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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둑 호첸플로츠 1 ㅣ 비룡소 걸작선 7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 요제프 트립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재미있다. 많은 어린이책을 읽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책은 압권! 주변에 보라고 권했을 때도 한결같이, '재밌어' 가 아니라 '너무 재밌어!! 다음 것 없니?' 라고들 한다. 그러면 '물론 있지!' 하면서 2권이랑 3권을 준다. 그것도 역시 재밌다.
그냥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재미라면, 여러가지 재미가 있다. 아이들이 쉽게 빠져드는 말초적인 재미도 있다. 이 책은 호기심을 유발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상당히 지적인 방법으로 공감을 사기도 한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그 생각이나 행동으로 한껏 유쾌함을 선사한다. 이책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마력같은 것이 있나보다.
물론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심술궂게 남을 괴롭히기도 하는 단 두사람, 왕도둑과 마법사까지도 그렇다. 너무나 용감하면서 또 많은 경우 총명하기도 한 두 아이들, 제펠과 카스페를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고, 약간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오로지 성실하고 자부심 가득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는 딤펠모저 경감을 따라다녀도 재미있고, 요리 솜씨에 있어서 우리 독자들마저 군침돌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신 데다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웃기는 할머니를 따라다녀도 재미있다.
게다가 2권과 3권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이름이 도저히 생각 안나는) 국가가 공인한 투시력의 소유자, 수정구슬의 주인까지. 독특하고 기발한, 생각만 해도 유쾌해지는 아이디어들로 가득차 있는 이 책은, 흐름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군더더기도 전혀 없다. 게다가 이야기의 흐름도 얼마나 박진감있게 빠른지 모른다.
호첸플로츠가 2권의 앞장면부터 탈출하면서 시작하는데, 경감에게 '아이구 아파, 맹장이 아파!' 라고 속이고는 '정말 아파?'하고 들어오는 순간 꽝!하고 내리치고는 경감을 꽁꽁 묶어두고 달아난다. 바로 소방서 안에 있는 소방 호스로! 정말 있음직하지 않은가!
왕도둑은 유유히 집으로 돌아간다. 숲 속 도둑의 집으로. 그 곳은 이미 들통이 난 곳이다. 문 앞에는 나무 판자 조각으로 꽝꽝 못질이 되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표시되어있다. 왕도둑은 눈을 찡긋하며 두 손을 비비며 이렇게 말한다. '정말 멋져...'
보통 도둑들은 언젠가 자기 은신처가 발각될 경우를 대비해서 도망칠 수 있는 두번째 동굴을 마련하곤 한다. 그러나 왕도둑 왈, '두번째 동굴이 무슨 필요가 있어? 필요한 건 오로지, 아무도 모르는 두번째 문 뿐이지. 꾀만 잘 쓰면 된다구'
그리고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두번째 문으로 자기의 집으로 쏙 들어간다. 정문은 꽝꽝 닫혀있으니 아무도 왕도둑이 거기에 산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신처가 아닐까? (마치 탐정 소설에서 허를 찌르는 수법으로 자주 쓰이곤 하듯)
이렇게, 기발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명쾌하기까지 한 심리적 논리가 우리를 압도하는 것이 아닐까. 도둑은 가짜로 맹장이 아파, 하면서 경감을 속여 달아나고, 나중에 도둑에게 잡힌 두 아이들과 할머니는 도둑에게 독버섯을 먹인 척 속임수를 써서 멋지게 상황을 뒤집어버린다. 그걸 왕도둑은 또다시 뒤집고, 그때 성실하기만 한 경감이 마침 제때 나타나 또다시 상황을 뒤집고...절대 억지스럽지 않은, 정말 기가 막히는 반전 또 반전인 셈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껏 더 살려주는 요제프 트립의 그림도 정말, 더할 나위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독일어 원본은 읽을 수도 없겠지만, 문장만을 본다면 그 또한 얼마나 매끄럽고 재미나게 되어있는지 모른다. 구어체로 '...했어.' 나 '...했지.' 로 마무리 짓고 있는 것도 아마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을 것이다.
책도 예쁘고, 책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고... 정말 드물게, 읽고 보고, 또 만지는데까지 즐거움만을 준 책이었다. 아이건 어른이건 가리지 않고 '안보면 정말 후회할 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