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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자 들어주자
박문희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월
평점 :
몇 년 전부터 마주이야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동화읽는어른 모임을 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 회지를 만드는데, 거기에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써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해 오던 중이다. 재미있는 것, 때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오갈 때는 '적어야지!' 하다보니, 한 동안은 내 마주이야기 노트가 술술 불어났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만난 책 두 권. '마주이야기 시 1'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침 튀기지 마세요>와, 2번인 <튀겨질 뻔 했어요>라는 책이다. 이 책들을 보면 마주이야기라는 게 뭔지 다른 설명이 필요없이 그대로 다가온다. 이 책에는 대체로 평이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어른을 흔드는 아이들의 말들이 가득하다. 예컨데,
그런데 어제 참새 목소리 들었는데
너희들은 "짹 짹 짹 짹" 그러는데
그게 아냐,
달라.
흉내는 못 내겠지만 달라.
정말 그렇다. 나도 가만 듣자면, 흉내는 못 내겠지만, 다르다. 어른들은 하도 참새가 짹짹 한다고 들어놔서, 참새가 암만 자기 말로 뭐라 그래도 그냥 참새가 쩩쩩 하는구나 할 것이다. 이렇게 마주이야기 책을 본다는 것은 아이들의 깨달음을 어른도 나누어가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 박문희 엮음, 이오덕 풀이 라고 되어있는데, 박문희 보다는 이오덕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기억되던 책이다.
그러다 얼마전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동화읽는어른 회보에 소개가 되었는데, 마주이야기 교육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어서 보았다. 바로 그 박문희 씨가, 30년 넘어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마주이야기 교육 방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쓴 책이다.
마주이야기 교육은 말을 시키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하고싶어 견딜 수 없어서 터져 나오는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감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언제나 선생이나 부모는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은 듣기만을 강요당하는 방식이었다. 가르치려 드는 교육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이 어느 틈에 저만치 앞서가서 빨리 따라오라고 하는데,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숨차게 쫓아가다가 지치고 만다. 이런 교육은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없고 맞지가 않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아이들에게는 이래야 되겠구나 싶다. 어른이고 아이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관계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정말 어렵다. 나만 해도, 학교 다닐 때는 이야기를 편하게 잘 들어주어서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별 힘들지 않았고, 어쨌든 들어줄 만한 여유가 있었고, 게다가 누군가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 두 아이를 키우고 사회적인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살림을 하며 나를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아가는 지금은, 들어준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요구를 한다. 할 일들이 쌓이고 생각하고 해결해야 될 일들도 밀려있다. 머리 속이 이런저런 일, 일로 가득하다보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조차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지은이는 종을 땡! 땡! 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걸, 반대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눈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또 한다. 지은이가 30년 넘게 유치원 교육을 하면서 그 안에서 마음 아팠던 기억, 혼자 벙글벙글 웃음짓던 기억들을 새기며 마주이야기 교육을 만들어 낸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 마주이야기 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묶인 마음을 풀어주고, 그 풀린 마음이 훨훨 날아오르게 하는지를 거듭거듭 이야기한다. 마치 박문희 씨는 나 하나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듯.... 나는 나에게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들으며, 내가 듣지 않고 막아버렸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아이의 마음과 같이 갈 곳 몰라 떠돌았을 그 이야기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여전히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상적으로' 들어주기는 힘들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떠돌 이야기들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 둔 부모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 모두 이 책을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