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드라마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1.
하나는, 초특급스타들이 출연하는 드라마. 이때의 초특급은 그야말로 지금 현재 잘나가야 한다. 한때 잘나갔던 배우로는 쉽지 않다. 전작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그래서 그 '인기발'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작품을 했을 때 전작을 통해 형성된 팬층을 통해 관성적으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시청률이 있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최근의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윤상현이 나오는 경우가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내조의 여왕>으로 올해 3월부터 5월 사이에 '확 뜬' 윤상현이 3개월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드라마인 <아가씨를 부탁해>는, 윤상현에게 꽂혔던 아줌마 팬들이 그의 모습이 궁금해서 일단 채널을 그곳으로 돌렸다.
이럴 경우 15~20% 사이의 시청률을 담보하며 드라마는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은 드라마의 몫이다. 드라마가 실제로 재미있고, 공감할 무언가가 있으면 거기서부터 쭈욱 30%이상의 시청률로 올라가지만, '이 드라마, 뭥미?' 소리를 들으면 15%이하에서 왔다갔다하다가 종영되고 만다.
지금의 <아가씨를 부탁해>는 여러가지 이유로 후자에 속하고 있다. 일단 드라마의 컨셉이 '여성판' <꽃보다 남자>에 머물고 있다는 점. 그것도 <꽃남>의 '악덕'을 많이 닮은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재벌집 손녀인 윤은혜의 '천한 것들' 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속이 뒤집어 진다. 그리고 그동안의 드라마에서보다도 안 예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로 '윤은혜가 어쩌다 저렇게 됐나?' 싶은 스타일로 출연하면서도 드라마에서는 최고의 패셔니스타이자 미녀 취급을 받는 설정은 당황스럽다. 이 시대에 온갖 행패를 부리는 '주인'을 위해 헌신하는 집사, 메이드가 등장하는 드라마...그 비현실감 역시 참기 어렵다. 진짜 '걔네들'이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불편한 노사구조이다. 돈 가진 자의 횡포를 우리에게 '멋지다'며 동경하게 만들려 하는 건 <꽃남> 하나로도 매우 버거웠다.
또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력, 발성도 엉망이어서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일전에 기사에 떴듯 '<아가씨를 부탁해>, 자막을 부탁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기 힘들다. 오죽하면 '신인'급에 속하는 윤상현이 그 중 제일 연기를 잘하는 축에 속할 것인가?
이런 드라마들은 결국 15%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윤상현도 15%대의 시청률 담보를 하는 '초특급 스타' 반열에서 한 계단 내려오게 되었다. 윤은혜도 <커피프린스 1호점>의 영광이 이젠 옛날 일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작품은 그래도 전작들의 이름값으로 이 정도 했지만, 다음 드라마가 작품성이나 연기력으로 뭔가 혁신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하향길이다.
<스타일>도 비슷하다. 한국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 한류스타인 류시원, <베토벤 바이러스>로 인기를 얻은 이지아, 패셔니스타의 대명사 김혜수의 등장 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지난주 종영때까지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역시 몇몇 배우의 발연기와 지리한 밀고당기기, 리얼리티 떨어지는 잡지사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 실패했고, 혼자 고군분투한 김혜수의 카리스마만 오래간만에 한번 확인한 드라마로 그쳤다.
이런 드라마들의 15%내외의 시청률은, 앞에서 말한 애국가 시청률의 '전조'이다. 그래도 15%정도 나오면 '참패'는 아니지만, 초특급 스타가 등장해서 15%이상을 못넘기며 지지부진 하다가, 10%초반대의 시청률로 조용히 막을 내리고 나면, 후속작 선정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다음에도 이러면, 그들은 이제 애국가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의 주연이 될 것이다.
2.
