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눈동자 미래그림책 17
에릭 로만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아!! 바로 이런 그림책이 보고 싶었다. 몇 편의 소개글을 읽고 에릭 로만이라는 작가를 확인하고(그는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을 만든 사람이다), 약간의 기대를 하며 책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책이 드디어 내 손에 쥐어진 순간!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열망으로 가득차는 느낌! 숨을 잠시 멈추는 시간. 이 그림책은 내게 너무나 좋았다. 내가 바라던 진정한 판타지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공에 정박해있는 잎사귀만한 배를 타고 아이는 항해를 시작한다. 너른 바다위를 거쳐 도착하는 곳은 그냥 머나먼 섬. 아이에게는 꿈으로만 가능할 것 같은 거대한 모래 물고기를 만들고 살짝 지친 눈을 감은 사이. 수없이 꿈꾸어왔을 열개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하나씩 다가온다. 어느새 밤이 들고 그 푸른 밤은 달빛과 호랑이들의 눈빛으로 환하기 그지없다.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은 모두들. 모래 물고기가 밤 하늘을 바닷물 삼아 헤엄치는 순간, 바다 속에서 잠자던 물속 세상 친구들이 모두 위로위로 솟구쳐 오른다.

달빛과 별빛과, 바다와 모래와 바람의 소용돌이. 바다는 물고기들을 붙들었지만 소용없이... 물고기들은 모두 물 밖으로 도망치고.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푸른 밤하늘인지 푸른 밤바다인지 모를 그 속을 아이와 호랑이들과 바다 물고기들은 밤 깊도록 즐겁게 어울려 논다. 초롱초롱 빛나는 수많은 맑은 눈동자들. 만족과 기쁨의 물결이 그들을 고요히 감싼다. 거기에는 마치, 천상의 기쁨이 있다. 무르익는 그들 모두의 놀이. 그 놀이의 기쁨마냥 모닥불이 고요히 타오르고, 마치 눈동자처럼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로 아이와 호랑이들과, 밤 빛에 물들어 파랗게 반짝이는 물고기들이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아득한 시 공간의 체험을 나는 그들과 함께 한다.

어느덧 아침 햇살이 새벽을 몰아내고 물고기들에게 바다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햇살이 이윽히 번지기 시작하는 모래밭에는 이제 아이와 호랑이들만이 오롯이 남아있다. 그리고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시간을 보낸 아이와 호랑이들은 이별마저도 아쉽지않다. 가슴 가득 행복이 그득차 조그만 아쉬움조차 들어설 여지가 없는 듯... 푸른 하늘 조용한 바닷가, 이제는 아무도 춤추지 않지만 땅거미가 지고, 둥근 달이 다시 뜨면, 모두 돌아올 거예요....라는 마무리.

조각달같은 배가 다시 하늘을 떠서 돌아가고, 밤샘 놀이에 지친 호랑이들은 따스한 모래밭에서 휴식의 단잠에 빠져든다. 아이는 꿈속 깊은 세상에서 언제나 갈망하는 환상의 세계를 맘껏 맘껏 즐기고는 다시 떠난다. 언제나 만나고 싶었을 불타는 눈동자를 가진 호랑이들과도 어울리고, 나뭇잎같은 배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없이 내 작은 몸을 감싸고 하늘을 바다삼아 달리고, 밤이 들면 물고기들은 모두 뛰어나와 밤하늘인지 밤바다인지 경계없는 그 곳을 날아다니는, 신나고 신나는, 거침이라고는 없는 충족의 세계.

이렇게 쓰자니 내 가슴은 다시 두근거린다. 어쩌면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 훅, 숨을 몰아쉰다. 이런 특별한 체험은 이 책을 보는 모두의 것일까 아니면 나만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그림책은 어째서 이다지도 내게 특별한 것일까. 그 이유야 두고두고 하나씩 밝혀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내게는 잠시, 내 인생이 두 개로 갈라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그림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뒤의 인생이라는 두 개로...(^0^ 잠시동안 진짜 그랬는데...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이, 그림책을 펴들고 보는 그 순간 나는 어디에 있었던가? 나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 그 거침없는 밤의 놀이 어딘가에 떠있었으리라... 그만큼이나 내게는 강렬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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