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들 주세요 사계절 중학년문고 2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양혜원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아이들의 책에서 어른들이 항상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는 교육적인 면(언어란... 사전은...), 독특하지만 가능하겠다 싶은 사건에 휩싸이는 학교의 반응에 대한 비판, 한 호기심 많고 독자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독자들이 지켜보게 한 점, 그 아이 주변의 선생님, 부모, 친구들의 여유롭고 사려깊었던 반응들 모두가 들어있는 신기한 책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위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내면서 놓치지 않는 재미,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다.

가끔 다르게 생각해 본다는 것, 자주 스스로 숙고해서 결정한다는 것, 그레인저 선생님이 그러했듯 가치있는 일을 위해 지켜보며 기다린다는 것, 닉이 그러했듯 그 가치있는 기다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런 모범적인 이야기들이 재미와 잘 어우러지는 것이 신기하고도 기분이 좋다. (그래도 내게는 마지막 그레인져 선생님의 편지, 그것을 본 닉의 방식 들이 어쩐지 너무 모범적이어서 조금 김빠지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재미가 있었다)

한 아이가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라는 흥미로운 물음에 대해 작가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소재를 가지고 타당하고도 재미있는 대답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2
엘리자베스 엔라이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참. 뉴베리상은 정말 그냥 주는게 아니다. 39년 작품이라니. 어디 이런 작품이 숨어있었던 것일까.

엘리자베스 엔라이트라는, 내게는 생소한 작가가 보여준 것은 정말 경이로운 것이었다. 제목이 주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내용이 마법에 관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뭔가 마법에 홀린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이런 책이 있었네!

얼마전 <우리들의 여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역시 생소했던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라는 작가가 쓴 책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시대 자체가 <자연>이라는 중요한 무대를 떠나서는 어떤 것들도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던지, 모든 이야기들이 자연과 더불어 혹은 자연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자연은 실로 무대일 뿐만 아니라 주역이었다. 이책, 골무-여름에서도 자연은 또 그러하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와서, 우리의 주인공 가넷을 따라다니는 것이 그다지 극적이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숨돌릴 틈 없이 따라다닌 것이다.
물흐르듯 청량하고도 경쾌한 이야기들, 안타까운 일들은 봄눈 녹듯 순하게도 사라지는 이야기들, 단순 소박한 농부의 삶을 회의하는 젊음과 강파른 세상 체험 끝에 농부의 삶에 안착하고픈 또다른 젊음의 이야기들이 한해간 가넷이 성장한 것 만큼이나 읽는 나를 넓게 또 깊게 만든다.

마법의 골무라. 원래의 제목에서는 그냥 골무일 뿐이다. 원제가 thimble summer였으니 제목에는 마법이 들어가 있지 않은 셈이다. 내용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하려고 마법을 넣었을까 아니면 독자를 더 끌어들일 효과적인 수단으로 마법을 사용한 것일까. 만일 후자였다면, 확실히 그 효과를 달성한 듯 싶다. 마법 골무가 가져다 준 여름 이야기라니, 얼마나 신비로운 제목인가. 하지만 책을 읽는 중간쯤까지도, 언제쯤 그 은골무가 신비로운 마법의 힘을 드러낼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중간을 넘기면서부터는, 아, 이 책에서는 마법이 마법이 아니네, 하면서 가넷의 여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넷, 에릭, 제이, 프리바디 씨... 이 깊고 넓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째서 우리는 이런 삶에서 이다지도 떨어져 있는가, 라는 은근한 아픔이 밀려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그들의 삶에 어찌 그런 여유가 배어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 모두 별개의 혹성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그토록 자연과 유리된 채 유지되는 우리의 삶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라바트 비룡소 걸작선 16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다른 책들, <왕도둑 호첸플로츠> 시리즈 세권과 <꼬마 마녀>만을 읽었을 뿐인데 정말 이 작가에 대한 믿음이 갔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에리히 캐스트너, 진 C. 조지나 로알드 달의 책들을 보고 감탄했던 것과 또다른, '야아 정말 이 작가는 굉장한 걸!'하는 탄복이 나왔다. (물론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그래서 다른 책들도 봐야겠다, 싶어 <크라바트>를 골랐다.

그런데 읽다보니, 어딘가 익숙했다. 막 찾으니 책이 나왔다. 1990년 중원출판사라는 곳에서 <마법의 학교>라고 나와서 사서 본 책이었다. 그림도 보니 같다. 그때는 꽤 떠들썩하게 신문에 광고하면서 등장했던 책이었던 기억이 난다. 신문 평을 보고 구해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인상적인 느낌을 받지 못해서 그냥 거의 잊혀져버린 책이 되어 있던 것이다.

