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에 중독된 듯 잔을 든 손을 덜덜 떨면서도 에스프레소잔을 3~4개 늘어놓고 마시는 사람이 있다. 손자만 들어오면 기겁을 해서 담배를 내려놓으면서 끝내 피우려는 의지를 꺾지 못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자기는 중독됐다면서...

커피와 담배는 찰떡궁합(good combination)이라고 극찬해 마지않는 사람도 있다. 담배를 끊었으므로 한대쯤 피우는 건 문제될 게 없다고 자신의 욕구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오로지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 때문에 보기로 결정했고, 얼마 전 독특해서 마음에 남았던 짐 자무시 영화라 주저하지 않았고, 영화를 검색하면서 Tom Waits가 나온다는 걸 알아버려서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다.

모두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11개의 단편을 무작위(아니, 순서가 있을지도)로 묶어놓은 옴니버스 영화다. 모든 단편(사촌 맞아?는 제외)에 커피와 담배가 나오고, 자신의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 황소고집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커피잔을 들고 건배를 하기 일쑤며, 커피와 담배 없이는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양 커피 한 모금에 담배를 한 모금 꼭 곁들인다.

스티븐,이라고 몇 번이나 정정해 줬음에도 끝내 스티브,라고 말하는 로베르토.
짐,이나 지미,라고 사람들이 부르는데 이기,라고 불러달라고 말했음에도 곧바로 골탕먹이려는 듯 짐,이라고 당당하게 부르는 톰.
그저 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연락을 해 만난 친구에게 끝까지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며 용기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가버리는 친구.
코트 좋다고 띄워주니 비비안 웨스트우드 제품이라며 재는 친구에게 바깥 날씨가 29도인데 무슨 코트냐며 핀잔을 주는 친구.

마치 홍상수의 영화처럼 어이 없고, 황당한 웃음을 자주 웃게 된다. 소통하지 못하는, 혹은 소통하려 들지 않는 그들은 그 어색한 분위기를 자신의 커피와 담배에 몰두하는 것으로 무마하려 든다. 짐 자무시의 영화는 겨우 2편째지만, 그만의 스타일이 느껴진다. 영화의 거의 대부분에 흐르는 재즈풍의 음악이 인상적이고, 영화와 잘 섞인다.

홍상수식의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흥겨울 것 같다. 짐 자무시의 팬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실제로 몇몇 관객들은 계속 자지러졌는데, 황당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커피와 담배,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지만, 적당한 섭취와 흡연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고 지친 정신을 위로해주기까지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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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8-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담배와 커피를 부르는 페이퍼군요. 진한 베트남 커피를 얻어 왔는데 한잔 마셔 볼까요. 아직도 극장에서 하나요?

하루(春) 2006-08-1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더군요. 저는 스폰지하우스종로에서 봤는데요. 압구정 스폰지에서도 계속 하는 걸로 나오네요. 기회가 되시면 커피 마시면서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

2006-08-16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