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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를 희망한다
새라 파킨 지음, 김재희 옮김 / 양문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녹색당을 만들었고, 의회 진출을 가능하게 한 신화적인 여성 정치인, 페트라 켈리. 이렇게만 알고 녹색 정치를 좀더 잘 들여다 볼 요량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역자인 김재희 님의 말을 뒤에서 보니, 영국에서 출판되었다가 이미 절판이 되어버린 책을 어렵게, 또 우연히 구해서 보고는 번역을 했다 하니, 이 책이 우리에게 온 의미도 어쩐지 심상치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전기를 읽다보면, 누가 쓰더라도 이렇게 쓰겠다는 전기가 드물게 있는 반면, 쓰는 이에 따라서 해석이 여러 가지겠구나 싶은 전기가 많다. 원제가 'The Life and Death of Petra Kelly'인 이 책도, 영국의 환경 운동가이자 페트라의 절친한 친구였던 새라 파킨에 의해 쓰여지다 보니, 아주 많은 부분에서 상세히 들어갈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에서 친구의 입장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우호적인 시선이 전제되었다는 말이다.
페트라의 삶을 읽는 것은 전기인데도 조금도 지겹지 않았다. 이땅에서 아직도 녹색을 내걸고 이루어낸 최대의 성과가 시민운동인데 반해, 80년대 초에 이미 녹색을 내걸고 연방의회에 진입한 정당이라니... 어쨌든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여러 가지 일들의 인과에서 비롯된 일이겠지만, 그 안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고 녹색을 정치적인 목표가 아니라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한 여자의 삶이 돋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지은이 새라 파킨의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더라도, 페트라의 삶은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지은이의 한결같은 우호적인 입장이 페트라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방해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여자가 언제나 맞설 상대가 있는 정치 현장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것도 무에서 유가 되었던 소수 정당의 정치인으로서 든든하지 못한 뿌리를 딛고 싸워나가는데 얼마만한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녀의 삶 속에 깃들 분노, 좌절, 고독과 고통-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리라. 지은이가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을 페트라에게서 살짝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끔 만들려고 노력하는 듯해서, 그 시도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마치 친구에게 보내는 헌사와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내게는 페트라의 행적 자체가 경이로웠다. 그녀의 삶은 많은 능력과 올바른 지향을 가진 한 사람이-특히 여성이- 이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공통적인 유형 위에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타고난 많은 능력보다는 올바른 지향을 인식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 노력 위에 확신하는 신념을 굴하지 않는 것, 이 덕목이 더욱 중요한 것이리라.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그러다보니 몇 번이고 강조되고 크나큰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같은 것은 오히려 자주 거슬렸다. 이것은 페트라 켈리의 몫이 아니라 새라 파킨의 몫이리라.
페트라의 삶을 읽어내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왔다. 그러나 마치 친구를 위한 진혼가를 쓰기로 마음먹은 듯한 새라 파킨의 시선은 아무래도 거리를 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