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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흔 다섯의 노구를 끌고 강화로 떠나던 김상용은 동생 김상헌에게 이 말을 남겼다.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에 있는 이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당면한 일을 당면하고 있을 뿐이다.
성문을 열어 살 길을 열고자 했던 임금이나, 그 뜻을 받들기 위해 스스로 역적의 길을 열었던 최명길이나, 온몸으로 그 길을 닫고자 저항했던 김상현이나, 엄한 군기로 군장을 칠 수밖에 없었던 김류나.... 그리고 나룻가에서 가녀린 목으로 칼을 받았던 사공이나.... 그 모두는 그저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었다. 그것이 그 때였으며 그 뜻이었으며 그 행동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때를 되새김질 하는 우리의 눈에서는 그 날의 참담한 심정에 자신을 맡겨 눈물이 고이지 않을 수 없으며, 작가의 글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죽고자 하는 의지가 뒤엉켜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결국 그것이 한 길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허망함에 어깨를 늘어뜨릴 수밖게 없다. 남한산성, 그곳에 임금이 있었고, 한 나라의 참담함과 굴욕이 있었다.
후대는 역사를 기억의 한 장으로만 떠올릴 뿐, 온 몸으로 절규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소설 [남한산성]은 조선 역사의 가장 큰 치욕이며 참담함으로 전해지는 삼전도의 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진의 침입에 손도 쓰지 못한 채 쫓기고 쫓겨 찾아든 남한산성에서 임금과 신료들, 그리고 민초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고 살 길을 찾고자 했는지, 그 길이 진정 살 길이었는지, 아니면 죽을 길이었는지.... 그 고뇌와 참담함을 수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어찌하면 그저 참담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던 전쟁사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김훈의 펜 끝은 우리를 남한산성, 바로 그 시대 그 자리로 끌고가 고뇌하는 임금이 되게 하고, 역적의 짐을 질 수밖에 없는 최명길이 되게 하고, 죽을 길임을 알면서도 머리를 숙일 수없는 김상현이 되게 한다.
임금의, 최명길의, 김상현의, 혹은 서날쇠의 길에 대한 결정은 그 어느 것도 옳다 할 수 없으며, 그 어느 것도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김상용의 말처럼, 그저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