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린드그렌이 좋다. 이렇게 멋진 책을 여태껏 읽지않고 뭘했나, 싶다. <산적의 딸 로냐>도 좋게 읽었으면서. 1956년에 린드그렌은, 어떻게 삶의 근본을 가르는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손댈 수 있었던가? 그이의 힘인가, 그이가 살았던 자유로운 땅의 힘인가. 존경스럽다.

방랑자와 고아원을 탈출한 고아소년. 경찰서에서는 그들을 한마디로 이렇게 규정짓는다. 그러나 방랑자 오스카는 실제 어떠한가? 그는 노동하고 싶을 때 죽어라고 노동하고, 때로 전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 뒤에 따르는 온갖 불이익은 사실 그의 몫이다. 물론 자유로운 구름같기도 하고 그의 말을 빌자면 '하느님의 굴뚝새'이기도 하고. 아코디언 반주에 멋진 노래로 5외레 동전을 받아 빵을 사기도 한다. 어떤 농가에 들러 빵을 얻기 위해 장작을 패면서 이렇게 말하는 오스카.

"때로는 일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에는 죽어라고 일만 하고 싶어. 그런데 때로는 전혀 일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언제나 꾸준히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지. 나는 내 가엾은 해골 속에다 그런 걸 넣어 둘 순 없어."

음. 확실히 멋진 말이다. 호사스런 말인가? 그러나,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지 않나? 우리 사회에는 지금 확실히 이런 문제가 슬며시 떠오르고 있단 말이다. 지금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모두 다 이렇게 살지를 원치도 않으니 다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물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렇게 살고 싶을 때,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테두리 바깥이어야 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테두리가 없어지기를. 1956년을 방랑으로 떠돈 오스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책에 나오는 사회보다 전혀 유연하지 않은 것 같다. 방랑자를 재워 줄 헛간도, 나누어줄 빵도, 그들의 노래를 듣고 던져줄 동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낯선 인물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린 사회. 다른 것을 내쳐야 내 존립 기반이 서는 사회.. 그러나 그럴수록 그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루저로서의 삶'.

이 사회의 바닥에서 느긋하게 살기, 방랑자 오스카의 삶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와 함께 짧지만 격한 방랑의 시간을 겪은 라스무스가 오스카의 꿈을 그의 꿈으로 받아들여 그와 함께인 방랑의 삶을 선택한다. 안락한 농가에서 양자가 되어 사는 것을 그토록 바라왔던 라스무스가, 그 모든 따뜻하고 편안하고,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오스카를 따라 나선다는 것, 그것은 진정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과감한 린드그랜의 선택이었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어쩐지 눈물이 핑 돌 만큼... 놀랍고, 안타깝고, 종내는 가슴이 벅차던... 소년 라스무스의 선택.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선택.

그러나 뒷 부분, 오스카가 잠시 돌아가는 집 부분이 오히려 사족만 같다. 정처없이 떠버린 독자의 마음을 슬쩍 지상에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천사같은 소년 라스무스를 위해 안타까워했던 독자들을 위해 반전을 준비한 것일까? 글쎄.. 그 따뜻하고 편안한 결말은 어쩌면 어린 독자들을 염두에 둔 것일까.... 여러가지로 궁금하다. 하여간 어른인 내게는 그 부분이 아쉬웠다. 물론 현실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를 따라 방랑의 길로 주저없이 나섰던 라스무스에게는 마치 배신과도 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실 라스무스는 행복감을 느낀다. 오스카를 기다리며 살기도 했을 부인까지도 그리 절망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이러저러 다들 행복하다. 언제나 떠날 수 있고 언제나 돌아올 수도 있다. 린드그렌은 돌아갈 곳이 있는 방랑자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시대에 한 철 열심히 벌어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유희하는 정신적 엘리트들의 삶이 아닌가? 현실 가능한 방랑... 어쩌면 유희로서의. 이런 점들이 궁금했다. 내게는 사족만 같았지만, 그 시대나 지금이나 이해받을 수 있는 방랑이란 그런 것 만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급진적이면 아예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지금까지도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이야기를 던져주는 책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사족과 같은 부분에 의혹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스무스와 오스카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여러가지, 잊고 사는 여러가지 중요한 것들을 들추어내서 읽는 내내 짜릿했다. 

이 오래된 책을, 우리나라에 나와서 이미 유명세도 탈 만큼 탄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6학년이 된 아들에게 다음 타자로 책을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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