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봉감별곡 : 달빛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5
권순긍 지음 / 나라말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어시간에 고전읽기'의 책들이 한 권씩 보태지는 걸 기다리는 심정이 꼭 내 아이 마른 몸에 살이 붙는 걸 지켜보는 듯하다. ^^ 나라말 출판사라는 곳도 그렇고, 국어교사 모임이라는 곳도 그렇고, 읽어 온 책이 몇 권씩 보태지면서 믿음이 무한정 깊어지는 곳이다. 이렇게 글과 그림과 중간중간 끼워둔 시대읽기까지 흡족한,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손에 쥐고보면 이런 책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데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열심히 찾아읽고 널리 알리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을 따름이다.

고전읽기 씨리즈로 다섯번째인 <채봉감별곡>은, 1910년대 근대적인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우리의 고소설이 '구활자본'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그때 새롭게 등장한 소설이라고 한다. 내용을 읽으면 조선왕조를 떠올리게 되지만, 소설 말미에 실어둔 해설에 의하면 만들어진 게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게 새롭다. 기껏해야 100여년 전, 1920~30년대에는 이광수, 염상섭, 채만식 같은 소설가들이 현대 소설을 써서 신문에 발표하던 시절이 아닌가. 그런 현대소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스스로를 키워가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춘향전>, <심청전>간은 고소설이 1920년, 30년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널리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데, 내용과 형식에 따라 신소설, 고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동시대 사람들의 심성을 어루만졌다는 것을 깨닫는 심정이 마치 잃어버린 한쪽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아연해지는 그런 마음만 같다.

<채봉감별곡>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시대적 배경은 조선이나 주인공 채봉의 당당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지금 보아도 마음 한군데가 시원해진다. 조선 말기, 온갖 부정부패와 타락한 세도정치를 배경으로 부모마저 그 속에서 그릇된 허영심과 권세에 몸을 담그고자 하여 금지옥엽 딸까지 세도가의 첩으로 팔고자 하나, 채봉은 실로 당차게 그런 부패한 윤리와 이념에 저항한다. 소설 전체를 통해 채봉은 여러번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구속하고 있던 봉건윤리에 직면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것에 맞서게 된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 벼슬에 눈먼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재상가의 첩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것, 심지어 곤궁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고 자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기생이 되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을 보면서 "멋있다, 채봉! 힘내라 채봉!"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보아도 시원한 데가 있는 이 소설을, 그 시대, 이 이야기가 출판되어 읽히던 그 때 사람들은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부패한 시대, 뒤떨어진 봉건 윤리에 짓눌려 절망과 좌절과 분노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 속 채봉과 장필성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 자신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개척해나가는 모습은 어떻게 다가갔을까? 때로는 달디단 꿈과 같은 오아시스처럼, 때로는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나아갈 자리를 짚어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지는 않았을까? 시대를 건너뛰어 고전을 이해하기란 쉽지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중간중간 또 앞뒤로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해를 도와주는 여러 장에 힘입어, 지금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시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를 헤아려보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고전을 만나는 과정에서 당연히 거쳐야 될 일이다 싶지만, 그런 체험을 도와주는 안내자를 따라가는 일 또한, 내용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자못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