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고바야시 요리코 외 지음, 최재혁 옮김 / 돌베개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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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빛이 말을 걸어오다

 마치 멈춰있는 듯 움직임을 절제하는 화폭 속 인물들. 그림 전체를 감도는 온화한 빛이 미세한 움직임마저 제어하고 있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멈춰있는 듯 간결하게! 베르메르의 작품에는 오묘한 절제의 미학과 탁월한 빛의 마술이 숨어 있다.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를 처음 읽게 된 건 이 년 전 회사 동료의 권유 때문이었다. 빛의 거장이라 하면 누구나 렘브란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자신은 주저앉고 베르메르를 꼽겠다던 동료의 말에 호기심이 동해 읽게 된 책. ‘진주 귀고리 소녀’ 외에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몰랐던 당시 이 책은 흥미로움 자체였다. 우연한 기회에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다시 만난 베르메르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일까.

 이 책은 시작이 아닌 것처럼 시작해서 끝이 아닌 것처럼 끝을 맺고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1장부터 8장까지는 고바야시 요리코가, 마지막 9장은 구치키 유리코라는 저널리스트가 집필을 맡았다. 그러다 보니 첫 시작과 끝맺음이 불분명한 듯 보인다. 급작스럽게 시작해 급작스럽게 이야기를 끝맺고 있어 다소 당혹스럽지만, 차례를 따라 읽다 보면 베르메르를 만나 델프트를 거닐 듯 자연스럽게 그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중의적 의미와 군더더기를 배제한 채 최소한의 표현만을 고집한 베르메르와는 달리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작가는 베르메르에 대한 기존 연구를 소개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단정’보다는 근거 있는 ‘추측’을 통해 가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덕분에 다 읽고 나면 베르메르에 대한 여러 가설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손을 들어줄지 고민하게 된다. 베르메르에 관한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 가며 나름의 판단 기준을 세우고 싶게 만드는 책. 유수의 미술학자와 연구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화가, 베르메르. 남겨진 작품이 얼마 없기에, 수많은 위작 시비에 휘말렸기에 더 매력적인 베르메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에는 베르메르의 특징적 화풍을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베르메르가 평생을 살았던 도시 델프트를 소개하고,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 및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20여년에 걸쳐 변모된 그의 작품 세계를 시대 순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베르메르에 얽힌 위작 시비와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17세기 화가의 작품을 21세기 첨단 장비를 통해 재해석한다는 점이다.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다각도의 접근을 시도하는가 하면, X선 사진을 이용해 그렸다 지워진 그림의 원형을 재현해 내기도 한다. 최소한의 등장인물과 최소한의 소품만을 그리고, 등장인물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베르메르의 절제의 흔적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작업실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해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그렸을 거라는 기존의 가설을 반박하는 의견도 흥미롭다. 건축가들이 재현해낸 베르메르의 집과 작업실의 구조, 베르메르가 선택했던 원근법의 조작 등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반박하는 좋은 예가 된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면 유사한 구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디지털 유작(p.160)만 보더라도 베르메르가 선호한 구도를 짐작할 수 있다. 베르메르는 한 명의 인물을 근접 묘사하거나 창이 있는 안쪽으로 깊이 있는 실내 공간을 만들어 인물을 배치하는 구도(p.55)를 즐겼다. 네덜란드의 흐린 날씨로 인해 창문과 빛의 의미가 각별했던 만큼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도 창과 빛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로 왼쪽에 위치한 창을 통해 서서히 번져오는 빛은 화폭은 물론 보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특히 그가 여러 차례 그려낸 노란색 의상은 빛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은은한 (노란 빛깔의) 후광이 느껴진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통해 한 줄기 빛이 내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노란색이 온화한 햇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기분이다.

