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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음악 신 전성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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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5 / 김용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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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서 ‘음악감독’ 직함을 달고 경력을 쌓아온 인물은 그만큼 숫자가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질과 양이 성장하면서 영화음악도 성장했고 그 음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다. 영화인이면서 음악인으로,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의 스탭이자 창작자로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감독들을 만났다.
나는 어떻게 영화음악가가 되었나
한재권 음악감독에게는 지난 15년간 운명이라 느꼈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말이 쉬워 두 번이지, 이거 결코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첫 번째는 그의 과감한 공간 이동이다. 1968년생인 한재권 음악감독은 작곡을 공부하고 싶어 한양대 음대에 들어갔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공부에 전념하기 힘들었던 격렬한 사회 분위기, 그리고 음악 만드는 건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근본적인 깨달음에 충격을 받았다. 스무 살의 그는 받아들이기 힘든 딜레마 앞에서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독일에 유학갔던 선배로부터 “음악을 예술이 아니라 철저하게 학문으로 배워봐라”는 조언을 들었다. 존재론이나 명사적 의미에서의 음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동사적 의미에서의 음악. 발상의 전환이었고 답답했던 앞날을 비추는 서광 같았다. 한재권 음악감독은 "아베체데도 모르는 채" 무작정 독일로 떠났다. 베를린 공대에서 음향 공학을 전공했지만 정작 학교에서보다 공연장에서 더 많은 걸 배웠다. 그러니까 친구들과 아이리시 밴드를 조직해 라이브 공연만 400회 이상 거치면서, 머리로 생각하는 음악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고 즉각적인 감정으로 전달되는 음악을 배웠다. “그전까지 음악은 무조건 ‘내 음악’이어야 했다. 내가 만들어야만 이 음악이 위력을 갖고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에서 밴드 생활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멋부리지 않아도 음악 자체만으로 존재 가치가 있고 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7년여의 공부를 마치고 1994년 말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한번 음악 작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결국엔 탈이 나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충무로와 여의도와 대학로를 누비면서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맡았다. 그러다가 1997년, 아직 <기막힌 사내들> 시나리오가 탈고되기 이전이었던 무렵 연극연출가 장진과 마주쳤다. 두 번째 운명의 만남이었다. 그와 함께 <기막힌 사내들>을 작업하면서 한재권 음악감독은 영화음악이라는 분야에 새롭게 눈을 떴다. 예전엔 영화음악이라면 무조건 장장거리며 감정을 몰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 하나의 리듬만으로도 영화의 호흡과 양식을 표현할 수 있겠더라.”
나의 영화음악들
한재권 음악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굴곡이 분명하고 볼륨감이 넘치며 매우 드라마틱한 영화들로 채워져 있다. 말과 제스처의 세밀한 배치를 주목하게 만드는 장진 감독의 독특한 코미디가 한 갈래이고, 강우석 감독의 강하고 센 드라마가 또 다른 갈래이며, <피도 눈물도 없이><아라한-장풍대작전><범죄의 재구성>처럼 원색적이고 화려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영화들이 또 한 켠을 차지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들의 선명한 외향만큼 음악이 도드라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음악은 매끄럽게 스며들어 영화와 한 몸이 된다. 액션이나 남성 드라마라는 비슷한 장르를 연달아 작업하면서도 각 영화의 개별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몸에 착 달라붙는 듯한 음악을 하려는 한재권 음악감독의 개인적인 스타일 때문이다. “스킨스쿠버를 처음 배울 때 입수 과정과 호흡 훈련을 거치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받고 음악을 작업하기까지에는 일정한 과정이 존재한다. 어떤 특정 장르의 시나리오를 읽으면 바로 그 장르를 아우르는 잘된 작품들을 찾아본다. <범죄의 재구성>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경우,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스내치> 같은 영화들을 연구하고 영화 속 음악이 어떤 특성으로 쓰였나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나는 음악 팬이기도 하지만 영화 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작업하는 영화들의 형식과 문법을 존중하고, 거기에 딱 들어맞는 음악을 하고 싶다. 이를테면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서사 대하극이 아니더라도 음악은 그런 색깔이 잘 들어맞는다. 그래서 섭외를 받으면 우선 오케스트라부터 컨택한다.(웃음)”
한재권 음악감독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났던 최근작은 <박수칠 때 떠나라>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사운드나 음악을 담당하는 이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영화였다. 영화의 95% 이상이 실내 세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소리는 벽과 각종 가구들에 부딪혀 계속 울리거나 먹힌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장진의 폭포수 같은 대사와 상황의 묘미를 살려낼 수 있을까? “이만큼 사운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영화가 없었다. 장진 감독과 처음부터 계속 이 장면에서는 어떤 소리들이 들어갈 것이며, 이 소리에 대한 연출적 의도는 이러한 것이다, 라는 의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소리를 먹어버리는 현악기는 배제했고, 대신 국악기를 다수 배치했다.”
요즘 한재권 음악감독의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영화들은 안판석 감독의 <국경의 남쪽>과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다. 아직 초기 구상 단계인 <한반도>는 차치하고서라도, <국경의 남쪽>은 좀 남다른 이유에서 이를 악물고 덤벼든 영화다. “지금까지 내가 작업한 멜로드라마 음악들이 별다른 호응을 못 얻었다. (웃음) 이번에는 한번 성공시켜 보고 싶은데...영화 속 차승원의 배역이 탈북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교향악단 호른 주자다. 차승원의 연주 파트에는 낭만주의 훨씬 이전의 15~16세기 느낌의 클래식한 음악들을 생각 중이다. 또 다른 축으로는 굳이 비교하자면 러시아 가요적인 느낌의 곡을 생각 중이다. <모래시계>에 나왔던 <백학>이나 <백만송이 장미>의 러시아 원곡을 들으면 멜로디컬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은근히 선동시키는 코드가 있다. 그런 느낌들이 멜로드라마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게 내 목표다."
지금 나의 좌표는
한재권 음악감독은 “그 영화, 음악 참 좋던데요”라는 칭찬을 들으면 불안해진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설렁탕집 주인에게 이 집 파가 참 맛있어요, 하면 칭찬이 아니다. 설렁탕 맛이 정말 죽이는데요, 이래야 맞는 거다. 나한테도 가장 좋은 칭찬은 '영화가 정말 좋던데요'다. 그 한 마디에 모두 포함된다.” 영화가 아니라 영화음악만 기억난다면 이미 실패라고 생각하는 그의 단호한 의지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영화의 덩치가 비약적으로 불어나고 시스템과 인력이 급변하는 와중에서도, 그리고 일본 영화음악가들의 충무로 진출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중심을 잡은 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다. “중요한 건 품질 관리다.” 영화가 달라진다는 건 시스템적인 측면이 달라진다는 뜻이지 영화의 본질이나 음악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한재권 음악감독은 한국적 감수성의 핵심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역시 한국 영화음악가의 작품이며, 이런 식의 음악이 이런 장면에서 사용됐을 때 한국 관객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정확한 계산과 분석 역시도 한국 영화음악가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섣부른 민족 감정이나 근거 없는 의존이 아니라는 건,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그가 작업한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재권이 뽑은 한국영화음악
“영화음악 베스트는 결국 ‘좋은 영화’에 쓰인 음악이다. 영화는 좋은데 음악은 뭐...하는 그런 건 아니고, 영화가 좋은데 음악도 참 좋았어, 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음악이 베스트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의 목적>이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작업한 이병우 선배의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와니와 준하><바람난 가족><나의 결혼원정기>를 작업한 김홍집 씨의 감수성도 부럽다. <너는 내 운명>을 작업한 방준석 씨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 고아영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