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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가는 길 ㅣ 웅진 세계그림책 58
크리스토퍼 워멀 글 그림, 고정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꼬마기차와 커다란 동물들>을 먼저 보고 크리스토퍼 워멀이라는 작가를 두드렸더니 이 책이 나왔다. 더 많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쨌든 하나라도 있어서 반가왔다. 앞의 책 한 권 만으로도 우리 집 그림책 열혈 독자들은 이미 이 작가의 팬이 되어버린 참이다. 출판사가 달라서인지, 표지부터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하지만 익숙한 동물 친구들이 등장해서 벌써부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듯한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나무에 붙은 놀이공원 포스터를 보고는 셋이서 의기 투합, '지금 당장 가자!'라면서 씩씩하게 출발한다.
그런데 참, 역시나 문제가 생긴다. 곰 아저씨와 코끼리 아줌마, 바다코끼리 아줌마라는 세 친구들 중 두 아줌마- 어디 가자 하면 언제나 꼼지락거리고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여자들이라는 걸 행여 빗대고 싶었을까?-들은 아니나 다를까 그저 늑장을 부린다. '뭐 놀이공원이야 급할 것 있나, 우선 이 모자 가게에서 얼마나 멋진지 모자 한 번 써본 뒤에 가면 어때?', '그래 그래, 수영복도 한 번 입어보면 좋겠는 걸!' 하는 정도로 여유를 부린다. 옆에서 안달이 나서 기다리는 곰 아저씨에는 아랑곳없다. 그러면서 한껏 수영복을 끼어입은 바다코끼리의 '조금 끼나?..'라는 듯한 표정이라니.
결국 포기하고 나서지만 계속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식당이 나오고, 재밌어 보이는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관이 나오고, 꼭 놀고 가고 싶은 수영장이 나오고, 마지막까지 유혹하는 멋진 음악회장까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아줌마들은 그 유혹을 절대 뿌리치지 않고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들어가지만, 곰 아저씨는 또 '어쨌든 잠깐만이야! 놀이공원에는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을지 모르는데!' 라면서 투덜투덜거리며 따라 들어가지만, 막상 들어가면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는 드디어 고대하던 놀이공원!
그런데 그만 이미 깜깜해지고 문이 닫혀버렸다. 이때 또다시 버럭버럭 화를 내는 곰아저씨와, 뭐 까짓것, 내일 아침에 문 열 때까지 앞에서 기다리자는 느긋한 코끼리 아줌아의 대답. 그러자 그만 세 친구는 마음이 척 맞아서, 그냥 문 앞에서 잔다. 다음날 아침 일 등으로 들어가서 역시나 난장판을 만들며 신나게 논다. 그러면서 곰아저씨가 하는 말, '너무너무 재미있다! 우리 내일 또 오자!'
그러고보니 곰아저씨는 우리 아이들을 닮았다. 한번 마음을 빼앗기면 그걸 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졸라대며 기대하는 아이들. 어른들은 '그래!' 하며 나서지만 줄곧 이것저것 다른 데 정신을 판다. 애타는 아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것 먼저, 저것 먼저.. 하다보니 막상 도착하면 뭐 기차는 떠나버리고 아이는 울고불고... 그래도 어르고 달래 다음에라도 하게 될라치면 언제 삐쳤냐는 둥 신나게 노는 아이들. 그러면서 '내일 또 오자!'라고 외치지. 그러고보니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네.
남자-여자의 구도이든, 아이-어른의 구도이든, 아니면 그저 성미가 급하고 느긋한 이들의 구도이든 하여간에 한 편의 잘 짜인 코메디를 보는 듯하다. 한 쪽에서는 당기고 한 쪽에서는 계속 미적거리고, 넘어지고 뒤집어지고 온통 뒤집어쓰며 와장창 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그 속에 보이는 아줌마들의 느긋하다못해 천하태평인 모습, 안달하다가도 금세 놀이에 빠지는 순진한 곰아저씨의 모습들이 자못 유쾌하다. 처음 봤던 작품에 이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어서 출판되기를 기다린다.
한 가지, 아들이 알아낸 것인데, '엄마, 왜 이 책에는 둘 다 아줌마야? 꼬마기차에서는 바다코끼리 할머니였는데...??' '엇!! 글쎄?' 글쎄, 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