 43년을 사는 동안 20여 년 간 화가로 활동한 베르메르는 우리에게 3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남겨진 작품이 얼마 없기에 잦은 위작 시비에 휘말렸던 화가 베르메르.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사라진 작품들. 200년이 지나서야 재조명된 베르메르는 그 존재가 알려지고 난 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견이 엇갈리는 화가다. 그에 대한 기록과 정보가 부족하고, 알려진 작품이 몇 점 되지 않기에 더 심도 있는 연구와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베르메르의 작품이 어딘가에서 세상 빛을 갈구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책에 소개된 작품을 찬찬히 다시 보고 있다. 무심한 듯 우리를 바라보는 화폭 속 인물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표정 없는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그 속에 특별한 표정이 담겨 있음을 뒤늦게 눈치 챈다. 화폭을 감도는 빛이 수만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일까. 빛이 말을 걸어온다. 마음을 녹여 이야기를 쏟아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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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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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위태로운 산비탈에 매달려 나물을 캐고 있는 한 여인. 바지런한 손놀림에 봇짐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어느새 자신보다 커져버린 나물을 한가득 어깨에 짊어진 채 분주히 걸음을 옮긴다. 무게에 짓눌려 잔뜩 내려앉은 모습이지만 여인의 어깨는 흔들림이 없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강단 있어 보인다. 해거름 속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어디가서 내 고향이 울릉도라고 하면 첫 반응이 좋겠다, 혹은 부럽다, 이다. 그 다음으로는 구경할 만한 곳을 소개시켜 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질문 앞에서는 항상 멈칫, 하게 된다. 고향이긴 하지만 어쩌면 관광객들보다 울릉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는 사는 게 목적이다. 고향이 아무리 관광지라 해도 곳곳을 다니며 살펴보기는 쉽지 않다.
 지난 8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향의 낯선 땅을 밟아봤다. 결혼 후 첫 휴가를 받아 갔더니 이웃에 사시는 분께서 차를 내어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하셨다. 나보다는 남편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찾아간 곳은 북면에서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홍문동 부근. 집 앞에서 바라볼 때는 평범하던 풍경도 그 곳에 서니 한 편의 수채화가 되어 신비의 섬이라는 타이틀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관광코스에 속해있지 않는 곳이라 나조차도 태어나서 처음 밟아보는 고향땅의 일부.
 감상에 젖어들어 걷던 중, ‘이곳이 자네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께서 젊은 시절 자주 나물을 하러 오시던 데’라며 가이드를 자청한 이웃분이 험난한 산비탈을 가리키셨다. 턱, 하고 숨이 멎을 뻔 했다.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가 매달렸을 산비탈. 그곳을 포함한 산허리를 딸인 나는 절경이라 감탄하며 관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니기에도 가파른 길을 차도 없던 시절, 엄마는 두 다리에 의지에 걷고 또 걸으셨을 것이다. 머리 혹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서! 얼마 전부터 엄마는 골다공증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한 평생 고된 노동이 엄마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었는지 모른다. 뼈와 거죽이 만져지는 엄마의 마른 몸, 그 연약한 몸을 한시도 쉬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여인을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를 부탁할 일은 생기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를 잃어버리다니!
 잃어버리고 난 뒤 선명하게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기억들. 그 기억을 다문다문 쫒아가는 발걸음이 초조하다. 어쩌면 잃어버리기 훨씬 전부터 엄마는 잊혀진 존재였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왔던 세월. 그 세월에 가려 엄마는 자신을 돌보지 못했고, 그 누구도 엄마이기 전의 한 여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이야기로 시작한다. 생일을 맞아 서울로 상경한 부모님을 마중 나가지 않았다가 결국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다. 엄마를 찾기 위해 모여드는 가족들. 전단을 만들어 정처 없이 곳곳을 찾아 헤맨다. 방금 떠나간 기차마냥 뿌연 연기만 남긴 채 늘 한 발 앞서 사라지는 엄마의 그림자. 서울에서 엄마가 찾아갈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기에 막막하고 더 절망적이다. 신기하게도 목격담과 제보를 통해 전해지는 엄마는 늘 자식들 곁을 맴돌고 있다. 과거에 자식들이 머물렀던 동네와 살았던 집을 따라 엄마의 발걸음이 옮겨지는 동안 새록새록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추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엄마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이 엄마의 자리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엄마는 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관심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사람.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고 나서야 엄마라는 큰 산이 그동안 어떻게 숲을 건사해 왔는지 가늠해 볼 따름이다.

