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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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는 있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던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짧은 이야기는 내게, '몰입하자 곧 끝나버리는' 어떤 것이어서 늘상 허망했다. 그래서 긴 이야기만 줄창 읽어온 나인지라 목차를 보면서 슬쩍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왠걸, 다- 좋았다. 하나하나 놓치기 아까울만큼 좋았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거의 다- 아팠다.

술술, 아픈 것 아프게, 쓰다듬는 것 따스하게, 결국은 의연하게.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새꼬름한 명절 이야기인 '비오는 달밤'도, 초상난 이야기에 서렁하니 옛날이 얹혀지는 '영희는 언제 우는가'도, 아찔할 만큼 서글픈 물난리난 이야기인 '아무도 모르는 가을'도, 또 또...

공선옥은, 지금 아픈 사람을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보고, 따뜻한 손 내미는 사람이리라. 너무나 술술 감미롭게 읽히는 그이의 글 재주는 심상치가 않다. 245쪽의 맥주컵 이야기에는 난데없이 크게 웃었다. 아픈 이야기, 아프게만 하지 않고 따뜻하게 하기도 하더니 우하하, 웃음이 터지게도 한다. 그 속에 반짝거리는 것도 묻어두었나보다. 콕 찌른다.

'어젯밤만 해도 오른쪽 어깨를 된통 찧었다. 잠들기 전 마셨던 맥주컵이 그러잖아도 시원찮은 어깻죽지를 강타했다. 맥주컵 입장에서야, 웬 육중한 아줌마가 저한테 달려들어서 저 딴에는 정당방위를 하느라고 그랬다 할 테지만, 맥주컵은 금이 가 있었다. 아침에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아깝다는 생각보다 문득, 미안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내 육중한 몸, 나라는 사람이 주는 육중한 무게의 정신적 타격을 받고 그 몸에, 그 마음에 금간 사람 어디 없는가. 나는 유독 습한 날이 지속되는 가을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  -- '폐경 전야' 에서. 

이렇게, 늦지만 진하게 발을 들여놓는다. 공선옥의 글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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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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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이 좋다. 이렇게 멋진 책을 여태껏 읽지않고 뭘했나, 싶다. <산적의 딸 로냐>도 좋게 읽었으면서. 1956년에 린드그렌은, 어떻게 삶의 근본을 가르는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손댈 수 있었던가? 그이의 힘인가, 그이가 살았던 자유로운 땅의 힘인가. 존경스럽다.

방랑자와 고아원을 탈출한 고아소년. 경찰서에서는 그들을 한마디로 이렇게 규정짓는다. 그러나 방랑자 오스카는 실제 어떠한가? 그는 노동하고 싶을 때 죽어라고 노동하고, 때로 전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 뒤에 따르는 온갖 불이익은 사실 그의 몫이다. 물론 자유로운 구름같기도 하고 그의 말을 빌자면 '하느님의 굴뚝새'이기도 하고. 아코디언 반주에 멋진 노래로 5외레 동전을 받아 빵을 사기도 한다. 어떤 농가에 들러 빵을 얻기 위해 장작을 패면서 이렇게 말하는 오스카.

"때로는 일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에는 죽어라고 일만 하고 싶어. 그런데 때로는 전혀 일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언제나 꾸준히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지. 나는 내 가엾은 해골 속에다 그런 걸 넣어 둘 순 없어."

음. 확실히 멋진 말이다. 호사스런 말인가? 그러나,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지 않나? 우리 사회에는 지금 확실히 이런 문제가 슬며시 떠오르고 있단 말이다. 지금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모두 다 이렇게 살지를 원치도 않으니 다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물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렇게 살고 싶을 때,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테두리 바깥이어야 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테두리가 없어지기를. 1956년을 방랑으로 떠돈 오스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책에 나오는 사회보다 전혀 유연하지 않은 것 같다. 방랑자를 재워 줄 헛간도, 나누어줄 빵도, 그들의 노래를 듣고 던져줄 동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낯선 인물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린 사회. 다른 것을 내쳐야 내 존립 기반이 서는 사회.. 그러나 그럴수록 그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루저로서의 삶'.

이 사회의 바닥에서 느긋하게 살기, 방랑자 오스카의 삶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와 함께 짧지만 격한 방랑의 시간을 겪은 라스무스가 오스카의 꿈을 그의 꿈으로 받아들여 그와 함께인 방랑의 삶을 선택한다. 안락한 농가에서 양자가 되어 사는 것을 그토록 바라왔던 라스무스가, 그 모든 따뜻하고 편안하고,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오스카를 따라 나선다는 것, 그것은 진정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과감한 린드그랜의 선택이었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어쩐지 눈물이 핑 돌 만큼... 놀랍고, 안타깝고, 종내는 가슴이 벅차던... 소년 라스무스의 선택.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선택.

