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제중원'인지라, 내겐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의 설립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졌는지가 일차적인 관심사였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은 제중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백정출신의 한 남자가 서양근대의학을 익혀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에 가까웠다.
제중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 정도의 '전공자(?)'눈에는 그닥 새로울 게 없는 수준의 피상적인 이야기들 뿐이었다. 흔히 알려져 있듯, 알렌이 갑신정변때 크게 자상을 입은 민영익을 외과수술로 살려내게 되면서 고종의 서양의학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고, 이 일을 계기로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에 제중원을 거쳐간 원장들에 대한 이야기와 제중원의 번창과 쇠락의 과정 등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가장 궁금한 그들과 전통의학 사이의 '헤게모니' 싸움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미미하다.
서양의학은 어떻게 해서 전통의학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잡게 되었을까? 무엇때문에 이 시기부터 서양의학은 '진리'가 되고, 전통의학은 '찬밥'신세가 되었을까? 이것은 단순히 의학분야만의 문제가 아닌, 근대문명, 서구지식이 조선 사회에 유입되어 뿌리내리는 과정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로 의미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소설에서는 그러한 전통/근대, 조선/서양의 각축의 장이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는 서양의술이나 서양인을 두려워하던 무지렁이 조선인 환자들이 '차츰' 그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의학의 힘에 경탄하며 제중원을 찾아오게 된다. 또는 여전히 서양의학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전통적 유교윤리에 속박된 조선인들이 그들에게 받은 치료에서 충격을 받는 모습(심지어 그 치료후 자살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서양의학과 대결(?)하는 존재는 이 소설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조선인 환자'들이다. 그들이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만 소설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의사-환자의 구도 내에서 환자가 서양의학/전통의학을 선택하는 문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나를 살려준다면, 내 병든 몸을 고쳐준다면, 그때의 선택은 일종의 '절박함'의 문제이고, 그럴 때는 절박함만 강하다면 환자들은 처음의 거부감을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 더구나 가난한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사가 치료비를 받지 않는다면 더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수직적이다.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의사 앞에서 환자는 순종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전통윤리에 젖어 있는 조선인이라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좀더 쉽게 '새로운', '낯선' 이 의학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다른 전통 의학자들은 어떨까? 전통의학의 힘을 믿고 있던 한의원들의 입장에서 갑자기 들어온 이 새로운 지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또한 서양의학을 배우기로 나선 자들이라도 환자의 입장이 아닌 지식 수용자의 입장에서의 서양의학의 낯선 방식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들에게는 전통/근대 사이에서의 선택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 소설 및 드라마는 단순히 소재적 차원에서의 서양의학의 유입과정이나 최초의 서양식 병원의 탄생사가 아닌 '개항', '개화'의 물결 속에 처해 있던 조선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선 '괄호'를 치고 만다. 어쩌면 이 경쟁구도 속에서 결국 서양의학이 한의학으로부터 승리를 하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것이 한의학을 폄하하는 것으로 보일 위험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의학과 직접적인 대결을 보여주진 않더라도, 서양의학을 배우기 위해 들어온 의학도 내부에서의 갈등이나 망설임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황정이 백정출신으로서 인간의 몸을 째고 꿰매는 일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의학도라면, 성균관 유생출신의 백도양은 서양의학을 배우러 들어왔으나 막상 서양의학의 치료방식이나 교육방식 앞에서 전통적 유교윤리 관념과의 갈등과 번민을 겪는 의학도로 그릴 수 있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과정에서 차츰 백도양 역시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전통/근대의 각축의 장에서 근대적 지식인이 어떻게 만들어져 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드라마화되었을때에도, 지금보다 백도양이라는 '안타고니스트'의 역할과 비중도 커지고, 아예 '투톱' 주연식의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백도양은 아무리 봐도 예전 <허준>의 유도지(유의태의 아들) 캐릭터를 못벗어난 듯 싶다. 백도양이 황정을 뛰어넘을 수 없는 궁극적 이유가 황정에게 있는 휴머니즘을 도양이 갖지 못해서라는 것은 너무 상투적이다. 그저 좋은 배경을 타고났으나 황정에 비해 자질이 부족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유교적 계급사회를 고수하며 이기기 위해서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 악역, 조연으로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매력이 없고, 황정의 '호적수'가 도통 되질 못한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막판에 '악역'을 멈추고 황정을 존경하게 되는 계기도 설득력이나 극적인 면이 부족하다.) 그런데 만약 도양이 황정에게 뒤쳐지는 이유가 휴머니즘때문이 아니라 근대적 지식인이 되어가는 과도기에 처한 봉건적 지배계층의 인물로서, 전통적 지식이나 윤리에 대한 완전한 '포기'가 어려워서였다면? 그랬다면 이 소설 및 드라마가 시대의 단면, 전형을 훨씬 흥미롭게 재현해주는 셈이 되었을 것이고, 도양이라는 인물의 설득력과 매력도도 커질 수 있었지 않을까?
지금의 소설은 지나치게 황정이라는 특수한 이력의 인물의 영웅화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황정은 백정 출신이었기 때문에 처음 서양의학이 도입될 때 서양의학의 '특장'으로 취급되었던 외과수술에 있어서 천부적 재능을 지닐 수 있는 여건이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이력은, 서양의학을 받아들이고 뛰어난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신분상의 제약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큰 '역경'이지만, 의사로서의 자질면에서는 매우 큰 '메리트'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거기다 그는 노력파에 성실하고 온정적인,심지어 독립운동에까지 뛰어드는 인성 면에서의 훌륭함까지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즉, 그는 신분 문제를 제외하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웅이었다.
이러한 점은 이 소설의 약점으로 보인다. 계급사회가 철폐되어가던 중인 개화기라는 시대적 상황상 천민이라는 출신 계급 문제는 그다지 큰 역경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밀도살 문제라거나 아버지 수술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에도 여전히 백정 신분은 파리목숨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재현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국 면천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헤론이라는 제중원 2대원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돌변(그 이전까지의 황정에 대한 반감을 갑자기 철회하고, 그의 면천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이라는 계기도 스토리 흐름상 설득력이 부족하고 갈등해소가 너무 손쉽게 이뤄져 버렸다는 점에서, 역시 신분의 문제는 결정적 역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얘기지만, 나는 오랜 드라마홀릭자이고, 국문학전공자이고, 문학에 나타난 의학이나 여성의 몸 등의 문제를 공부해온 사람이다. 그런 나의 '프로필'상 소설 <제중원>은 안 읽어볼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을 제목으로 표방하여, 조선땅에의 서양의학의 도입과정을 그리고 있고, 1월에는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인데 그 전에 소설로 먼저 출판되었다 한다. 이 소설을 쓴 이기원은 예전에 일본 드라마인 <하얀거탑>을 한국드라마로 각색했던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문학이라 하기에도, 드라마의 원작으로서도, 의학사적 가치로서도 모두 '미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