 단 한 번이라도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없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나질 듯하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으리라.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가끔씩이나마 꺼내 놓으셨겠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절제되어 있던 엄마의 말. 다 알고 있다는 듯, 귀찮다는 듯 응수하는 자식 앞에서 엄마는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었으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산다는 건 가려가면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마음에 말이 쌓여가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잦아들던 엄마와의 대화, 대화랄 것도 없는 단답형의 오가는 말 속에서 엄마는 눈치를 보셨던 것도 같다. 자식들이 잘라먹는 말 속에 남편의 무심한 말 속에 엄마의 말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늘 무언가로 분주한 엄마. 뭐 그리 할 일이 많을까 싶지만 엄마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헌신과 보살핌 속에서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둘째딸의 넋두리처럼 나도 엄마처럼은 살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 고문인가. 그 고문을 인내하며 고스란히 받아들인 우리의 엄마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듯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몰래 장독뚜껑을 깨는 것으로 한순간 울분을 토로하지만, 새로운 뚜껑으로 갈아 덮는 사이 엄마는 다시 우리가 아는 엄마로 돌아갔던 것처럼.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헤매는 동안 불쑥불쑥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들은 괴롭다. 이름과 생년월일, 실종 당시 입고 있는 옷 외에는 달리 엄마를 설명할만한 방법이 없다. 엄마에 대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만한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어쩌자고 기억은 갈수록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인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삶의 주체에서 밀려나 버린 가엾은 여인. 대체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생각했다. 그 존재조차 아득히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실은 나의 전부를 채워줬던 엄마인데. 엄마가 실종되는 순간, 횡환 빈자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찬바람이 매섭게 빈자리를 훑고 지나간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또 또 또…….
 엄마의 행적을 쫒아가는 동안 나 역시 내 기억 속 엄마를 더듬어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책 속의 엄마처럼 언제나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계셨다. 그 수건으로 똬리를 틀어 무거운 짐을 이거나, 흘러내리는 땀을 닦거나, 뜨거운 뙤약볕을 근근이 가리셨다.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 그래도 늘어나지 않는 살림살이. 멈춰있다 생각했다. 엄마의 고단한 노동도, 나아질 것 없는 우리 형편도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멈춰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의 품속에서 우리 사남매가 자랐고 어느 덧 각자의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엄마가 한 평생을 바쳐서 성실히 노력한 결과가 자식들의 삶 속에 그득히 들어차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책. 읽는 내내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는 마지막 한 마디 말에 왈칵 쏟아져 나왔다. 끝끝내 인정할 수 없는 엄마의 실종. 마지막 장에 접어들면서 엄마는 자식과 남편 그리고 독자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이제 이별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절하게 묻어나는 사랑의 흔적들. 찾아 헤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작별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살아있는 동안 큰마음으로 모든 것을 품었던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는다. 다만, 더 돌보지 못하고 떠나야 함을 미안해할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제발’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큰딸에서 큰아들, 아버지로 시선이 옮겨질수록 점점 커져가는 엄마라는 존재가 거짓말처럼 다시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엄마는 모든 것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별을 받아들이라는 듯 마지막장에서 나직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가장 작은 나라의 장미 묵주 하나만 사달라고 하셨던 엄마. 엄마는 자신은 괜찮으니 이제 마음의 짐 내려놓으라는 듯 딸을 피에타 상 앞으로 인도하신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했겠지. 엄마도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웠겠지. 태초의 엄마 품으로 돌아간 듯 딸을 성모의 품 안으로 들여 놓으신 엄마. 엄마가 쓰다듬어 주지 못한 슬픔을 위로 받으라고 엄마는 그렇게 딸을 이끈다.

