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박찬옥의 전작 <질투는 나의 힘>을 하도 인상 깊게 봐서 당장 비교가 됐다. 그녀는 ‘여자 홍상수’라는 별명을 얻었었는데, 이번에는 홍상수가 아니라 김기덕 쪽이었다. <질투는 나의 힘>은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남성-욕망에 관한 영화였는데, <파주>는 모호하고도 파괴적인 여성-도덕에 대한 영화이다.

* 여리고 파괴적인 영혼 ;
'그녀'(서우 분)는 자신을 간수할 수도 없을만큼 여린 존재이면서도,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한다. 그녀는 자신 속의 그 파괴적인 힘을 (막연히 느낄 뿐) 잘 모르면서도, 반드시 그렇게 행동한다. 그녀 자신 밖으로 반발짝만 나와도 그녀의 도덕률은 무용한 것임에도, 그녀는 그것을 믿는다. 그러니까 그녀는 일종의 미숙한 악마이다.(아름답고 어린 여자들이 바로 그런 악마이기에 적당하다. 맑고 모호한 그들의 영혼은 악마가 좋아하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에 무고한 서우의 얼굴은 어울린다. (전작에서의 박해일의 얼굴도 ‘비교적’ 그러하다. 하지만, 박해일은 점점 덜 위험한, 스놉이 되어간다.)
* ‘운동(권)’에 관한 표상 :
그는 1996년 연대 사건의 수배자이며 신학대학생이다. 즉, 헌신적인 그는 NL이며, 기독교인이다.(한국사회에서 NL인 것과 기독교인인 것은 대립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NL과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철천지원수다. 양자의 애증(?)과 모순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도 흥미로운 것이다. PD는 거의 아무도 교회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골방에서만 살아가는 우울한 얼굴의 그는 번제물이다. 그의 희생이 스스로부터의 죄의식에 의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감독의 머릿속에 든 1990년대 후반 이후 ‘운동’의 이미지는 흥미롭고 황당하다. ‘연대사건 - 공부방(운동) - 이주노동자 돕기 - 북한인권운동 - 재개발지역 철거민 투쟁’이 그것이다. 연세대 사건과 용산을 언급하는 영화는 드물어 귀하다. ‘희생자’들은 이 운동들의 주체/대상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이 '운동들'은 계열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 운동의 과정은 '희생'에 대한 알레고리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럼에도, 서사가 ‘북한인권운동’으로 갑자기 비약한 것이나 그 문제로 연행된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황당한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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