러 가는 길이로다."  이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그런 청이는 열여섯이 되자 더이상 공밥 먹지 않을 뜻으로, 동네에서 일감을 얻어와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동냥을 하지 않았다. 승상부인이 수양딸로 삼고자 하나 아버지의 눈이 되고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살아야 한다며 사양한다. 결국 삼백석에 몸을 팔아 죽게 된 것을 승상부인이 책망하며 내가 도우리라 할 때에도, 이런 말로 거절한다.  "부모를 위해 정성을 드릴 양이면 어찌 남의 명분 없는 재물에 의지하겠습니까? 게다가 쌀 삼백석을 도로 내 주면 뱃사람들 일이 낭패가 될 것입니다. 이도 또한 어려운 일일 뿐더러 약속을 한 후 뒤에 어기는 것은 못난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

하긴, 부처님께 공양하여 기적과 같은 은덕을 바라는 것이니, 공양미가 명분없이 쉽게 얻은 것이라면 은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어쨌든 청이는 무모하다기보다는 속깊은 여자다. 물론... 무모하기도 하다. 그러나 죽는 것이 실은 얼마나 두려우랴. 인당수 시퍼런 바닷물살에 몸을 던져 죽기가 너무나 두려운지라, 뒷걸음질치다가 뒤로 벌떡 자빠진다. 망연자실 앉았다가, 바람 맞은 사람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다가가서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가 이리 겁을 내며 주저주저하는 것은 부친에 대한 정이 부족한 때문이라. 이래서야 자식 도리 되겠느냐?" 하고는 눈 딱 감고 뛰어든다. 이성은 이성이고, 본능은 본능인지라 두려움에 몸을 떠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더 안스럽다.

막연히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가엾은 희생양이 되고자 자처했던 연약한 여인 심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운명 앞에 정면으로 맞닥뜨려 큰 용기를 냈으나 여전히 두려움에 몸을 떨었고, 두려우나 자신의 결정을 접지 않았던 당차고 강한 여자 심청으로 변해간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읽히는 느낌이 그러했다. 그렇게, 심청전을 다시 읽어나가는 일이 새롭고 일견 반가왔다.

글의 사이사이에 낀 시대적 설명과 말미에 붙은 해설도 살뜰하게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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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봉감별곡 : 달빛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5
권순긍 지음 / 나라말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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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고전읽기'의 책들이 한 권씩 보태지는 걸 기다리는 심정이 꼭 내 아이 마른 몸에 살이 붙는 걸 지켜보는 듯하다. ^^ 나라말 출판사라는 곳도 그렇고, 국어교사 모임이라는 곳도 그렇고, 읽어 온 책이 몇 권씩 보태지면서 믿음이 무한정 깊어지는 곳이다. 이렇게 글과 그림과 중간중간 끼워둔 시대읽기까지 흡족한,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손에 쥐고보면 이런 책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데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열심히 찾아읽고 널리 알리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을 따름이다.

고전읽기 씨리즈로 다섯번째인 <채봉감별곡>은, 1910년대 근대적인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우리의 고소설이 '구활자본'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그때 새롭게 등장한 소설이라고 한다. 내용을 읽으면 조선왕조를 떠올리게 되지만, 소설 말미에 실어둔 해설에 의하면 만들어진 게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게 새롭다. 기껏해야 100여년 전, 1920~30년대에는 이광수, 염상섭, 채만식 같은 소설가들이 현대 소설을 써서 신문에 발표하던 시절이 아닌가. 그런 현대소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스스로를 키워가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춘향전>, <심청전>간은 고소설이 1920년, 30년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널리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데, 내용과 형식에 따라 신소설, 고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동시대 사람들의 심성을 어루만졌다는 것을 깨닫는 심정이 마치 잃어버린 한쪽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아연해지는 그런 마음만 같다.

<채봉감별곡>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시대적 배경은 조선이나 주인공 채봉의 당당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지금 보아도 마음 한군데가 시원해진다. 조선 말기, 온갖 부정부패와 타락한 세도정치를 배경으로 부모마저 그 속에서 그릇된 허영심과 권세에 몸을 담그고자 하여 금지옥엽 딸까지 세도가의 첩으로 팔고자 하나, 채봉은 실로 당차게 그런 부패한 윤리와 이념에 저항한다. 소설 전체를 통해 채봉은 여러번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구속하고 있던 봉건윤리에 직면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것에 맞서게 된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 벼슬에 눈먼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재상가의 첩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것, 심지어 곤궁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고 자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기생이 되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을 보면서 "멋있다, 채봉! 힘내라 채봉!"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보아도 시원한 데가 있는 이 소설을, 그 시대, 이 이야기가 출판되어 읽히던 그 때 사람들은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부패한 시대, 뒤떨어진 봉건 윤리에 짓눌려 절망과 좌절과 분노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 속 채봉과 장필성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 자신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개척해나가는 모습은 어떻게 다가갔을까? 때로는 달디단 꿈과 같은 오아시스처럼, 때로는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나아갈 자리를 짚어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지는 않았을까? 시대를 건너뛰어 고전을 이해하기란 쉽지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중간중간 또 앞뒤로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해를 도와주는 여러 장에 힘입어, 지금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시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를 헤아려보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고전을 만나는 과정에서 당연히 거쳐야 될 일이다 싶지만, 그런 체험을 도와주는 안내자를 따라가는 일 또한, 내용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자못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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