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축구, 커피, 그리고 초콜릿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주로 소위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이다.
축구, 그거야 저 남미나 아프리카의 약소국들도 즐긴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실제로 그 지역의 정말 뛰어난 축구선수들은 유럽을 무대로 뛰지 자국에서는 뛰지 않는다.
돈도 많이 안 들고 공 하나에 널찍한 공간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싶지만....
축구화 가격을 떠올리면 아마도 쉽사리 돈 안드는 운동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커피야 뭐......말로 안 되는 거지만 지성인의 음료니 뭐니 해가면서 우아하게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즐기는 기호 식품의 최강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2500원짜리 라면으로 허기를 가볍게(?) 때우고 5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점심을 먹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결단코 쉽세 마시기 어려운 디저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초콜릿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최근들어 붐이 인 수제 초콜릿의 경우, 동전만한 것이 2000-3000원을 넘게 호가하고 있으니 입맛 다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수시로 커피잔을 들며 초콜릿에 시선을 모은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런 것들 이면에 그저 눈을 감고 싶은 현실이 자리한다.
축구공을 만드는 어린 아이들의 부르튼 손, 하지만 그렇게 만든 축구공으로 축구를 할 수 없는 약소국의 아이들.
히말라야 오지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 한 방울에 커피 원두 하나를 따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그리고
초콜릿, 그 역시 노예 노동으로 착취받는 어린 아이들의 손에 의해 카카오 원두가 재배되지만 그 아이들도 초콜릿을 먹을 수도 없다.
이것이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고 열광하는 것들 뒤에 숨겨진 현실이다.
우리는 행복한 때에, 혹은 행복하고자 할 때 초콜릿을 찾는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태어남을 축하할 때, 그리고 온갖 행복한 시간들이 다가오면 초콜릿을 찾는다.
사랑에 실패하고, 일에 실패하고, 혹은 너무 힘겨워 지칠 때에도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초콜릿을 찾는다.
초콜릿은 행복을 배가 되게 하고 슬픔을 가시게 하고 기운을 차리게 해주는 그야 말로 "신의 선물"이다.
하지만 한 조각의 초콜릿이 내 손에 담겨지기까지 그 달달함과 행복함은 온데간데 없고
폭력과 억압, 슬픔과 고된 노동만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담겨져 쉽사리 초콜릿을 행복한 "신의 선물"이라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책이 바로 carol off의 [나쁜 초콜릿]이다.
이 책은 카카오 원두의 산지로 유명한 코트디부아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코트디부아르....생소한 나라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
인구수는 약 이천만 명 정도.
올림픽 할 때나 국가명을 들을 수 있는 나라.
그곳이 바로 카카오 원두의 주요 생산국이란다.
초콜릿의 카카오 원두가 어디에서 나는지 조차 모르면서 매번 피곤할 때면 나도 모르게 초콜릿에 손이 갔었다.
내가 아는 건 코트디부아르가 아니라 허시나 M&M을 기억할 뿐이다.
책 제목이 [나쁜 초콜릿]이니 뭐, 굳이 책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그닥 좋은 내용은 아니겠구나 싶을 것이다.
역시나 카카오 원두 생산 및 재배와 관련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강대국의 경제적 야욕이 담겨 있고
독재 정권의 억압이 담겨 있으며
힘없는 노동자들의 절망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카카오는 "신의 선물"이다.
없어서는 안 될, 그나마의 현실조차 버겁지만 견디게 만드는, 그런 "신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냉장고에 들어 있는 갖가지 초콜릿 가운데 그 어느 것에도 쉽사리 손을 대기 어려워졌다.
탐욕과 폭력, 피와 땀, 어린 아이들의 상처받은 노동이 담겨 있는 초콜릿.
그 속에서 이전처럼 달달함을 느끼고 행복하고자 하는 꿈을 꿀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진 않겠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인 망각 덕분에 시간이 흐르면 또 다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최근 공정무역의 바람이 불면서 아름다운 커피가 유행한다.
아름다운 초콜릿.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생산자에게 이득이 가도록 원두 판매에 공정성을 가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손에 도달하게끔 가공하는 것은 강대국인만큼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 또 다른 가시가 돋아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는 것은
어찌되었든 포기할 수 없는 초콜릿의 행복함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책 속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때쯤 아마도 별 생각없이 피로를 쫓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혹은 행복함을 기뻐하기 위해 초콜릿을 선택할 지도 모른다.
다만 그 희미해짐이 초콜릿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마 한 동안 초콜릿을 먹진 못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