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보고 싶거나 봐야 할 드라마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월화드라마-별을 따다줘, 제중원(sbs), 공부의 신(kbs), 파스타(mbc).
어떤 것 하나도 뺄 수가 없어서 열심히 다운로드해 놨다가,
나머지 날들에 한편씩 야금야금 빼내어 보고 있다.
아직 2주밖에 안돼서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지만, 각각의 드라마들을 보면서 든 생각들-
1. 별을 따다줘.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이 드라마의 작가에 대한 관심때문이다.
이 작가는 이전에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가문의 영광>을 썼다. 두 편 다 매우 즐겁게 봤던 드라마이다.
<완벽한 이웃...>은 독특한 장르였는데...약간 '스릴러'물같기도 하고 <위기의 주부들> 한국판 같기도 한 이야기였다.
한 기업의 사택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 사람들간의 복잡한 관계가 '한국 드라마'치곤 꽤 치밀했고,
배두나의 '프리스타일'연기도 매력적이었으며, 재벌문제를 다루는 시각도 나쁘지 않았다.
어떤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한 꼬마아이를 둘러싸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과정이 주된 스토리인 셈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부르주아, 재벌의 가혹함, 잔인함, 그리고 그 끝의 파멸과 참회,
또 직장인들간의 계급, 지위에 따른 알력관계, 권력다툼, 갈등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감싸고 있는 '완벽한 이웃들'간의 '연대', '용서'의 방법 등은 무척 신선했다.
김승우가 남자 주연이었지만, 여자 주연인 배두나와 엮이지 않는 것, 그야말로 '완벽한 이웃'으로만 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 드라마를 썼던 정지우라는 작가의 그 다음 작품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 드라마에 대해선 목록에 예전에 쓴 글이 있으니 참조.
드라마가 재벌 이야기를 안하기 쉽지 않지만, 그런 흔하고 상투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어떤 '방향성'을 새롭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이번 새 드라마 <별을 따다줘> 역시 재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진빨강이라는 철부지 아가씨가,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고로 졸지에 다섯 동생의 '엄마'노릇을 하게 되는, 그러면서 성장하는 이야기.
-그런데 진빨강만이 부모님의 친자식(정확히는 엄마의 친자)이고, 나머지 다섯동생은 부모님이 공개입양해서 키우던 아이들이라는 것.
-진빨강의 친부는 진빨강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었고, 그 친부의 아버지, 즉 진빨강의 할아버지는 굴지의 보험회사 회장이다.
-진빨강의 할아버지는 죽은 큰아들(진빨강의 친부)과 세상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전재산을 사회복지를 위해 내놓으려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작은 아들과 작은 며느리가 진빨강의 할아버지와 다투다 진빨강의 할아버지가 쓰러진다.(죽진 않았음)
-그 사이에 작은아들 부부가 진빨강네 부모를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고, 진빨강네를 몰락시킨 것.

즉, 이번에도 재벌이 사회에 자신의 재산 전액을 환원하는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아직 더 이야기가 펼쳐져봐야 알지만, 역시 잘쓴다.
육남매의 처절한 생존기는, 코미디이기도 하고 신파이기도 한데,
아슬아슬하게 '판타지'와 '리얼리티'사이를 줄타기하며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1,2회나 <공부의 신> 등을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정말 요즘 아역배우들은 따로 '아역'이라 부를 필요가 별로 없을만큼 연기들을 잘한다.
'아역배우'의 풀은 이제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아직까지 철없던 진빨강의 '정말 구제불능' 캐릭터도 너무 잘 만들어져있다.
그녀의 '성장기'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물론 그런 그녀가 알고보니 재벌의 손녀였다..는 건 참 드라마다운 한계이지만)
이 드라마는 시간대도 다른 '경쟁작'과 달라서(9시대) 뉴스 보기 싫은 사람들에겐 나름 호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드라마 시간대가 아니라는 점은 약점이기도. 허나 극이 진행되면서 20%대까지는 충분히 나올듯.
그리고 이 드라마도 부디, 예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기업, 재벌에 관한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잘 깨어주길 빈다.
2. 제중원

