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위태로운 산비탈에 매달려 나물을 캐고 있는 한 여인. 바지런한 손놀림에 봇짐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어느새 자신보다 커져버린 나물을 한가득 어깨에 짊어진 채 분주히 걸음을 옮긴다. 무게에 짓눌려 잔뜩 내려앉은 모습이지만 여인의 어깨는 흔들림이 없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강단 있어 보인다. 해거름 속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어디가서 내 고향이 울릉도라고 하면 첫 반응이 좋겠다, 혹은 부럽다, 이다. 그 다음으로는 구경할 만한 곳을 소개시켜 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질문 앞에서는 항상 멈칫, 하게 된다. 고향이긴 하지만 어쩌면 관광객들보다 울릉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는 사는 게 목적이다. 고향이 아무리 관광지라 해도 곳곳을 다니며 살펴보기는 쉽지 않다.
 지난 8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향의 낯선 땅을 밟아봤다. 결혼 후 첫 휴가를 받아 갔더니 이웃에 사시는 분께서 차를 내어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하셨다. 나보다는 남편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찾아간 곳은 북면에서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홍문동 부근. 집 앞에서 바라볼 때는 평범하던 풍경도 그 곳에 서니 한 편의 수채화가 되어 신비의 섬이라는 타이틀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관광코스에 속해있지 않는 곳이라 나조차도 태어나서 처음 밟아보는 고향땅의 일부.
 감상에 젖어들어 걷던 중, ‘이곳이 자네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께서 젊은 시절 자주 나물을 하러 오시던 데’라며 가이드를 자청한 이웃분이 험난한 산비탈을 가리키셨다. 턱, 하고 숨이 멎을 뻔 했다.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가 매달렸을 산비탈. 그곳을 포함한 산허리를 딸인 나는 절경이라 감탄하며 관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니기에도 가파른 길을 차도 없던 시절, 엄마는 두 다리에 의지에 걷고 또 걸으셨을 것이다. 머리 혹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서! 얼마 전부터 엄마는 골다공증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한 평생 고된 노동이 엄마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었는지 모른다. 뼈와 거죽이 만져지는 엄마의 마른 몸, 그 연약한 몸을 한시도 쉬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여인을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를 부탁할 일은 생기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를 잃어버리다니!
 잃어버리고 난 뒤 선명하게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기억들. 그 기억을 다문다문 쫒아가는 발걸음이 초조하다. 어쩌면 잃어버리기 훨씬 전부터 엄마는 잊혀진 존재였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왔던 세월. 그 세월에 가려 엄마는 자신을 돌보지 못했고, 그 누구도 엄마이기 전의 한 여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이야기로 시작한다. 생일을 맞아 서울로 상경한 부모님을 마중 나가지 않았다가 결국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다. 엄마를 찾기 위해 모여드는 가족들. 전단을 만들어 정처 없이 곳곳을 찾아 헤맨다. 방금 떠나간 기차마냥 뿌연 연기만 남긴 채 늘 한 발 앞서 사라지는 엄마의 그림자. 서울에서 엄마가 찾아갈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기에 막막하고 더 절망적이다. 신기하게도 목격담과 제보를 통해 전해지는 엄마는 늘 자식들 곁을 맴돌고 있다. 과거에 자식들이 머물렀던 동네와 살았던 집을 따라 엄마의 발걸음이 옮겨지는 동안 새록새록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추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엄마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이 엄마의 자리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엄마는 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관심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사람.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고 나서야 엄마라는 큰 산이 그동안 어떻게 숲을 건사해 왔는지 가늠해 볼 따름이다.

