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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기차와 커다란 동물들
크리스토퍼 워멀 글 그림, 공경희 옮김 / 행복한아이들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은 초등 6학년으로 훌쩍 커버린 딸이 어릴 적 갖고 놀던 나무로 만든 꼬마기차가 생각난다. 알록달록한 색깔들, 뚜껑 없는 자그마한 상자 같던 기차의 몸체들이 그대로 어린 아이를 사로잡았다. 높다란 짐이라도 싣고 갈라치면 어느새 기우뚱 옆으로 넘어가며 헐렁한 연결 고리가 풀려버리곤 하던, 마치 아이의 마음과도 같던 정다운 꼬마기차. 이 책의 꼬마 기차는 꼭 그것과 닮았다. 아마도 이 책을 지은 크리스토퍼 워멀은 바로 그것을 닮은 장난감 기차를 보고는 금세 그것에 반했으리라. 그리곤 아이들과 함께 거기에 온갖 짐을 실어가며 칙칙폭폭 달려보기도 했겠지. 이 책을 보고 나면, 정말 반드시 그랬을 거라는 확신마저 든다. 아이의 마음이 되어서 만든 그림책들도 많이 있지만, 이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보노라면, 어느새 이런 생각이 든다.
'야 이것, 우리가 노는 거랑 정말 비슷하잖아!! 근데 이렇게 놀면 진짜 더 재미있겠다!!'
딱 아이들 놀이 기차만한 기차에 딱 그만한 기차길이 펼쳐진다. 그 기차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름도 너무나 매혹적인 '바닷가역' '숲역' '밀림역'이 나온다. 기관사 말고는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을 듯한 작은 기관사가 장난감 인형처럼 빳빳이 서서 세 칸짜리 기차를 운전해 간다. 바다에 사는 바다코끼리가 보이고 숲에 사는 곰, 밀림에 사는 코끼리도 언뜻 보인다. 그리고 저너머 가게들로 가득한 읍내역. 그 길을 따라 기차는 그 작은 몸체에 그 큰, 우스울만치 큰 동물들을 하나씩 희한하게도 태우고 또 희한하게도 잘 달려간다.
모두들 읍내에 맛있는 걸 사러 나온지라, 기차가 더 무거워지면 안된다고 걱정하는 기관사 말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하고 참 많이들도 산다. 바다코끼리는 정어리를 육백마리나, 곰은 빵과 꿀을 여러 포대를, 코끼리는 과일들을 수십 봉지나 사서 역으로 돌아온다. 터져나오는 웃음!! 맛있는 것 앞에서 절대 자제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걸 보고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나하고 똑 같네! 아니 나보다 훨씬 더하네!!' 도저히 다 못 싣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기관사에도 아랑곳없는 동물들, 천연덕스레 올라타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그 많은 짐을 기뿐히 들고 껴안고 올라타 앉는다.
동물들의 눈은 뭘 그리 놀라, 하는 듯하고 기관사의 눈만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하다. 또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코끼리 아줌마가 한 마디 조언을 한다. '균형만 잘 잡으면 돼.' 물론 그 벌만 한 마리 날아들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벌은 날아들었고, 아줌마는 재채기를 했고, 오! 이럴 수가! 기차는 뒤집어지고 동물들은 나뒹굴고 먹을 것들은 사방으로, 마치 조리퐁 몇 봉지를 초록 카핏에 쏟아부은 듯 흩어져있다. 기관사만 불평을 해대는데 동물들은 아주 이참에 좋은 생각이 있다. '우리 잔치나 벌일까요?' (또 웃음^^) 각자의 방식으로 멀리 있는 친구들까지 다 부르고, 모두들 신나게 먹어치우는데, 이렇게 굉장한 잔치는 없었다나...
모두 즐겁지만 기관사는 즐겁지 않다. 기차가 넘어져 있으니! 하지만 간단하다. 동물들은 힘을 모아 슥, 기차를 세운다. 그런데도 이 많은 동물들을 어떻게 다 태워? 하며 여전히 기분이 안 좋은 기관사, 하지만 그게 뭘! 배부른 동물들은 모두들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리고, 꼬마기차는 바다 너머로 해가 질 무렵 아무도 태우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기관사는 속으로, '정말 굉장한 하루였어. 오늘밤에는 푹 자야지' 생각하고, 그날 밤 푹 잤단다.
색연필로 그린 듯한 정다운 그림들, 위트가 넘치는 재미있는 말들, 걱정 많은 기관사와 한결같이 천연덕스러운 동물들이 어찌나 기분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워멀과 같은 이야기꾼이 우리 옆에 한 사람 쯤 있으면 인생이 어떤 불행으로 떨어지더라도 다시 비시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우울해질 때 이 책을 들춰본다면, '뭘, 그리 사소한 걸 가지고 내가 왜 그랬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로 이렇게, 그림책은 어른들에게도 얼마나 유익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