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리스> 광화문 촬영분이 방영되었다. 호들갑에 비하면 화면은 생각보다 스펙터클하지도 박진감 있지도 않았다.
나는 매일(?) 광화문-삼청동, 또는 광화문-안국동(-재동)을 지나 직장에 다닌다. 그래서 <아이리스> 광화문 촬영이 결코 일개 드라마 촬영을 위한 범상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길에는 실로 많은 함축적인 것이 펼쳐져 있다. 그래서 저 기괴한 정치드라마도 광화문에서 클라이막스 씬들을 찍었을 것이다.
광화문통은 사람을 늘 조금씩 긴장하게 한다. 그것은 실로 정신건강에 안 좋다. 인간을 ‘정치’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아침의 명상’ 따위는 없다. 효자동ㆍ청운동을 드는 입구가 있고, ‘정부종합청사’가 나오자마자, 이순신과 세종이 지키는 광화문통이 보이고 ‘총독부’라는 별칭으로 불리워 온 미대사관도 있다. 삼청동에는 국무총리 관저가, 재동에는 헌법재판소가 있다.(‘굴욕’의 장소들이다.)
그래서, 늘, ‘전투’경찰과 진짜 ‘요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수와 표정은 일종의 풍향계이다. 90%의 인간 위에 군림한, 1%의 지배세력이 오늘은 과연 무슨 ‘일정’을 치르는가, 어떤 ‘통치 정신’으로 이 지배를 연장하는가에 관한.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언제나 그 회색 또는 쥐색 옷을 입은 인간들, 그리고 그들을 태운 차들이 도로를 가득 점거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체증’의 한 주범이며, ‘불법’의 행사자라는 것을 나는 매일 본다.
그러나 한미 FTA가 입안ㆍ추진되던 어느 날 밤의 광화문-안국동 풍경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노무현은 그날 청와대 안에서, 민중들에 의해, 그리고 스스로, 포위당했었다. 광화문으로 오는 모든 대로는 경찰병력이 점거했고, 반FTA 시위대는 시청 쪽부터 봉쇄당했었다. 물론 청와대 주변의 모든 작은 길도 차단되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우리는 ‘봉쇄’ 당해 갈 데 없어, 안국동 안에서만 뱅뱅 돌며 술 마시다 노무현을 욕했었다. 그렇게 ‘통치’를 수만의 경찰병력으로 보호받던 그 꼴은 2008년 5-6월의 이명박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스스로 고백했듯이 그게 노무현을 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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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만들었던 여러 풍경도 생생하다. 물론 그 하이라이트는 2008년 6월 10일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 ‘명박산성’이 세워졌다. 광화문을 오가는 사람들은 체증 때문에 화를 내거나, 권력이 비밀리에 준비한 큰 코미디 덕분에 아침부터 크게 웃었다. 오후가 되자 서울 전역에서 광화문으로 소풍 나온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명박산성을 즐겼다. 그 앞에서 디카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V자’를 그렸었다. 그리고 그날 밤, 50만명이 모인 광화문과 ‘시민 토성’. 아무일도 없었다.
‘촛불’ 이후, 광화문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그것은 물론 오모가 주도한 것이다. 잘 알다시피 광화문 풍경을 망친 가장 최근의 사건은 세종대왕상의 건립과 이른바 ‘광화문 광장’을 조성한 일이다. 나는 ‘국어국문학과’ 출신이지만, 이 금색 세종대왕상이 전혀 존경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외려 그 금색 세종대왕상이야말로 희대의 졸작이며,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메마른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그 동상의 크기, 색깔, 표정, 자세, 의상 따위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이 금박 세종대왕상은 분명 '초딩용' 표상이다. 그 상을 부디 영릉이나 다른 데로 옮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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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은 집회시위의 허가에 관한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아이리스> 촬영은 광화문에 관한 이 정권의 상상력, 또는 정치적 무의식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아마 그것은 단지 KBS 드라마국이 건의하고 서울시장에 의해 ‘결재’된 것이 아니다. 그 촬영은 '최고 통치 행위'의 일부이자, '국가 안보'의 문화적 전치다.
현상적으로는 간단하다. 그들은 시민과 민중의 ‘정치’를 광화문에서 추방하고자 한다. 대신 장악당한 TV 프레임 안에서, 이병헌-김태희의 사랑놀음 안에서만, 광화문을 이해하라 강요한다.
심리학적으로도 간단하다. 불에 덴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은 것이다. 광화문 가장 깊숙한 곳을 점거한 그들은 아직도 ‘촛불’의 화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쥐’가 아니라 고양이처럼, 계속 제 살을 핥고 또 핥고 있다. 물론 가끔 독이 올라, '인간'을 할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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