미리 소설을 읽고 보는 터라, 일단 큰 긴장감이 없다는 것.
더구나 소설에 대해서 좀 실망했었기 때문에 그다지 기대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종의 '공부'하는 심정으로 보고 있다. 다운로드 받아놓고도 항상 가장 손이 나중에 가는 드라마이다.
'제중원' 문제는 사실 간단하지 않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라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는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 사이의 '뿌리논쟁'도 연관되어 있고,
서양선교(의)사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도 엮여 있다.
게다가 제중원이 설립되던 시기의 한국 사회, 시대란 해석에 있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역사의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2주까지 보고 난(사실 아직 4회를 못봤다;;;손도 안가고, 시간도 없고 해서...) 소감으로 말하자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일단...이 드라마의 마지막에 제일 먼저 뜨는 크레딧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이라는 것에서 알수 있듯
이 드라마는 연세대 의대의 '지원'을 받고 만들어졌다. 따라서 제중원과 연관된 '뿌리'논쟁에서 이미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 선교의사들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를 하기엔 다소 '치우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의료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고 외교권과 정치적 이권을 챙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알렌에 대해서도 지나친 미화를 하고 있고, 앞으로 나오게 될 에비슨, 헤론 등의 의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최근 내가 들은 얘기에 따르면, 에비슨이 조선의 가난한 환자들에게 했다는 가혹한 처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한다.
그 기록을 읽어봤는데, 이건 좀...ㅎㄷㄷ였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러한 사실들은 학계에서 직접 언급해 줄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런 역사드라마들의 경우에 제일 어려운 것은 '선', '정의'에 대한 작가의 입장이다.
무엇이 정의인가, 무엇이 정답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 사극의 경우 정말 신중하게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제중원>에서는 선/악의 구별이 선험적이고 단순하다.
즉 서양의학, 선교사, 서양인이 선이고, 일본인, 전통의학 등은 악이다.
총상을 입은 황정이, 자신을 치료해 준 알렌에게 치료비를 낼 형편이 안되는데 어쩌냐고 하니, 유석란이 말한다.
"걱정 안하셔도 돼요. 사람목숨 살리는 일에 돈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알렌도 말한다.
"돈이 없다고 환자를 거부하는 의원은 의원이 아닙니다. 의원은 어떠한 경우라도 환자를 거부해선 안됩니다."
이때의 내 오그라들어버린 손발, 어쩔건데?
반면, 황정의 어머니를 치료해 달라고 일본 의사 와타나베에게 갔을 땐,
치료비를 내놓지 않으면 치료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는 장면이
그 단적인 예이다.
(와타나베 역을 맡은 강남길의 그 '했스므니다~'수준의 일본인 발음과 정형화된 '악인 쪽빠리'역은 도대체 앞으로 또 어쩔건데..
이건 80년대에 하던 드라마들에서나 나오던 일본 순사캐릭터를 그대로 가져 온 '코미디'이다.)
이런 식으로 이미 정해져 있고,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단순화한다.
일본이든 서양이든, 한국을 자신들의 '먹잇감' 취급했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정말 오늘날과 같이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널리 알려진 시점에서,
서양선교사들이 그저 '병든' 우리를 '치료'해주고, '도와'주려고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 외에도 갑신정변에 대한 묘사나 고종, 명성황후에 대한 설명 같은 부분의 얄팍함...
정말 '글로 배운' 역사인 게 너무 티난다. 한마디로, 아직 작가는, 역사물을 쓸 역량이 안되는 작가이다.
제중원이 병원, 의사 이야기니까 그것만 쓰면 되는 줄 알고 덤볐다가, 여기저기에서 빈틈을 보이며 허술함을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서사가 허술하면, '비주얼'로라도 승부를 봤어야 하는데...비주얼에 있어서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제일 결정적으로 실망을 한 장면은, 황정이 사체를 해부하는 장면이다.
백도양과 그의 하수인의 강요로 자신의 친구의 사체를 해부하게 된 황정은 배를 짼 후에, 일자로 째어진 틈 사이로 손을 넣어
장기를 하나씩 꺼낸다. 그게 '해부'란다. 이 뭥미?



따로 떨어져 있는 장기를 보기 위해 해부를 하는 건가?
백도양이 들고 다니던 <전체신론>에도 그것보단 자세하게 해부도가 들어있다.
즉 배부분을 다 드러내놓고 각 장기의 위치, 들어있는 형태, 모양 등부터 그대로 봐야 '해부'인 것을,
심장 따로, 간 따로 꺼내서 옆에다 놓은 걸 보면서 흡족해하다니, 뭐하시는 건가?
거기다 한번 꺼내서 훑어보고, 책이랑 대조해보고는 끝.
이 정도로 장차 최초의 서양의학자 중 한명이 될 사람의 '지적 호기심'이라 할 수 있나? 그냥 '장난', '놀이' 아닌가?
요즘 하는 의학 드라마들의 수술장면도 이것보단 더 보여주는데,
조선이 인간의 몸 속을 들여다보는 경이적인 '첫장면'을 이렇게밖에 못 보여주다니,
특수효과의 한계인가? 아님 시청등급상의 문제?
하여간 김이 팍, 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외에도 문제는 많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건대, 백도양은 원작보다 더 '악인'이고, 황정은 원작보다 더 '영웅'일 듯하다.
안 가도 되는 장면에 끼어들어 자꾸 사건을 해결하는(갑신정변에 가마꾼으로 가서 민영익을 업고 나온다거나...) '황반장'이 되어가시고,
그래도 소설에선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어서 사체 해부 후 다시 꿰매고 장사지내 주라던 백도양이, 드라마에선 시체를 쓰레기취급만 하는 냉혈한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고증의 기본도 안된 장면, 설정들이 너무도 많아 열거하기 입아프고...자주 손발이 오글거린다.
박용우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오히려 이 허술한 드라마 속에서 혼자 '리얼'한 연기를 하고 계셔서 안쓰러운 느낌마저...
이 드라마는 아마도 15%(이하)정도가 유지될 것 같다.
본격적인 '병원'이야기로 가면 그보다 좀 나아질 여지는 있지만...
저 해부장면 수준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면 10%대 초반일 가능성도.
그러나 애국가 시청률이 될 리는 절대 없다.
새로운 소재를 즐기고, 멜로, 트렌디, 가벼운 드라마들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의 어느 정도의 지지가 있을 것.
그러나 그 이상의 입소문이 나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만큼 재미있지도,
'웰메이드' 드라마 소리를 들을 작품성이 뛰어나기에도 좀 부족해보인다.
(작품성보다, '학계'의 논란 속에 휘말리지 않고 '곱게' 끝날 수나 있을지...그게 더 걱정된다..;;)
딱 10~15%정도? (허나,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니까, 어디까지나) 현,재,로,서,는.^^
*헤....너무 길어서;;(난 왜 정말 '단상'을 '단'하게 못 쓸까..;;)
일단, 여기까지. <파스타>와 <공부의 신>은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