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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 어두운 눈을 뜨니 온세상이 장관이라 ㅣ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6
정출헌 지음, 김은미 그림 / 나라말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 책으로 읽으면 새롭고도 재미있다.
이야기로만 생각해온 심청은, 어쨌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다. 우선,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곤고하면 잠시 부모를 원망도 할 법하건만 오히려 사려깊지 못한 부모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리하여 우리가 언감생심 꿈도 못꿀 효녀여서 감동도 주지만 그만한 부담감도 준다. 또, 자신을 그리 귀애하는 승상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살아서 효도도 하고 승상부인에게도 부모마냥 효도하며 두루 좋게 살 수도 있었건만, 굳이 그 길을 마다하고 자기 희생으로 밀고나간, 요샛말로 자아도취에 비호감 매저키스트 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거북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이, 행여 내가 원본 심청전을 못 읽고 각색하여 상품성을 극대화한 것만 읽어와서 그런가 하며 이 책을 읽을 마음을 냈다. 읽고나니, 뭐라할까, 내용이 같기는 한데 역시나 조금 다르다. 익히 아는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질 리 없으나, 내가 아는 내용 사이사이를 연결해주는 편안한 이음새가 좀 다르다고나 할까. 물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심청의 선택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하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심청은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당차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여자이다. 어려서 먼눈으로 젖동냥으로 자신을 키운 아버지의 처지를 깨닫고 일곱살이 되자 바로 스스로 밥동냥을 하러 나가겠다고 아버지께 고한다. 아버지가 양반의 후예로 여자를 그리 밖에 내보낼 수 없다며 말리나 청이는 "효는 인륜의 근본이고 남녀칠세부동석은 사소한 예절이라"며 단호하다. 그렇게 밥동냥을 다니며 동네 사람들의 동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랴, 하여 세상 물정에 눈을 뜨는 듯, 죽으러 가는 길에 이런 말을 남긴다. " 너희들은 팔자 좋아 부모 모시고 잘 있어라, 나는 오늘 우리 부친 이별하고 죽으러 가는 길이로다." 이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그런 청이는 열여섯이 되자 더이상 공밥 먹지 않을 뜻으로, 동네에서 일감을 얻어와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동냥을 하지 않았다. 승상부인이 수양딸로 삼고자 하나 아버지의 눈이 되고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살아야 한다며 사양한다. 결국 삼백석에 몸을 팔아 죽게 된 것을 승상부인이 책망하며 내가 도우리라 할 때에도, 이런 말로 거절한다. "부모를 위해 정성을 드릴 양이면 어찌 남의 명분 없는 재물에 의지하겠습니까? 게다가 쌀 삼백석을 도로 내 주면 뱃사람들 일이 낭패가 될 것입니다. 이도 또한 어려운 일일 뿐더러 약속을 한 후 뒤에 어기는 것은 못난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
하긴, 부처님께 공양하여 기적과 같은 은덕을 바라는 것이니, 공양미가 명분없이 쉽게 얻은 것이라면 은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어쨌든 청이는 무모하다기보다는 속깊은 여자다. 물론... 무모하기도 하다. 그러나 죽는 것이 실은 얼마나 두려우랴. 인당수 시퍼런 바닷물살에 몸을 던져 죽기가 너무나 두려운지라, 뒷걸음질치다가 뒤로 벌떡 자빠진다. 망연자실 앉았다가, 바람 맞은 사람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다가가서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가 이리 겁을 내며 주저주저하는 것은 부친에 대한 정이 부족한 때문이라. 이래서야 자식 도리 되겠느냐?" 하고는 눈 딱 감고 뛰어든다. 이성은 이성이고, 본능은 본능인지라 두려움에 몸을 떠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더 안스럽다.
막연히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가엾은 희생양이 되고자 자처했던 연약한 여인 심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운명 앞에 정면으로 맞닥뜨려 큰 용기를 냈으나 여전히 두려움에 몸을 떨었고, 두려우나 자신의 결정을 접지 않았던 당차고 강한 여자 심청으로 변해간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읽히는 느낌이 그러했다. 그렇게, 심청전을 다시 읽어나가는 일이 새롭고 일견 반가왔다.
글의 사이사이에 낀 시대적 설명과 말미에 붙은 해설도 살뜰하게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