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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친구들
아베 히로시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읽어서 즐겁다! 알아서 즐겁다! 표지에 제목 앞에 적혀있는 글이다. 그런데, 진짜 그렇다. 낙타를 1번으로 하여 코끼리, 기린, 얼룩말... 하면서 39.공작까지 동물원 식구들을 소개하는 걸 보면 정말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한 이만한 정보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백과사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이 되어있는 나열식의 정보가 아니라,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따끈따끈하고 생기넘치는 정보가 가득하다. 그런 정보를 알게 되는 과정은 정말 즐겁다.
그런데 악어가 팔굽혀펴기를 한다고? 15번으로 소개된 악어에 대한 설명은 그대로 하나의 짧은 그림책이다. 악어는 옛날옛적부터 팔굽혀펴기를 했대. 그렇게 몸을 단련하기 때문에 악어는 꽤 빨리 달릴 수 있어. 그러니까 물 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옛날옛적부터 악어는 무서운 동물. 악어가 쫓아오면 어떻게 할까?
1. 악어는 느림보처럼 보이지만
2. 달리면 빠르다.
3. 하지만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건 서툴다. 그러니까 지그재그로 뛰면서 달아나면 된다.
꼬리도 무섭다. 악어는 입만 무서운 게 아니다. 꼬리에 맞으면 큰일. 꽁꽁 묶어두자. 그옆에 말풍선으로 (요렇게 살살 묶어도 괜찮을까?) 라는 악어의 개구진 얼굴. 악어도 알에서 깬다. 무시무시한 악어도 새끼 때는 귀엽다. 새끼 때부터 팔굽혀펴기를 한다.
이런 내용들이 좍 펼친 한 면에, 작가 특유의 재미있는 일러스트와 함께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져있다. 무서운 악어를 소개하는데도, 무섭다- 무섭다를 계속 강조하는데도 입가에 실실 웃음이 번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동물원의 동물들과 동물원에 구경오는 아이들을 아마 너무너무 좋아하는 듯한 동물원 아저씨의 설명도 재미있고, 아무리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원산지, 크기, 수명 어쩌구 하는 이야기보다 무서운 악어가 쫓아올 때는 지그재그로 달아나! 라고 외치는 아저씨의 그림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작가인 아베 히로시는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에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한다. 20년 동안이나! 온갖 동물들을 자상하게 보살피는 맘 따뜻한 아저씨가 그림을 그리면서 동물원 일을 하였다고. 그러다가 동물원 일을 그만두고 아예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니. 그럼 동물원 일을 좋아서 하고 그림도 그리다가, 그만 그림책까지 만들게 된 경우?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그는 동물원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 듯 보인다. 박쥐가 맨날 거꾸로 매달려 있지만 쉬를 할 때만은 똑바로 매달려서 한다는 것을 동물학자들이 알까? 낮동안 자는 듯 멍하니 있던 올빼미가 밤이 되어 활동을 하려 할 때 먼저 머리를 맑게 하는 목운동을 '오른쪽, 왼쪽, 하낫둘 하낫둘' 한다는 것을 누가 알고 우리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플라밍고의 분홍색은 빨간색의 먹이를 열심히 먹는 덕분이라는 것은? 너무너무 느릿느릿한 나무늘보의 몸에는 심지어 이끼가 끼기도 한다고? 스컹크 냄새의 비밀과 방귀의 비밀은 어떻게 다른지를 어디서 이렇게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오로지, 동물원의 동물들을 아주 사랑하는 작가가 또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게다가 그림책으로 이 이야기들을 알콩달콩 풀어내면 정말 재미있겠다 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린 덕분에 태어났다. 과학이 담긴 그림책이라 해도 좋고 동물원 동물에 대한 지식 그림책이라 해도 좋겠지만, 그냥 하나하나 정답고 신기한 동물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그림책이라 해도 좋을 멋진 책이다. 동물원 이야기의 40번은 오늘도 표를 끊지 않고 동물원에 그냥 들어와 놀다 가는 참새, 까마귀, 비둘기, 잠자리 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 마지막 41번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사람은 정말 이상한 동물이야...' 라면서 줄줄이 늘어선 아이들을 구경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작가는 익살을 부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흥미롭고, 따뜻하고, 유쾌하다. 그림도 훌륭하고 정보는 더할나위없다. 어른 아이 모두 이 책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