크라바트 이야기는 그때와 많이 다르게 다가왔다. 정말 좋은 어린이 책을 신경써서 듬뿍 펴내는 비룡소라는 출판사도 미더웠을 것이다. 내가 이 작가에 반한 뒤에 읽어서도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젖고, 취하고, 나중에는 이야기에 녹았다. 모두들 잠든 밤에 촛불처럼 홀로 앉아 읽어서일까. (직립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불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작가가 크라바트 전설에 심취해 십여년을 숙고하며 재창조해냈다는 이 이야기는, 정말 프로이슬러라는 작가를 만나 행복하게 세상을 주유하게 되었다. 음울하고 아득한 중세 시대의 독일이라는 분위기를 배경으로, 크라바트는 검은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사려깊고도 확신에 찬 눈을 하고 앉아있는 듯하다. 책 전체에는, 몇 안 되지만 훌륭한 그림들이(아마 판화인 듯) 충분히 이 책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있다.

꼬마 마녀와 호첸플로츠 같은 유쾌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결코 가볍게 떨어지지 않았던 작가의 노련하고 따뜻한 마음이 이 책에서는 더욱, 마치 따뜻한 손으로 힘들고 지친 이들을 어루만져 혼곤한 잠으로 빠지게 하듯 아련하고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을 하나의 성장동화로 볼 수도 있겠고, 요즘 너나없이 좋아하는 마법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톤다나 유로의 우정이나 칸토르카의 신비한 사랑의 힘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어도 좋다. 하나하나 적잖은 무게를 지닌 소재들로 신비로운 무늬를 짜나가는 프로이슬러의 솜씨에 마냥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이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도둑 호첸플로츠 1 비룡소 걸작선 7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 요제프 트립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재미있다. 많은 어린이책을 읽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책은 압권! 주변에 보라고 권했을 때도 한결같이, '재밌어' 가 아니라 '너무 재밌어!! 다음 것 없니?' 라고들 한다. 그러면 '물론 있지!' 하면서 2권이랑 3권을 준다. 그것도 역시 재밌다.

그냥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재미라면, 여러가지 재미가 있다. 아이들이 쉽게 빠져드는 말초적인 재미도 있다. 이 책은 호기심을 유발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상당히 지적인 방법으로 공감을 사기도 한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그 생각이나 행동으로 한껏 유쾌함을 선사한다. 이책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마력같은 것이 있나보다.

물론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심술궂게 남을 괴롭히기도 하는 단 두사람, 왕도둑과 마법사까지도 그렇다. 너무나 용감하면서 또 많은 경우 총명하기도 한 두 아이들, 제펠과 카스페를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고, 약간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오로지 성실하고 자부심 가득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는 딤펠모저 경감을 따라다녀도 재미있고, 요리 솜씨에 있어서 우리 독자들마저 군침돌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신 데다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웃기는 할머니를 따라다녀도 재미있다.

게다가 2권과 3권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이름이 도저히 생각 안나는) 국가가 공인한 투시력의 소유자, 수정구슬의 주인까지. 독특하고 기발한, 생각만 해도 유쾌해지는 아이디어들로 가득차 있는 이 책은, 흐름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군더더기도 전혀 없다. 게다가 이야기의 흐름도 얼마나 박진감있게 빠른지 모른다.

호첸플로츠가 2권의 앞장면부터 탈출하면서 시작하는데, 경감에게 '아이구 아파, 맹장이 아파!' 라고 속이고는 '정말 아파?'하고 들어오는 순간 꽝!하고 내리치고는 경감을 꽁꽁 묶어두고 달아난다. 바로 소방서 안에 있는 소방 호스로! 정말 있음직하지 않은가!

왕도둑은 유유히 집으로 돌아간다. 숲 속 도둑의 집으로. 그 곳은 이미 들통이 난 곳이다. 문 앞에는 나무 판자 조각으로 꽝꽝 못질이 되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표시되어있다. 왕도둑은 눈을 찡긋하며 두 손을 비비며 이렇게 말한다. '정말 멋져...'
보통 도둑들은 언젠가 자기 은신처가 발각될 경우를 대비해서 도망칠 수 있는 두번째 동굴을 마련하곤 한다. 그러나 왕도둑 왈, '두번째 동굴이 무슨 필요가 있어? 필요한 건 오로지, 아무도 모르는 두번째 문 뿐이지. 꾀만 잘 쓰면 된다구'

