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무수히 쏟아지는 주변의 '언어'들을 들으며 나름대로 자신의 언어를 생성해 나간다. 

비분절화된 웅얼거림의 단계를 지나 소위 말문이 트이고 한마디 한마디 인간의 언어를 따라 배울 때는, 전적으로 청각영상의 모방에 따라 언어 습득이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어른들의 언어를 유사하게 모방하는 단계는 필수적이다. 자신의 귀에 들린대로 그들이 반응하는 것은 분명하다. 의미에 대한 자각이 전무하지만 그들은 그저 흉내내기를 통해 언어에 다가간다. 

 동요를 배울 때 이러한 무자각적 모방은 분명해 보이는데, 예를 들어 '달달 무슨달'을 '달달 무은달'로, '어디어디 떴나'를 '으디으디 엇나' 이런 식으로 그저 흉내만 내다가 점차 분명한 발음을 훈련하게 된다. 역시 의미와는 상관없는 단계가 오래 지속된다.

그런데 두돌이 지나고 이제 단어 차원의 모방을 넘어 sentence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하게 된다. 

 짱아가 가장 처음 구사할 수 있게 된 문장은 '물 더 줘'였다. 물론 '물, 또조' 이런 식으로 들린다. 아기에게 '또조'라는 말은 단지 물을 더 먹고싶을 때 써먹을 수 있는 하나의 음성기호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짱아뿐만 아니라 주변 아이들이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문장 성분은 주어인 듯 보였는데, 이를테면 뭘 할라치면 늘 '엄마가', '아빠가' 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엄마가 (해)(줘)', 아빠가 (해)(줘)'의 의미임은 분명하다. '누가?' 또는 '누가 그랬어?'라는 질문에서도 그 '누가'의 자리에 '엄마가', '아빠가', '훈이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가'는 문법적인 형태소로서의 주격조사에 대한 인식과는 전혀 무관하게 '누가'에서의 '가'를 단순히 덧붙인 것일 수도 있고, 어른들에게서 한단어로 발화되는 주어 즉 '엄마가 줄게', '훈이가 해봐'와 같은 문장 형태에서 빌려온 단순한 모방일 수도 있겠다.

 
문법은 교육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연발생적인 또는 학습자의 내재적인 언어습득체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을 또 발견할 수 있다. 

 두돌 무렵부터 짱아가 많이 쓴 말은 '아저씨 이사 갔어'라는 문장이었다. 3월이 되어 동네에 이삿짐 나르는 사다리차 소리가 아침마다 요란하자 아이가 창밖으로 자꾸 손짓을 하면서 그 소리의 정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누가 이사가나봐' 또는 '누가 이사갔어?' 이렇게 재미삼아 물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맨날 아파트 앞에서 만나는 경비 아저씨와 '이사갔어'라는 말을 결합시켜 '아저씨 이사 갔어'라는 문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고 놀라운 것은 그 뒤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아빠 이사 갔어'(아빠, 이다 가또), '엄마, 이사 갔어', '훈이, 이사 갔어' 이런 문장들을 저절로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사갔다'가 어떤 행위나 상태에 대한 설명임을 지각한 뒤 그것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계열체들을 나름대로 교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또 다른 무척 흥미로운 현상들과 결합한다.

'이사갔어?'라는 말꼬리를 올리는 의문형식의 발화를 아이는 '이사갔어'라는 말꼬리를 내리는 종결형 발화로 바꾸어놓을 수 있었다.

또한 '이사갔다'라는 기호의 의미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각이 싹텄음도 엿볼 수 있다. 즉 moving의 개념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아이는 이 말을 '현재 여기 없음', '보이지 않음', '부재함'의 기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가 회사를 가고 나서 집에 없을 때 아이는 '아빠, 이사 갔어'라고 말을 했으며, 엄마가 출장으로 며칠 집에 없었을 때 '엄마, 이사 갔어' 하고 화를 냈다.

매일 아침 이삿짐을 옮기는 사다리차는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소리로서만 존재했으므로 아이에게 그것이 '사다리차 소리=>이사갔어=>부재함'으로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이는 매일매일 배운 말들과 이를 통해 자기 내부에서 생성된 말들을 내뱉고 연습하고 강화하면서 흥미로운 언어의 폭발을 보이고 있다. 

 언어와 언어 습득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참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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