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애와 다래 느림보 그림책 5
이형진 글 그림 / 느림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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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형진님을 특별히 좋아한다. 맨 먼저 그이의 그림을 만 난 것이 현덕의 글에 그림을 그린 <고양이>라는 그림책인데, 그 그림책을 본 느낌이 너무나 특별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것은 현덕의 <고양이>가 아니라 이형진의 <고양이>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 있었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내 생각으로는 경지가 높았다. 잘 그린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작가로 기억이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여러가지 그림책에 작업을 했다던데... 의외로 눈에 띄는 작품은 많지 않더니 요즘 들어 그가 드디어 뭔가 일을 내고 있다.

얼마전 느림보 출판사에서 <끝지>를 내더니, 더 놀랍게, <명애와 다래>를 냈다. 이 두 그림책은 이형진님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들이다. 오롯이 그의 작품인 것이다. 그림을 구사하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더니 이제는 글까지 예사롭지 않다. 이형진님에 대한 내 특별한 관심은 이 책 <명애와 다래>를 보고는 아주 열 배 쯤 증폭되어, 이제 나는 그를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이 갖고 있는 깊이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신선하고 유쾌한 방법, 또한 역시나 커다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림 모두에 단박 매료되었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미처 못 본 채 가방에 넣고 나갔다. 나가서 일을 하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시 뒤돌아 그림책을 넘겼다.

맨날 아파서 누워만 있는 할머니가 못마땅한 다래는 심술이 난다. 학교 갔다 오는 길로 방문을 쾅 닫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다. (이렇게 꿈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잠결에 들리는 할머니의 목소리, 놀이공원 가려면 서둘러야지--. 다래는 '어?' 하면서 할머니를 따라 나선다. 할머니는 좋아하는 홍시를 계속 오물거리며 다래와 함께 걷고, 지하철도 타고, 다래를 업어주기까지 한다. 이러면서 할머니는 점점... 엄마친구만큼 젊어지다가 다시 언니만큼 되었다가 점점 더 어려지더니 아주 어린 동생만큼 작아져버린다. 홍시를 오물거리며 계속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더이상 할머니가 아니라 마치 다래의 친구만한, '명애'가 되어있다.

다래는 그 명애와 너무 신나게 놀 수 있다. 동생만큼 작아진 명애가 이제 지쳐 스르르 잠이 들자 업어서 집에 온 다래는 스스로도 지쳐 그 어린 명애 옆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든다. 한나절 놀이로도 이제는 너무나 너무나 정다워진 이름, 명애. 할머니가 명애였단 말이지?...... 할머니도 예전에는 그냥 명애였다고... 어느새 잠을 깬 다래는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 본다. 할머니는 여전히 가르랑 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다. 다래는 그 할머니 옆에 가만히 엎드리고는 속삭인다.
'명애야....'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우리 꼭 다시 놀러 가자.'

이 글을 쓰면서, 이 부분에서 나는 또 운다. 처음 보는 그날도 나는 이 장면에서 나도 놀랄 만큼, 흑흑 느껴 울었다. 그 다음날인가, 두번째 보면서 또 바로 이 부분에서 꼭 울음이 터졌다. 그리고 지금도 또 눈물이 난다...

'가을이 오면...' 놀러 가자는 다래의 말과 함께 마지막 그림을 본다. 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 삶의 한 가지 비밀이 다래를 스치는 듯한 그 그림의 서늘한 아름다움에 나는 울어버린 것일까. 특별히 내 개인적인 경험과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삶의 비밀 한 가지를 이렇게 아름답게 드러내는 작가에게, 그의 이해의 깊이와 그리는 이로서의 높은 경지에 무한한 신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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