그리고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두번째 문으로 자기의 집으로 쏙 들어간다. 정문은 꽝꽝 닫혀있으니 아무도 왕도둑이 거기에 산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신처가 아닐까? (마치 탐정 소설에서 허를 찌르는 수법으로 자주 쓰이곤 하듯)

이렇게, 기발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명쾌하기까지 한 심리적 논리가 우리를 압도하는 것이 아닐까. 도둑은 가짜로 맹장이 아파, 하면서 경감을 속여 달아나고, 나중에 도둑에게 잡힌 두 아이들과 할머니는 도둑에게 독버섯을 먹인 척 속임수를 써서 멋지게 상황을 뒤집어버린다. 그걸 왕도둑은 또다시 뒤집고, 그때 성실하기만 한 경감이 마침 제때 나타나 또다시 상황을 뒤집고...절대 억지스럽지 않은, 정말 기가 막히는 반전 또 반전인 셈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껏 더 살려주는 요제프 트립의 그림도 정말, 더할 나위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독일어 원본은 읽을 수도 없겠지만, 문장만을 본다면 그 또한 얼마나 매끄럽고 재미나게 되어있는지 모른다. 구어체로 '...했어.' 나 '...했지.' 로 마무리 짓고 있는 것도 아마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을 것이다.

책도 예쁘고, 책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고... 정말 드물게, 읽고 보고, 또 만지는데까지 즐거움만을 준 책이었다. 아이건 어른이건 가리지 않고 '안보면 정말 후회할 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디숲 속의 이쁜이 1 이원수 문학 시리즈 6
이원수 지음 / 웅진주니어 / 1998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나오는 아이들 동화책들을 보면 거의 소설같은 생각이 든다. 뭐 본질적으로야 동화든 소설이든 마찬가지일것이고, 독자 대상이 아이들이냐 어른들이냐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지만, 요즘의 동화들은 종종 그 아이와 어른의 영역을 거침없이 오가는 것 같다. 그래서 동화는 아이들의 책이라는 주장은 이제 더이상 덧없는 주장이 된 듯하다. 나만 해도 <동화읽는 어른>이라는 모임에서 공부하며 동화를 자나깨나 읽고있다. 그러다보면 더이상 동화는 아이들에게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아이에게 좋은 책, 어른에게 좋은 책, 이런 구분은 별로 좋은 잣대가 아니다. 아이에게 좋은 책이 어른에게도 좋은 책이다라는 말이 동화에서는 그대로 들어맞는다. 좋은 동화책은 아이시절을 잊고 사는 어른들에게 그야말로 훌륭한 연결 다리가 된다. 아이와 어른을 이어주는 굳건한 조화의 다리, 그 이상형이 바로 동화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림책, 동시집, 이러한 형태의 아이들 책 전반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쓴 이원수 선생님은 정말 특별한 분이다. 한국 아동 문학에 너무나 확실하고 두텁고도 올바른 발자국을 남기신 분이라 더 말하기가 어색할 지경이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있고, 그 하나하나가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다. 요즘에야 이야기로도 글쓰기로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작가군도 한층 두텁지만, 이원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를 생각하면 선생님의 작품들은 더욱 빛난다.

<잔디숲 속의 이쁜이>는 지금 읽어도 아주 재미있다. (나만 그런지 여러 아이들에게도 물어봤는데 한결같이 진짜 재밌다는 것이다) 시대를 넘어서는 재미, 그것은 삶의 보편성에 그 근거를 두어서일 것이다.

개미라는 공동생활 집단, 그 속의 규율, 엄격함, 이런 것들이 아마 작가가 당시에 느꼈던 시대상의 답답함이었으리라. 이쁜이는 정말로 연약하디 연약한 개미지만, 그 전통적인 삶의 양식에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그리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새 삶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을 스스로 일구어 나간다.
이런 주제를 개미들의 생활에 도입하여 풀어나간다.

이쁜이는 개미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개미는 아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폭력적인 그곳을 탈출하여 새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모든 개미를 변화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띤 정의의 용사가 아니라 여전히 작고 약한, 그러나 자신의 세상에 대한 의지가 뚜렷한 용감한 개미다. 주변의 개미를 변화시키고, 적이나 우리 편이나 할 것 없이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불쌍한 마음을 갖고 도와준다.

사람 이야기로 친다면, 마치 핍박받는 집단이 민족애 등으로 똘똘 뭉치기 쉬운데 오히려 인류애까지를 지향한다고 할까. 이원수 선생님의 삶의 지향과 고민이 느껴지는 이야기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