 단 한 번이라도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없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나질 듯하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으리라.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가끔씩이나마 꺼내 놓으셨겠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절제되어 있던 엄마의 말. 다 알고 있다는 듯, 귀찮다는 듯 응수하는 자식 앞에서 엄마는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었으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산다는 건 가려가면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마음에 말이 쌓여가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잦아들던 엄마와의 대화, 대화랄 것도 없는 단답형의 오가는 말 속에서 엄마는 눈치를 보셨던 것도 같다. 자식들이 잘라먹는 말 속에 남편의 무심한 말 속에 엄마의 말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늘 무언가로 분주한 엄마. 뭐 그리 할 일이 많을까 싶지만 엄마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헌신과 보살핌 속에서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둘째딸의 넋두리처럼 나도 엄마처럼은 살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 고문인가. 그 고문을 인내하며 고스란히 받아들인 우리의 엄마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듯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몰래 장독뚜껑을 깨는 것으로 한순간 울분을 토로하지만, 새로운 뚜껑으로 갈아 덮는 사이 엄마는 다시 우리가 아는 엄마로 돌아갔던 것처럼.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헤매는 동안 불쑥불쑥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들은 괴롭다. 이름과 생년월일, 실종 당시 입고 있는 옷 외에는 달리 엄마를 설명할만한 방법이 없다. 엄마에 대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만한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어쩌자고 기억은 갈수록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인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삶의 주체에서 밀려나 버린 가엾은 여인. 대체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생각했다. 그 존재조차 아득히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실은 나의 전부를 채워줬던 엄마인데. 엄마가 실종되는 순간, 횡환 빈자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찬바람이 매섭게 빈자리를 훑고 지나간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또 또 또…….
 엄마의 행적을 쫒아가는 동안 나 역시 내 기억 속 엄마를 더듬어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책 속의 엄마처럼 언제나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계셨다. 그 수건으로 똬리를 틀어 무거운 짐을 이거나, 흘러내리는 땀을 닦거나, 뜨거운 뙤약볕을 근근이 가리셨다.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 그래도 늘어나지 않는 살림살이. 멈춰있다 생각했다. 엄마의 고단한 노동도, 나아질 것 없는 우리 형편도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멈춰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의 품속에서 우리 사남매가 자랐고 어느 덧 각자의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엄마가 한 평생을 바쳐서 성실히 노력한 결과가 자식들의 삶 속에 그득히 들어차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책. 읽는 내내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는 마지막 한 마디 말에 왈칵 쏟아져 나왔다. 끝끝내 인정할 수 없는 엄마의 실종. 마지막 장에 접어들면서 엄마는 자식과 남편 그리고 독자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이제 이별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절하게 묻어나는 사랑의 흔적들. 찾아 헤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작별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살아있는 동안 큰마음으로 모든 것을 품었던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는다. 다만, 더 돌보지 못하고 떠나야 함을 미안해할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제발’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큰딸에서 큰아들, 아버지로 시선이 옮겨질수록 점점 커져가는 엄마라는 존재가 거짓말처럼 다시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엄마는 모든 것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별을 받아들이라는 듯 마지막장에서 나직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가장 작은 나라의 장미 묵주 하나만 사달라고 하셨던 엄마. 엄마는 자신은 괜찮으니 이제 마음의 짐 내려놓으라는 듯 딸을 피에타 상 앞으로 인도하신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했겠지. 엄마도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웠겠지. 태초의 엄마 품으로 돌아간 듯 딸을 성모의 품 안으로 들여 놓으신 엄마. 엄마가 쓰다듬어 주지 못한 슬픔을 위로 받으라고 엄마는 그렇게 딸을 이끈다.

 엄마와 마주하고 앉아 있어도 특별히 해 드릴 것이 없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상황을 불편해 하시는지, 어떤 이야기를 원하시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신 적이 없기에 무엇을 해드려야 할 지 늘 헤매게 된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받고 나면 ‘아, 이것도 필요했었지’ 생각한다.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정작 나는 해드릴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우리가 때때로 잊고 살았던 엄마라는 존재를 가슴속에서부터 차오르게 만드는 책이다. 엄마니까 희생해야지, 엄마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엄마니까 그래도 돼, 엄마니까, 엄마니까, 라며 은근히 무시했던 우리의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절감하게 해준다. 뼈 속 깊이 저며 드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가슴 치며 울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이나마 후회를 줄이려면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해야 한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엄마의 크신 발걸음은 다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엄마를 한 사람의 여인으로 바라봐 주고 싶다.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 엄마는 어떤 여자이기를 바랐는지, 엄마는 어떤 꿈을 꾸고 싶었는지, 지금 혹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이기 전 한 사람의 여인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