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방울 전주곡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뚝뚝 떨어지는
피아노집 차양은 푸른색 PVC였다.
빗소리들이 날아들어가다
텃새떼처럼 꼬리 치켜들고
모여 앉은 낡은 추녀 끝
고치지 않고 놓아둔 슬레이트 지붕에선
비가 새고
방안에는 놋대야가 휑뎅그렁하게
놓여 있었다.
소리 없는 건반으로 떨어져
놋대야 속에서 누군가 희미하게
오르간을 켜고 있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밤새워 떨어지는 비의 음반에다
정체 모를 手話를 받아적는다.
자욱이 상처로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
문신하듯 새긴다.
문득 빗소리 그치고 창밖을 내다본다.
훤히 이마 벗어진 푸른 새벽을 단서처럼 내다놓고
누군가 황급히 사라진다.
--- 노향림
빗방울 전주곡,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비가 그리운 지루한 장마철이다. 작년엔가는 비가 되게 적게 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장마철이 길어지니 오늘은 급기야 방송사에서도 '기상이변'이라는 말을 앞다퉈 내새운다.
어제는 갑자기 발랄하면서 상큼한 노래가 듣고 싶어져서 김건모의 '빨간 우산'을 구입했다. 혹시나 집에 CD가 있을까 찾아봤는데 역시나 없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아침은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해.
우연히 내 우산과 똑같은 빨간 우산을 쓴 소녈 봤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건넨 말,
"저.. 어디까지 가세요? 때마침 저와 같은 쪽이네요. 우산 하나로 걸어갈까요?"
이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들으니, 게다가 비 오기 전날 들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가끔은 이렇게 발랄한 노래를 들을 필요가 있다니까... 역시 소장가치 충분해." 하면서 흐뭇한 미소도 지었다.
기상이변, 그거 다 우리 인간이 환경에게 준 걸 그대로 되돌려 받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환경에게 우리가 되돌려 받는 건 2배가 넘을지도 모르겠다. 빨리 비오는 소리나 비오는 날 아침을 맘껏 좋아할 수 있는 정상적인 기상현상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