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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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 용기를 발견하다
- [명랑한 밤길]을 읽고
 

 절망과 희망 사이, 그 어디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하는 용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용기를 끄집어내 희망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건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종종 이 같은 사실을 망각한다. 자신을 뒤덮어오는 삶의 무게에 허덕이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희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랑한 밤길]에는 누가 봐도 녹녹할 게 하나 없는 인생들이 등장한다. 한 번쯤 악다구니 치고 싶은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과 악다구니조차 마음 놓고 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한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불균형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를 꿈꾸지만 생활이 우선인 문희가 그렇고, 이국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도넛이 그렇고, 공원 잔디밭에 몰래 토마토를 심는 노숙자가 그렇다. 한데,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결코 허망하지 않다. 팍팍한 인생에도 나름의 생존 법칙은 존재하는 법. 그들은 남들이 하찮고 사소하게 여길지라도 저마다의 희망을 일구며 살아간다. 힘에 겨워도 앞으로 한 발 내디딜 줄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는 슬픔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일지라도.
 온 몸이 진저리 쳐질 만큼 슬픔에 녹아들어도 자기가 울어야 할 때를 아는 영희의 슬픔은 고단하다. 졸지에 남편을 잃고 속절없이 울음을 토해내는 인자의 슬픔은 외로운 메아리가 되어 가을 산천을 가득 메운다. 제발 떠나달라고 남편의 공공연한 비밀이 된 여자 기화 앞에서 눈물 삼킨 분노도 쏟아낸다. 울음! 끝없이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울음, 막막하고도 기막힌 울음. 혹은 민망한 울음, 출처 없는 울음일지라도 울기 시작한 다음에는 모두 쏟아내야 한다. 다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슬픔의 밑바닥까지 모두 비워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마른 울음까지 모두 걷어 내고 나면 살아야 할 이유들이 눈에 들어온다. 힘껏 울어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으라고 [명랑한 밤길]은 말해주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잃을 것도 별로 없다. 반대로 지켜야 할 것, 꼭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 하나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과 같은 것,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곧 나를 대변하는 것과 다름없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 가족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며, 나를 바로 세울 길이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굵은 빗속에서 달아올랐던 몸을 식히며 가족에게로의 귀가를 서두른다. 가벼운 일탈조차 스스로 허락하지 않은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버려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또 다른 한 명,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든다. 멸시와 경멸의 대상으로 여겼던 외국인 노동자가 희망가를 부른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어둠 속의 달을 볼 줄 아는 그들이 어찌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겠는가? 그들처럼 희망가를 부르며 명랑하게 밤길을 헤쳐 엄마에게로 간다.
 달은 그대로 있는데 비가 올 뿐인데, 달은 빗속에 숨어(p.194) 있을 뿐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달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달을 볼 수 없는 추석날 밤에는 소원조차 빌지 않는다. 어디 하늘에만 구름이 있겠는가. 마음에 한 가득 먹구름이 몰려오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바라며 살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명랑한 밤길]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돌아갈 곳을 알고 있다면 흔들렸다가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가 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감사한 일인지!

 공선옥 작가를 통해 나는 소외의 밑바닥까지 가로질러 내려가 보았다. 그 속에서 내가 만나게 된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다. 희망을 말할 줄 아는 ‘용기’있는 가슴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욕망을 품고 살지만 가진 것이 얼마 없는 사람은 희망을 품고 산다. 희망을 발견하는 길은 멀지 않다. 우리 눈이 가장 먼저 닿는 가족, 이웃들 곁에 소소한 희망이 떠다니고 있다.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만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에 시시각각 얼어붙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셈이다. 남을 나와 다르게 바라보는 편견이 얼마나 많은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하면 처음보다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상처에 단련된 몸과 마음은 세상사 모든 희로애락에 무뎌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미역국조차 삼키지 못한 열다섯 살의 생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를 낳고 미역국도 먹지 못했다는 엄마의 한 맺힌 지난날을 날려버리고,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미역을 사러 가는 ‘악아’처럼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인생에도 언젠가는 볕들 날이 있다. 그 한 줄기 빛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악착같은 인생을 사는 나를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지긋지긋한 인생일지라도 그래도 사는 게 더 나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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