 엄마와 마주하고 앉아 있어도 특별히 해 드릴 것이 없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상황을 불편해 하시는지, 어떤 이야기를 원하시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신 적이 없기에 무엇을 해드려야 할 지 늘 헤매게 된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받고 나면 ‘아, 이것도 필요했었지’ 생각한다.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정작 나는 해드릴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우리가 때때로 잊고 살았던 엄마라는 존재를 가슴속에서부터 차오르게 만드는 책이다. 엄마니까 희생해야지, 엄마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엄마니까 그래도 돼, 엄마니까, 엄마니까, 라며 은근히 무시했던 우리의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절감하게 해준다. 뼈 속 깊이 저며 드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가슴 치며 울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이나마 후회를 줄이려면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해야 한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엄마의 크신 발걸음은 다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엄마를 한 사람의 여인으로 바라봐 주고 싶다.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 엄마는 어떤 여자이기를 바랐는지, 엄마는 어떤 꿈을 꾸고 싶었는지, 지금 혹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이기 전 한 사람의 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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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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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 용기를 발견하다
- [명랑한 밤길]을 읽고
 

 절망과 희망 사이, 그 어디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하는 용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용기를 끄집어내 희망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건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종종 이 같은 사실을 망각한다. 자신을 뒤덮어오는 삶의 무게에 허덕이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희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랑한 밤길]에는 누가 봐도 녹녹할 게 하나 없는 인생들이 등장한다. 한 번쯤 악다구니 치고 싶은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과 악다구니조차 마음 놓고 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한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불균형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를 꿈꾸지만 생활이 우선인 문희가 그렇고, 이국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도넛이 그렇고, 공원 잔디밭에 몰래 토마토를 심는 노숙자가 그렇다. 한데,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결코 허망하지 않다. 팍팍한 인생에도 나름의 생존 법칙은 존재하는 법. 그들은 남들이 하찮고 사소하게 여길지라도 저마다의 희망을 일구며 살아간다. 힘에 겨워도 앞으로 한 발 내디딜 줄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는 슬픔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일지라도.
 온 몸이 진저리 쳐질 만큼 슬픔에 녹아들어도 자기가 울어야 할 때를 아는 영희의 슬픔은 고단하다. 졸지에 남편을 잃고 속절없이 울음을 토해내는 인자의 슬픔은 외로운 메아리가 되어 가을 산천을 가득 메운다. 제발 떠나달라고 남편의 공공연한 비밀이 된 여자 기화 앞에서 눈물 삼킨 분노도 쏟아낸다. 울음! 끝없이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울음, 막막하고도 기막힌 울음. 혹은 민망한 울음, 출처 없는 울음일지라도 울기 시작한 다음에는 모두 쏟아내야 한다. 다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슬픔의 밑바닥까지 모두 비워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마른 울음까지 모두 걷어 내고 나면 살아야 할 이유들이 눈에 들어온다. 힘껏 울어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으라고 [명랑한 밤길]은 말해주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잃을 것도 별로 없다. 반대로 지켜야 할 것, 꼭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 하나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과 같은 것,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곧 나를 대변하는 것과 다름없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 가족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며, 나를 바로 세울 길이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굵은 빗속에서 달아올랐던 몸을 식히며 가족에게로의 귀가를 서두른다. 가벼운 일탈조차 스스로 허락하지 않은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버려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또 다른 한 명,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든다. 멸시와 경멸의 대상으로 여겼던 외국인 노동자가 희망가를 부른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어둠 속의 달을 볼 줄 아는 그들이 어찌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겠는가? 그들처럼 희망가를 부르며 명랑하게 밤길을 헤쳐 엄마에게로 간다.
 달은 그대로 있는데 비가 올 뿐인데, 달은 빗속에 숨어(p.194) 있을 뿐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달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달을 볼 수 없는 추석날 밤에는 소원조차 빌지 않는다. 어디 하늘에만 구름이 있겠는가. 마음에 한 가득 먹구름이 몰려오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바라며 살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명랑한 밤길]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돌아갈 곳을 알고 있다면 흔들렸다가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가 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감사한 일인지!

