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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의 하얀말
오츠카 유우조 재화, 아카바 수에키치 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1년 3월
평점 :
오츠카 유우조 글, 아카바 수에비치 그림.넓고 넓은 풀밭으로 펼쳐진 초원의 나라 '몽골'의 신비로운 악기 <마두금>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이야기는 우리 민족에게도 익숙하다. 늙은 할머니와 둘이 외롭게 살아가는 양치기 수호. 속 깊고 일도 열심히 하는 이 아이에게 어느날 평생의 동무가 되어줄 갓난 하얀 망아지가 생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도 망아지도 훌륭하게 자라나 서로는 깊이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원님이 여는 말타기 대회. 역시 빼어나게 잘 달리는 하얀 말. 그리고 약속을 팽개치고 그냥 수호에게서 하얀 말을 빼앗아버리는 악랄한 원님. 수호는 죽을만큼 맞은 뒤 집으로 쫓겨난다. 하얀 말은? 원님이 올라타려 하자 내치고 달아난다. 그러나...갖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이라는 원의 명령에 하얀 말은 온몸에 화살을 맞고 달리고 또 달려 수호에게로 돌아오지만.
'내 사랑하는 하얀 말아, 제발 죽지 말아다오!' 라는 수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숨을 거두고 만다. 슬픔과 분함으로 밤을 지새는 수호에게, 하얀 말은 꿈속에 나타나 부드럽게 말을 건다. '내 뼈와 가죽과 심줄과 털로 악기를 만들면 난 언제까지난 네 곁에 있을 거야.'그렇게 태어난 마두금이라는 악기는 드넓은 몽골의 초원에 울려퍼진다. 그리고 수호는 언제나 하얀 말이 그 곁에 있음을 느낀다....는 신비롭고 애닯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몽골의 민화라고 한다. 우리네 옛이야기처럼, 악랄한 윗것들에 의해 핍박받는 고달픈 민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리 짓밟으려고 해도 다시 새로이 태어나 더 넓게 더 크게 여럿의 마음을 사로잡는, 약하나 결코 약하지 않은 강한 민초들의 염원을 담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고난의 삶을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는 정서적으로 깊이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아카바 수에케치의 그림은...이 책의 그림을 그린 작가는 이 책으로 브룩클린 미술관 그림책상과 안데르센상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을 소재로 한 그림들에서 보여지는 매끈하고 간결한 판화적인 느낌의 선이 아니라, 마치 그 민족이 그린 것처럼, 몽골의 굵직하고도 호쾌한 듯, 무게가 느껴지는 선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큼 시원스레 펼쳐진다.
그의 선은 너무나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결코 짙게 드러나지 않는 옅은 갈색 혹은 회색조의 굵은 마무리선은 더할 나위없이 이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분노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조차도 이 옅은 마무리선은 읽는 나를 고요히, 그리고 서늘하게 가라앉힌다. 나의 분노는 그 선을 따라, 절대로 뜨겁고도 격렬하게 끓어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차갑게, 고요히, 응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얼어붙는 분노의 마음은, 하얀 말의 새로운 부활에 의해서 다시 가슴을 저미며 승화되어간다.
아픔을 간직한 채로, 그러나 결코 폭발하지 않는 분노는, 더 넓고 더 깊고 더 영원히 모두를 어루만진다. 이제 수호와 하얀 말의 이야기는 길이 하나의 전설이 되어 많은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이야기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불의에 눈뜨게 하리라. 그림 작가는 이 이야기에 더없이 적합한 그림을 찾아낸 것 같다. 가로로 긴 책의 판형은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시선은 펼쳐진 책의 이끝에서 저끝으로 꿈꾸듯 달려간다. 수호의 꿈 속을 달려온 하얀 말은 황톳빛 아늑한 꽃밭에서 그 하얀 자태를 꿈처럼 드러낸다. 이렇게, 그림작가의 그림들은 펼치는 면마다 나를 수호와 하얀 말의 아프고도 신비로운 이야기 속으로 강렬하게 끌어들인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어찌 고맙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