한편, 15%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드라마 중에는 의외의 훌륭한 드라마들이 많다. 이러한 드라마는 대부분 초특급스타가 등장하지 않아서, 또는 '대박' 드라마랑 같은 시간대에 붙어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내 기억 속에 이런 부류의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는 것은 <부활>이다. <부활>은, 혹시 안보신 분들이 있다면 시간 될 때 꼭 한번 보라고 말하고 싶다. 2005년에 방영했던 드라마인데, 하필 이 드라마는 <내이름은 김삼순>과 붙었었다. 더구나 <김삼순>에서 김선아와 현빈이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부활>에서는 아직 신인이고 아직 별 인기를 끌지 못했던 엄태웅과 한지민이 주연을 하고 있었으니, 일단 캐스팅에서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간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정말, 한국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탄탄한 구성력, 연출력, 연기력으로 무장된 드라마이다. 엄태웅과 한지민이 주연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배우들의 층은 매우 넓고 강력해서 그들이 주연인 것이 별로 눈에 띌 틈도 없다. 젠틀한 척 하면서 서늘한 이미지를 가진 이정길, <오이디푸스>의 이오카스테를 연상시키는 비련의 어머니의 선우은숙, 당시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배우이나 신비감과 무게감이 첫판부터 느껴지는 김윤석, 그 외에도 김갑수, 이대연, 안내상, 기주봉, 이한위, 김규철까지, 중견의 연기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러니 드라마가 안정감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연기는 하나같이 너무 훌륭해서, 거기다, 그들에게 부여된 캐릭터들이 모두 치밀하고 개성적이어서, '예쁜' 주연들인 엄태웅, 한지민, 고주원, 소이현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그들 사이에 얽히고 얽힌 관계, 사건들의 수레바퀴는 절대로 쉽게 앞날을 예상해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또한 대체로 '남성적'인 드라마임에도 한지민, 소이현 캐릭터에도 작가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이 아니지만, 그들이 드라마에서 하는 역할은 매우 결정적이며, 그들은 남성들 못지 않게 똑똑하고 용감하다. 뿐만 아니라 연출력...드라마는 종종 색깔의 대비라든가 독특한 구도 등을 활용하여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암시하고 복선을 깐다. 정말,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는 드라마이다.
그러나..이런 드라마는 사실 좀 복잡하기 때문에, 킬링타임용은 아니다.
한 회라도 빼놓고 보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렵고, 힘을 들여 몰입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대중적이긴 힘들다. 반면 당시 경쟁 중이었던 <내이름은 김삼순>은 스토리보다 촌철살인하는 30대 여성의 내면에 관한 대사와 내레이션, 30대 여성들의 판타지를 척척 충족시켜주는 멋진 남자 주인공 등으로 재미난 칙릿소설이나 자기치유서를 보는 듯 편안함과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으니, <부활>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부활>은 15%는 유지했다. 그게, 나는 '좋은 드라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뿌듯했던 것은, <부활>은 결국 <내이름은 김삼순>이 끝나고 난 뒤 거의 30%의 시청률로까지 등극했다는 사실이다. 몇 회 남지 않은 상태였지만, 갑자기 <김삼순>이 끝난 뒤 시청률이 상승하기 시작하여 '성공한 드라마'의 기준이라는 30%대를 넘겼다는 것. 이건 경이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드라마치고)복잡한 이야기구조를 가진 드라마가, 막판에 스퍼트를 낸다는 것은, 그러니까, 사실 사람들이 <김삼순>과 <부활> 모두를 그동안 즐겨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KBS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짜로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를 할 수도 있고, 꼬박꼬박 재방송도 해준다. 또 쌈박한 맛은 역시 <김삼순>이기 때문에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를 하기에는 역시 <김삼순>이 선택되었던 것. 그러나 이 소리소문없이 훌륭한 <부활>이란 드라마를 사람들은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삼순>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부활>에 몰입했다.
이런 <부활>과 같은 경우는 사실 흔치는 않다. 대부분 작품이 좋으나 경쟁 상대가 너무 막강할 때, 배우진이 눈에 띄지 않을 때는, 그냥 15%~20%대에 안착하며 무난하게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는 마니아를 만들어낸다. 노희경의 <거짓말>, 인정옥의 <네멋대로 해라>, 김지우의 <부활>, 이경희의 <상두야 학교가자>, 김도우의 <눈사람>이 그런 예이다. 인정옥은 앞에서 말했던 대로 <아일랜드>에 가서 좀 사그러들었지만, 노희경은 <고독>이나 <꽃보다 아름다워>, 김지우는 <마왕>으로, 이경희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김도우는 <내이름은 김삼순>으로 후속 드라마에서 더욱 두터운 팬층을 흡수하며 대중적 작가로 거듭난다. 그들의 첫 디딤돌이 된 드라마가 바로 이러한 15%대의 마니아드라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