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에서 정리는 전혀 안 됐지만, 꽤 감동적이었고 그래서 3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 롤랑 바르트가 쓴 책 <밝은 방>에 나오는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인용하면서 한 말,

얼핏 보면 주변적인 것 같고, 스쳐 지나가는 것 같고, 화면의 중심을 장악하는 게 아닌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드라마의 본질을 대변하는 수도 있죠. 그런 디테일에는 집착을 하는 게 사실이에요. 일반적인 의미에서 화면 구석구석 신경을 쓴다, 소품 하나하나 신경을 쓴다 이런 것은 저보다는 스태프들의 공이죠. 저는 '이 세부는 구석진 거지만, 본질하고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강하게 집착하는 거구요. - 272쪽

이 말의 의미, 즉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강하게 집착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동생들에게 '한심빠따'로밖에 보이지 않는 박강두에게도 진심은 있다? 뭐, 어릴 때 어미 잃고, 잘 못 먹어서 단백질 섭취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가... 그래도 딸내미 현서는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게 박강두의 진심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에서도 이 영화가 상영될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은 있지만, 헐리우드식의 돈을 어디다 퍼부은 건지 모르겠는 거대한 규모의 블럭 버스터들에 비해 훨씬 와닿았다. 이건 당연히 서울사람들에게는 남북을 가르는 의미도 있고, 굉장히 넓기 때문에 잘만 가꾸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연 경관을 선사해줄 수도 있는 '한강'을 중심무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아파트가 그랬듯이 주변에 늘 있어왔지만,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그런 곳, 그래서 저한테는 더 구미가 당겼죠. 의외로 규모가 스펙터클하구요. 파리에서 센 강을 보니까 중량천 사이즈더라구요. 템즈도 그렇구요. 거기에 비하면 한강은 웅장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살아서 한강이 가진 여러가지 표정을 알죠. - 276쪽



나는 한강이 그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순간적으로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어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 섬세함과 그가 가진 따스한 情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 같다.

통쾌한 면도 있었다. 미국영화들 보면서 심기가 불편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은근히(때로는 대놓고) 한국 깔아 뭉개고, 내가 좋아하는 코엔 브라더스의 영화 중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도 어디 가서 "나 코엔영화 팬이다."라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복수심을 느끼고, 통쾌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봉 감독이 사회학 전공자라 그런가 플란다스의 개,부터 괴물,까지 다른 감독들의 이야기와는 뭔가 다른 부분이 있다. 보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만들면서 여전히 나 혹은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부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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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08-1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여. 이곳에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봉감독님의 긴장속의 유머러스를 좋아합니다. 살인의 추억도 그렇고.......
자주 뵙시다.

하루(春) 2006-08-11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포스가 강력하네요. ^^
저도 좋아합니다. 몇년 전 우연히 봉준호 감독의 해설이 담긴 '플란다스의 개' dvd를 산 이후로 팬이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