 공선옥 작가를 통해 나는 소외의 밑바닥까지 가로질러 내려가 보았다. 그 속에서 내가 만나게 된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다. 희망을 말할 줄 아는 ‘용기’있는 가슴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욕망을 품고 살지만 가진 것이 얼마 없는 사람은 희망을 품고 산다. 희망을 발견하는 길은 멀지 않다. 우리 눈이 가장 먼저 닿는 가족, 이웃들 곁에 소소한 희망이 떠다니고 있다.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만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에 시시각각 얼어붙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셈이다. 남을 나와 다르게 바라보는 편견이 얼마나 많은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하면 처음보다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상처에 단련된 몸과 마음은 세상사 모든 희로애락에 무뎌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미역국조차 삼키지 못한 열다섯 살의 생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를 낳고 미역국도 먹지 못했다는 엄마의 한 맺힌 지난날을 날려버리고,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미역을 사러 가는 ‘악아’처럼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인생에도 언젠가는 볕들 날이 있다. 그 한 줄기 빛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악착같은 인생을 사는 나를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지긋지긋한 인생일지라도 그래도 사는 게 더 나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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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가는 길
밥 그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푸른숲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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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산책하는 동안에

 겨울의 한 가운데 들어서면 종종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병약한 강줄기 어딘가를 시작으로 강 전체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 때가 있다. 작은 돌팔매질 하나에 쉽게 금이 가는가 하면, 어떠한 물리적 충격에도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얼어붙은 겨울 강. 세상이 아무리 급변해도 얼음 아래 흐르는 물은 제 갈 길을 한시도 쉬어 본 적이 없다. 모진 풍파가 얼음 위에서 잦아드니 오히려 여유롭고 온화한 표정이다. 멈춰있는 듯 소리 없이 흐르는 얼음 아래 세상. 우리의 마음도 꼭 이랬으면 좋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서 모질고 힘든 시기를 지나게 된다. 세월에 휘둘리는 동안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갈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던 어른의 모습과 닮아 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음 한 자리는 늘 깊고 고요하게 비워두고 싶다. 삶에 지쳐 한 번씩 뒤돌아보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본연의 자신과 마주하기를 바란다. 궂은 날씨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흘러가는 강물의 내공을 배우고 싶다.

 [친구에게 가는 길]에는 고즈넉한 산사를 걷듯 찬찬히 추억을 되짚어가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다섯 살 때 처음 만나 친구의 연을 맺은 지 어느 덧 오십 해를 넘긴 밥과 잭. 쉰여섯 두 남자의 지칠 줄 모르는 산책은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하고 잔잔하게 이어진다. 떠나야할 시간이 정해져 있는 잭은 얼음 아래 흐르는 강물과 닮아있다. 자신의 생이 다해가는 순간에도 남아서 생을 이어갈 부인과 딸을 위해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 모습 그대로 마지막 날까지 살아가기를 바란다. 절망을 선언하는 의사들 앞에서 매번 희망을 꿈꾸지만 절규도 보챔도 없다. 오직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암이 몸속으로 퍼져가는 속도에 따라 눈에 띄게 노쇠해져 가지만 그의 바람대로 생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산책을 하고, 전화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친구들과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 책에는 반전이 숨어있지 않다. 큰 위기나 작은 변화도 없다. 시종일관 잔잔한 일상과 소소한 추억이 이어진다. 최대의 위기라 할 수 있는 잭의 죽음을 이미 서두에 밝혀두었으므로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슬픔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된다. 불안 불안하지만 어느 덧 고통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위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순간순간이 위기인지도 모른다. 잭의 주변 인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한다. 안부를 확인하는 순간에만 잠시 마음을 놓을 뿐이다.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주인공만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평온한 일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베프(베스트 프렌드)’ 혹은 ‘절친(절친한 친구)’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잭과 밥 외에 척, 앨런, 댄이 등장한다. 일명 ABCDJ, 말하자면 이들은 오총사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가정을 꾸려가는 동안 각자의 위치와 생활은 조금씩 달라졌다. 만나는 사람과 하는 일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들에겐 ‘추억’이라는 끈끈한 매개체가 있다. 예민한 감성을 주고받으며 꿈을 키웠던 시절의 우정이란 찰나에 굳어져 끝끝내 떨어지지 않는 순간접착제처럼 강력하다. 시간이 갈수록 더 견고해지는 우정. 사람은 이 ‘우정’에 기대어 한 평생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첫 비행기를 탔어.” 전화도 없이, 마중을 나오라는 말도 없이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던 것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자네가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리란 걸 알아. 상관없네. 방금 호텔에 들어왔어. 계속 여기 있을 테니까 내가 자넬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연락하게. 네가 원하면 어떤 짓이라도 할게. 죽은 듯이 있으라면 그렇게 하겠어, 여하튼 자네가 연락할 때까지 여기 있겠네.”(p.102)

