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면 반강제적으로 태교에 관한 책과 기사들을 훑어 보고 CD들을 사들이게 된다. 내가 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선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내가 편해야 아기도 편하다'식의 내멋대로 태교이즘( 국가, 종파, 세대별로 다양하지만 그 긴 이론들의 결론은 대체로 이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에 빠져 듣고 싶은 음악고 보고 싶은 음악을 대충 들으면서 지냈다.


하지만 아이가 나온 후에는 아이의 취향과 기호를 존중해야 하지 않은가. 그때부터 주섬 주섬 동요 CD와 책들을 사 모았다. 회사는 달라도 콘텐츠들은 60%이상 중복되고, 음향은 신디사이저나 컴퓨터로 대충 반주한 듯 매우 조잡했다. 하지만 책의 비주얼은 기대 이상이었다.


하여튼 멀뚱멀뚱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며 더듬더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만큼이나 나도 모른단다. 하여튼 같이 배워보도록 하자. 뭐 이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배운 게 선생질이다보니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중에 이 노래를 통해 무슨 교훈을, 무슨 지식을, 혹은 무슨 감성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생각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강박증이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가 않았다. 일단 영어 강박증, 공포증(MB정권이후 영어에 대한 집단적 집착은 정말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영어 못하면 굶어 죽지 않을까?) 에서 비롯되어 집어든 영어 동요 CD를 집어 넣었다. 나름 내가 영문학 전공자인데...이러면서 집어든 책은 부분 부분 알 수 없는 암흑지대로 나를 던져 넣었다.


대부분의 영어 동요들은 Mother Goose에서 발췌한 것들인데, 이 책이 바로 스펀지에서 '공포스러운 자장가가 있다던데 쩜쩜쩜' 이러면서 등장했던 전래 동요집이다. 괴기스럽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전집이 다 떠돌진 않고 나름 발랄한 곡들이 선별되어 실려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가 오리무중인 것들이 꽤 있다.


이를 테면 <Humpty Dumpty >라는 곡을 한번 보자. 
 

Humpty Dumpty sat on a wall,
Humpty Dumpty had a great fall.
 
All the king's horses and all the king's men 
 
Couldn't put Humpty together again.

험티덤티는 벽 위에 앉았네.
험티덤티가 크게 떨어졌다네.
모든 왕의 말들과 모든 왕의 신하들이
험티를 다시 붙이지 못했다네.

이 단순한 가락과 리듬의 노래를 아이에게 불러주고 몇 단어 가르치려다가 오히려 질문의 포화를 면치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험티덤티는 누구냐? 왜 벽 위에 앉았냐? 그 벽은 어디있는 것이냐? 왜 떨어졌냐? 왜 말과 신하들이 험티덤티를 붙이려고 하는거냐? 붙이면 사는 거냐? 말이 뭘 어쩌겠다는 거냐? 험티덤티는 왕하고 무슨 사이냐? 그래서 험티덤티는 죽었다는 거냐?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나도 궁금한데... 답은 나도 모른다. 며느리도 모른다. 사전 찾아봐도 답은 없다. 다만 아마도 이 노래로부터 유래했을 법한 ‘한 번 부서지면 원래대로 고쳐지지 않는 것;《미·속어》 낙선이 뻔한 후보자’이라는 설명은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한테 설명하는데 도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뚱뚱한 생명체에서 정치인까지 이 길고 험난한 스펙트럼을 설명하려면 진땀 꽤나 빼야할 것 같다.


또 어렸을 때 신나게 부르던 노래 중


‘리리리자로/ 끝나는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사리 소쿠리/ 유리항아리’라는 노래가 있다.(아, 또 댑사리는 뭔가. 사전 찾아보니 댑사리는 없고 '댑싸리'만 있는데 명아줏과 일년초 식물이란다. 한국 동요의 난감함은 나중에 또 다루기로 하고. 하여튼 어렵다!!!) 이 이 노래의 영어판은 이렇다.


Row row your boat gently down stream

merrily merrily life is but a dream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너의 배를 고요한 저 강 너머로

즐겁게 즐겁게 인생은 한낱 꿈이로구나.


이 노래의 뜻은 명쾌하지만, 이 초월 혹은 체념한 듯한 노랫말을 막 파릇파릇 피어나는 이제 좀 살아보겠다는 생명체한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인생 살아봐야 별 것 없고 참 허망한 것이지만 너는 좀 열심히 잘 살아보려무나. 아니면 이 꿈이란 ‘Boys, be ambitious'의 꿈을 말하는 것이란다. 머 이렇게 뻥을 치면서 독려할 것인가.


어쩌면 이런 고민들은 다 나의 강박증 때문에 생긴, 쓸데없는 고민들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딴 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랄지도 모르고. 내가 그 질문에 모든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기대가 깨져가는 과정을 통해 자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뭣도 모르는 엄마는 쬐끄만 동요들에도 움찔 움찔 놀란다.


어쩌면 이 동요들은 어른들이 정말 많은 것을 모른다는 걸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부모나 양육자에 대한 헛된 기대들이 깨어지는 수많은 계기들 중 하나로서 마련된 것들은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나의 무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아이에게 설명할 것인가나 고민해야겠다.  

 jim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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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2009-08-2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You can find information about Humpty Dumpty.
I like Humpty in "Alice". :)

http://en.wikipedia.org/wiki/Humpty_Dumpty

jimi.k. 2009-08-31 15:0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thanks. but the more i find information about it , the more it confuses me.

동요의 정의? 2009-08-3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고 보니, 동요라는 게 무엇인지, 동요를 왜 배우거나 부르는지부터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ㅎㅎ '이제 좀 살아보겠다는 생명체한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란 말에 빵 터졌슴다ㅋㅋ 흠...진짜 우리가 그냥 어려서부터 익혀 부르던 동요들의 가사란 게 어떤 거였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앞으로도 재미난 동요분석 부탁드림다^^

jimi.k. 2009-08-3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함다. ^^
저도 별 생각 없이 부르던 동요들을 이제서야 돌이켜 보면서 새삼 이것저것 깨닫습니다. 아이들이란 그런 식으로도 부모들이 어른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