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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ㅣ 내가 처음으로 읽는 세계명작 2
그림형제 원작, 최숙희 그림, 보물섬 구성 / 웅진주니어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빨간 모자> 이야기는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많은 그림 작가들에 의해 새로 그려지는지 모른다. 이 책도 그림 형제의 원작에 우리나라의 꽤 유명한 작가인 최숙희씨가 그림을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 옛이야기를 들을 때 원작이 누굴까, 라는 의문을 갖지 않듯 나는 이 이야기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얼마전에야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썼거나 혹은 정리한 사람이 프랑스의 샤를 페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책에서 페로가 쓰거나 정리한 옛이야기 열편을 보게 되었다. 거기 빨간 모자 이야기가 있었고, 우리가 아는 그림 형제의 이야기와는 달리 빨간 모자가 늑대에게 꿀꺽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나는 걸 보고 놀랐다. 그 귀엽고 순진한 아이가 그냥 아무 대책없이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이 나다니!!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였나?
그런 의문은 이어지는 페로의 친절한 해설에 의해 금세 풀렸다. 페로 왈, '예쁘고, 건강하고, 상냥한 소녀들이여, 늑대를 조심할지어다!!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테니... 이 세상에는 교묘한 기질을 가진 늑대들이 얼마나 많은지. 친하게 굴면서 유쾌하고 부드러운 늑대들이 바로 그런 늑대들이다. 잡아먹히는 소녀들이 많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
나는 그만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페로가 이 이야기를 쓸 때는 그저 순진하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을 늑대같은 남자들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쓴 것이로구나. 그것을 독일에서 그림 형제가 그 시대, 그 사회에 맞게 고쳐쓴 것이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웅진에서 나온 이 <빨간 모자>를 보고는 처음에 그 환상적인 색채나 구성 같은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최숙희씨의 그림을 책으로 만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대략 대여섯 해 쯤 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빨간 모자의 이야기에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 넣다니! 하면서 딸에게 선물하였다. 그 이후로 최숙희씨의 작품이 속속 나왔고, 지금 그이는 아주 중요 작가로 매김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만들어진 <누구 그림자일까?>라는 책을 보고 그이의 역량을 다시 새삼 느꼈다.
하지만, 정말 실망스러운 일도 있다. 두어해 전인가, 시공사에서 나온 <빨간 모자>라는 책을 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책은 그림 형제 원작에 베르나데트 와츠라는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었는데, 네버랜드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이 시리즈는 세계의 걸작 그림책들을 판형이나 글자의 배치들까지도 원작 그대로 소개해서 한국의 그림책 문화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던 최초의 시도였다.
그 시리즈에, 와츠가 그린 그림을 보다가 많이 놀랐다. 최숙희씨의 그림책에서 보았던 구조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색채나 그림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너무 비슷했고, 늑대가 배아파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최숙희씨의 그림에 나오는 늑대도 상당히 이색적으로 뭔가 뾰족뾰족한데, 와츠의 그림도 비슷했다. 특히나 늑대가 떼굴떼굴 뒹구는 장면의 구성은 완전히 같았다. 글쎄,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와츠의 책을 너무 많이 참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독창적인 작가를 만났구나, 했던 내 기대감은 허망하게 스러져버렸다. 이제는 그냥, 와츠의 구성을 빌어 최숙희 스타일로 그린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색채나 그림체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구성에 있어서는 너무 닮았다. 아무래도 맨처음 내가 그이에게 부여했던 독창적인 화풍, 독창적인 구성에 대한 찬사는 접어야할 것 같다. 그 뒤로도 최숙희씨는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보면 아, 이건 그이의 그림이구나, 라는 짐작이 가는 작품들이 많다. 멋진 그림과 글까지 엮어내는 솜씨는 아주 훌륭하고 내용도 아주 독창적이다. 하지만 이 <빨간 모자>를 볼 때마다 약간은 언짢은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