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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여름 ㅣ 소년한길 동화 1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지음, 유딘 그림, 서미현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여느 유명한 작가의 책들과 달리,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만났다. 신문에서 몇 줄 읽었으니 전혀 백지상태였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준비 안된 마음으로 펼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이 책에 사로잡힌 것 같다. 너무나 묘한 매력을 풍기는 책이다. 말미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쓴 이는 정말 사람일까? 혹은 이 책의 한 부분으로 등장하는 탈출한 펠리컨, 혹은 코를 덴 너구리, 혹은 수탉 키다리, 혹은 도둑이었다가 당당히 경찰의 지위를 얻은 경찰고양이, 혹은 무르직, 혹은 동무들과 같은 상태로 겨울을 나기 위해 하루만에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떨구어낸 자작나무....들이 공동의 저자가 아닌가. 이런 공동의 저자들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을 어떤 사람이 받아서, 대자연을 향해 온몸이 확 열려있지 않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람의 말로 쓴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어디에서도 아무도, 자연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인간 뿐 아니라 동물, 식물 혹은 사물에게도 특별한 순간을 위한 준비가 있다고 절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을 본다. 따뜻한 화로 곁의 자작나무의 고심의 결과를 보고 안다. 오랜 준비 끝에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청명한 음악 소리를 들려주는 오르골에서도 그 신비의 순간을 본다. 그 신비로운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 모두들 숨을 멈춘다. 벽시계마저도 감탄한 듯 똑딱똑딱 소리를 죽인다.....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을 정적의 언어로 표현하는 작가에 찬사를 보낸다. 그 오르골의 단 한곡, '그리운 고향 산천'을 '우리' (이 책의 사람 등장 인물)들은 한동안 휘파람으로 불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늙은 찌르레기가 이 노랫가락을 따라부른다. 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이 녀석은 목쉰 소리로 이상한 노래를 지저귀곤 했다.. 우리의 추측으로는, 찌르레기가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아프리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배워왔을 것이다... 올해 겨울이 오면 찌르레기는 어딘가 아주 먼 강가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서 유럽의 '그리운 고향 산천' 노래를 불러 줄 것이다.
'우리'와 찌르레기는 큰 자연의 한 부분으로 흡족한 교감을 나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동안 대자연의 한 부분으로 너무나 흡족한, 내밀한 교감을 나누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