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바트 비룡소 걸작선 16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다른 책들, <왕도둑 호첸플로츠> 시리즈 세권과 <꼬마 마녀>만을 읽었을 뿐인데 정말 이 작가에 대한 믿음이 갔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에리히 캐스트너, 진 C. 조지나 로알드 달의 책들을 보고 감탄했던 것과 또다른, '야아 정말 이 작가는 굉장한 걸!'하는 탄복이 나왔다. (물론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그래서 다른 책들도 봐야겠다, 싶어 <크라바트>를 골랐다.

그런데 읽다보니, 어딘가 익숙했다. 막 찾으니 책이 나왔다. 1990년 중원출판사라는 곳에서 <마법의 학교>라고 나와서 사서 본 책이었다. 그림도 보니 같다. 그때는 꽤 떠들썩하게 신문에 광고하면서 등장했던 책이었던 기억이 난다. 신문 평을 보고 구해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인상적인 느낌을 받지 못해서 그냥 거의 잊혀져버린 책이 되어 있던 것이다.

크라바트 이야기는 그때와 많이 다르게 다가왔다. 정말 좋은 어린이 책을 신경써서 듬뿍 펴내는 비룡소라는 출판사도 미더웠을 것이다. 내가 이 작가에 반한 뒤에 읽어서도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젖고, 취하고, 나중에는 이야기에 녹았다. 모두들 잠든 밤에 촛불처럼 홀로 앉아 읽어서일까. (직립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불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작가가 크라바트 전설에 심취해 십여년을 숙고하며 재창조해냈다는 이 이야기는, 정말 프로이슬러라는 작가를 만나 행복하게 세상을 주유하게 되었다. 음울하고 아득한 중세 시대의 독일이라는 분위기를 배경으로, 크라바트는 검은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사려깊고도 확신에 찬 눈을 하고 앉아있는 듯하다. 책 전체에는, 몇 안 되지만 훌륭한 그림들이(아마 판화인 듯) 충분히 이 책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있다.

꼬마 마녀와 호첸플로츠 같은 유쾌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결코 가볍게 떨어지지 않았던 작가의 노련하고 따뜻한 마음이 이 책에서는 더욱, 마치 따뜻한 손으로 힘들고 지친 이들을 어루만져 혼곤한 잠으로 빠지게 하듯 아련하고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을 하나의 성장동화로 볼 수도 있겠고, 요즘 너나없이 좋아하는 마법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톤다나 유로의 우정이나 칸토르카의 신비한 사랑의 힘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어도 좋다. 하나하나 적잖은 무게를 지닌 소재들로 신비로운 무늬를 짜나가는 프로이슬러의 솜씨에 마냥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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