 아내와 사별하고 크나큰 절망에 빠져 있는 밥을 위해 잭이 찾아왔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생업조차 미뤄둔 채, 도움이 필요한 순간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와 준 것이다.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시계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잔잔한 우정 어디쯤, 이렇게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한 때가 존재한다. 이제, 밥은 그 옛날 잭이 그랬듯 잭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서 잭을 지켜주려 한다.

 추억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암 선고를 받은 남자와 그 남자를 지켜주는 네 명의 친구들. 이들의 우정이야기는 봄 햇살처럼 나른하고 포근하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지켜 본 것처럼 경이로움과 애잔함이 마음에 들어찬다. 이제 추억으로밖에는 추억할 수 없는 시간들. 책을 읽을 때보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마음이 더 저릿해져 온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본다. 어느 틈엔가 고통이 밀려온다. 지긋한 아픔.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일이란 이렇듯 녹록치 않다.

 하늘 아래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앞서건 그가 앞서건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있다면 이별의 순간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얼마 없다면 지금 당장 친구와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오늘, 내일,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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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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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명작을 만들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다. 마치 내 일 인양 감정이 이입되어 주인공과 함께 희로애락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서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 쯤은 간직한 채 살아간다. 스스로를 위로했듯 비슷한 처지의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 추천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쏟아내기도 한다. 이렇게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구전광고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모험이건, 복수건, 사랑이건 장르는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완벽하게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경험, 지식, 생활환경 등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떤 작품에 환호하고 어떤 작품에 감동을 받는 것일까?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안에 그 해답이 있다.

 이 책은 작가를 꿈꾸거나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독자나 관객의 입장이라면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거나 혹은 실망했던 이유를 알아차리게 도와줄 것이다. 제 1부에서는 플롯을 이론적으로 정리하였고, 제 2부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플롯의 패턴 스무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플롯을 이해하는 것은 창작의 첫걸음이다. 플롯을 잘 알고 활용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작가는 ‘추구, 모험, 추적, 구출, 탈출, 복수, 수수께끼, 라이벌, 희생자, 유혹, 변신, 변모, 성숙, 사랑, 금지된 사랑, 희생, 발견, 지독한 행위’라는 스무 가지 플롯을 소개하고 있다. 각 플롯별로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 수월하다. 흔히 알고 있는 감독의 영화나 유명한 작가의 고전소설이 실례로 자주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내용을 전혀 모르더라도 각 플롯에 맞게 요약 설명한 부분을 읽다보면 작품 전체의 느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플롯을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예로 들었는데 작품까지 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이 책에서 정의한 플롯을 좀 더 공부해 보고 싶다면 작가가 소개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플롯 당 예로 든 몇 편의 작품을 살펴본다면 플롯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작품들이 예로 등장하다 보니 일반적인 이론서보다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간략 간략하게 묘사된 작품을 보면 감질이 날 정도다. 각 플롯마다 마지막에 점검사항을 넣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중요 부분에는 밑줄을 긋고 노트에 따로 정리를 해 두었다. 작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서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론서보다 더 값진 것은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나면 플롯별로 소개된 작품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찬찬히 읽어 봐야겠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을 읽다보면 ‘아, 그 소설, 그 영화!’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여럿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위대한 작품은 저마다의 플롯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무 가지 플롯 안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완성된다. 물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 스스로 플롯을 꾸며내라. 플롯은 끊임없이 변하는 공작용 점토와도 같다(p.360)." "무엇을 쓰든지 어떻게 쓰든지 플롯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플롯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플롯이 작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플롯이 작가를 돕게 하라(p.362)."라고.

 글은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막막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영감에 따라 무작정 써내려가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만, 누구나 영감을 얻는 천재는 아니다. 가야할 방향을 안다면 잘못된 길에 들어설 확률도 그만큼 낮아진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은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장치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 그 방법들이 있다. 활용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선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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