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미래그림책 8
야시마 타로 글 그림, 정태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모모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고, 이 이야기를 더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모모가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세 살 생일 선물로 받은 빨간 장화와 파란 우산을 드디어 활짝 펴고 빗속을 간다. '나는 똑바로 걸어갈 거야. 마치 다 큰 숙녀처럼!' 이렇게 혼자서 속삭이며 사람들로 붐비는 비오는 거리로 나선다.

그림책은, 표지부터 심상찮고 표지의 안쪽인 속지도 그러하더니, 한 장을 들추면 나오는 속표지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랜 듯한 거친 나무 액자 안에 속표지 그림이 들어있다. 그 안에는 노랗고 빨갛고 아기자기한 무늬가 있는 아이 의자에 파란 우산이 기대져 있고 빨간 장화는 의자의 앞쪽에 놓여있다. 이 한 편의 정물을 가만,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파란 우산과 빨간 장화와 그 주인의 기다림이 내게 느껴진다. 그림책을 한 번 두 번, 보고 나서 다시 앞을 볼 때는 더 그랬다.

이미 모모는 혼자서 장화와 우산을 쓰고 나갈 만큼의 준비가 되어있는데, 모모는 생일날 그것을 받으면서 바로 그만큼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 봄, 여름이 지나도록 날씨는 얄밉도록 맑다. 엄마는 언제나 '기다리렴, 기다리면 비가 온단다.' 라는 말씀만 하신다. 그런데 모모는 초조하다. 그때, 반짝! 하는 생각.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어!'
'바람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어!'

그래서 우산이 필요하다고 엄마에게 말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기다리라고만 한다. 그렇게 모모는 아주아주 많은 날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기다린다. 기다려야 하는구나...
그리고 어느날, 드디어 비. 모모는 붐비고 소란스런 거리로, 혼자서 속삭이며 나선다. '나는 똑바로 걸어갈 거야.' 비는 하루종일 내리고, 다시 한번 모모는 설렘과 다짐 속에 빗방울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우산 아래 선다. 그 우산 아래서 듣는 빗방울들의 연주는 너무나 인상적이다. 모모는 빗방울들의 노래를 오는 내내 듣지만...그렇게 들었던 노래들도 이제 더는 기억하지 못하는 숙녀가 되었다.

어엿한 숙녀가 된 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두 뺨을 발그레 물들이고 살짝 웃음을 머금은 성장한 모모, 그녀에게는 그녀가 기억하든 하지 못하든 그런 기다림과 설렘, 그 기다림을 충족시켜 주었던 빗방울의 아름다운 연주가 있는 것.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한 편의 시를 듣는 듯,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듯... 파란 우산 밑에 똑 또옥 똑 또옥, 하는 빗방울 연주를 듣는 모모를 보는 것도 한 아이의 앨범 사진 앞에 선 듯. 마음이 움직인다.

글로 써 놓은 빗방울 연주 소리는 신비롭다. 글씨 옆에는 실로폰이 그려져있다. 그 소리를 소리내어 읽다가 나는, 아이와 함께 실로폰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읽었던 그 소리를 실로폰으로 통 통 두드려 보았다. 내가 읽었던 그 소리는, 파#-->레# 이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왔다. 아이와 나는 실로폰으로 또옥 또옥 또로록 하는 소리를 만들며, 모모의 설렘이 우리의 마음 안으로 그대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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