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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50만부 팔렸다는 그이의 시집 말고는 읽은 게 없지만, 당당한 듯 휑한 듯 서있는 그이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이의 그 모습에서는 성가신 것에 대한 짜증이 묻어있는 듯 보였고, 순전히 내가 받은 첫 인상은 다소 지친 듯해 보였다. 그런 모습조차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시대의 우울이라는 제목도 상당히 지적인 느낌이다. 고르는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좀, 싫었다. 왜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서평 같은 것도 하나 보지 않고 책을 골라서인지 나중에는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느낌조차 궁금해질만큼, 읽는 동안 곤혹스러웠다. 간신히 다 읽고, 정말로 궁금해서 다른 이들의 느낌들을 들춰보니, 대부분이 작가에게 공감과 흠모를 보내고 있어서, 글쎄, 왜 싫은지도 모르는 채 싫다고 느끼는 나에게는 저으기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정말 좋은가? 뿐만 아니라, 뒷면 박재동과 주철환의 소감을 보면, 나는 더 혼란스럽다. 정말 그런가? 정말로 나는 안 그랬다.
내 서평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몸달아하기가 좀 민망하지만, 아마도 이 책이 왜 그리 맘에 안 드는지 스스로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별 그럴 것도 없는 내용들인데..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그 성마른 느낌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너무 주관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써본다. 좋은 책 기쁜 마음으로 좋은 얘기하는데만 익숙해서, 거슬리는 느낌은 잘 표현해보지 않았다. 아주 아닌 책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내게 이 책은, 딱 뭔가 주절거리고싶을 만큼 거슬리고...끝까지 보게 되는데 계속 어떤 거부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이 책의 작가 최영미에게는 어쩐지 너무 많은 집착, 저절로 우러나지 않는- 세우고 싶어하는 고집,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많은 것에 대한 짜증, 냉소적인 시선, 특별해야한다고 스스로 느끼는 듯한 무거운 부담감, 이런 것들이 느껴져서 실망스럽다. 작가가 가진 철학, 사색의 깊이가 마치 포장된 듯 느껴지고, 강박적으로 읽힌다. 그건 정말 부담스럽다. 자연스런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학적이고 독선적인 작가의 시선이 거북하다. 하여간, 깊지 않되 깊음을 위장하는 듯 하달까. 깊음에 대해 강박적이라 할까.
내게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주관적인 내 느낌일 뿐이다. 다들 자신의 상태와 또 깊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뿐이겠지만, 내게 왔던 것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고 한 여행, 자기의 껍질의 견고함을 확인하듯 쓴 기행문을 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