그러나 뒷 부분, 오스카가 잠시 돌아가는 집 부분이 오히려 사족만 같다. 정처없이 떠버린 독자의 마음을 슬쩍 지상에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천사같은 소년 라스무스를 위해 안타까워했던 독자들을 위해 반전을 준비한 것일까? 글쎄.. 그 따뜻하고 편안한 결말은 어쩌면 어린 독자들을 염두에 둔 것일까.... 여러가지로 궁금하다. 하여간 어른인 내게는 그 부분이 아쉬웠다. 물론 현실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를 따라 방랑의 길로 주저없이 나섰던 라스무스에게는 마치 배신과도 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실 라스무스는 행복감을 느낀다. 오스카를 기다리며 살기도 했을 부인까지도 그리 절망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이러저러 다들 행복하다. 언제나 떠날 수 있고 언제나 돌아올 수도 있다. 린드그렌은 돌아갈 곳이 있는 방랑자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시대에 한 철 열심히 벌어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유희하는 정신적 엘리트들의 삶이 아닌가? 현실 가능한 방랑... 어쩌면 유희로서의. 이런 점들이 궁금했다. 내게는 사족만 같았지만, 그 시대나 지금이나 이해받을 수 있는 방랑이란 그런 것 만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급진적이면 아예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지금까지도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이야기를 던져주는 책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사족과 같은 부분에 의혹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스무스와 오스카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여러가지, 잊고 사는 여러가지 중요한 것들을 들추어내서 읽는 내내 짜릿했다. 

이 오래된 책을, 우리나라에 나와서 이미 유명세도 탈 만큼 탄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6학년이 된 아들에게 다음 타자로 책을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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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미래그림책 24
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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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나위없는 평화로움.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현실의 슬픔이 가슴을 텅 비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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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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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매혈기> -> <인생> -> <가랑비 속의 외침>, 이런 순으로 읽고 말았다. 작가는 그 반대의 순으로 책을 썼는데. 언제나 위화의 책을 읽으면 놀랍다는 느낌. 이 놀라움의 순서는 내게는 읽은 순이었으니, 내게는 이 작가가 책을 써나갈수록 점점 더 대단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가랑비 속의 외침>은 첫 작품답게, 지은이의 과거의 기억으로 관통된 소설이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유년과 소년 시절의 느낌과 이해가 녹아있다고 한다...책 속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 작가 자신의 목소리이다. '그 때 나는 늘 내 유년과 소년 시절의 얼굴을 베고 잠들지는 않았던가.' 크게 끄~덕, 프루스트, 위화, 그랬을 것이다. 그 시절의 이야기가 위화에게는 이 책이다.

다른 책에서도 그랬듯 약간 거리를 둔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그게 좋다. 인생에 몇 번 겪으랴 싶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내용을 풀고있는 목소리가 어찌 너무나 담담하다. 아니 덤덤한가..? 그런데 그것이 확실한 이야기거리라는 것을 작가가 안다. 그런 목소리가 나는 참 좋다. 신문을 보고 테레비에서 보면 눈물 줄줄 흘릴 이야기조차 위화의 이야기로 듣고 있으면 담담하고 쓸쓸해진다. 우습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는 그만큼 초강력은 아니지만, <허삼관 매혈기>를 볼 때의 행복감이 밀려와 읽는 동안 즐거웠다. 문체의 힘에 많이 기대는 소소한 이야기인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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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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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나면.

누구나 다 떠나고 싶어질듯하다. 나도 당연, 그랬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준비 좀 해야겠군, 하고 생각했다. 화가이자 글쓰는 이인 저자는 남미의 문학, 남미의 예술을 스치듯 맛보고 지나간다. 주저앉아버린 게 아니라 깊은 맛을 보기는 물론 어렵지만, 책으로 보고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들이 지은이의 발걸음을 따라 또박또박 이어진다는 것은 무한 매력적이었다. '나도 이 길을 걸으리라' 라는 동참의식과 함께 여행의 로망은 한껏 무르익어 부풀어오른다.

쿠바,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칠레, 페루. 하나같이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하던 곳이 아니던가. 한번 가면 한 달은 돌아야지, 라고 생각만 하다보니 아예 갈 엄두를 못 내던 곳이 아니던가. 결국, 언젠가 한 달을 내서 떠나게 될 때, 이 책을 들고가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 내가 쓰는 여행기는 다른 맛이 나겠지. 그야 물론 나만 보는 여행기이겠지만. 내게 이 책은 약간 과잉의 느낌을 주었다. 감정의 과잉, 우수와 페이소스의 과잉. 남미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랬을까? 카스트로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현지에서 목격하고 어이없어하며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게바라에 대해서는 연민과 존경이 넘친다. 어떤 것이나 '낭만'이다. 물론 누구나 비판하고 누구나 또 존경하는 인물들이지만, 작가의 시선이 너무 유명세를 좇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들었다. 코드가 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라할까.

그러나,

"라틴은 말한다. 현실의 크고 작은 결핍 쯤이야. 존재란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거늘." 이라는 광고문구, 거기에 꽂혀서 사보게 된 책이라는 사실은 엄연하다. 라틴, 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이국의 이미지가 아니었던가. 책을 보며 역시나 그런거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남미에 대한 나의 환상을 한층 더 두텁게 만든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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