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책을 낸 2005년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낯선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책을 재밌게 읽었고, 궁금한 것이 많고, 그래서 만나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교육사에 관한 논문을 쓰려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만났을 때, 내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했다 한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 낮이었고 썬글라스도 끼고 있었다. 전화 목소리도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그녀는 책에 꽤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와서 는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 이 자료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건 무슨 뜻인가요?... 초면에 만난 낯선 사람에게, 전철역 바로 옆에 있는 소란스런 커피숍이었지만, 실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녀는 당돌하고 날씬한 미인이었다.
어떤 상황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됐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곧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중학생 때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갔었고, 두 아이의 엄마였다. 장학금 덕에 가족들과 한국에 왔다 한다.
좋은 인생이었다. 곱게 자란 똑똑한 여성, 똑 부러지는 언행과 ‘경우 바름’을 고루 갖춘. 그늘이나 찌든 콤플렉스 같은 게 잘 눈에 띄지 않는. 또래들과 영어 공부 팀을 하기로 하여 그녀의 집에 몇 번 갔을 때 외려, 보여준 ‘아줌마다운’ 친절과 따뜻함은 낯설 정도였다. 영어 아니라도 주고받을 이야기는 많았다. 연구 주제와 우리 20대의 날들에 대해서.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왜 그런 ‘고백’을 하게 됐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 그 모임을 이제 접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또 우리가 짐작하지 못할 절실한 몸과 마음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4세였던 그녀가 제 눈을 적셔가며 말하기를, 나는 희귀암 환자이며 몇 개월째 ‘키모’를 받고 있다, 그래서 사실 힘들다...
그냥 말문이 막히지만은 않았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고 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두 번째 책도 어머니가 가시고 난 뒤에, 경험한 상실감 공허감 덕분에 외려 빨리 씌어진 책이었었다.
또한, 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해보였기 때문이었겠다. 두어 번인가 함께 죽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내가 이런 삶을 계속 사는 게 옳은 일인지 판단이 안 선다고 했다.
벌써 그녀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을 것이다. 죽음을 체험한다는 것은, 연속되는 삶의 가치들을 완전히 상대화할 계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찰을 다루는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일상의 권력은 대단히 크다. 죽음을 선고받는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 그 언어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해도, 그것을 우리는 몸으로 수행할 수가 없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였던 그 생이 다 달라 보였다. 귀여운 두 아이와 좋은 남편, 그외 세속의 모든 것. 무엇보다 당당한 마음씨와 말씨. 그 스스로도 당혹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결정적인, 예상 밖의 위기가 갑자기 삶을 덮치며 끝장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 생이란 무엇인가, 생은 평등한 것인가?
그 겨울에 그녀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 사이에는 연락이 아예 끊어졌다. 혹 잘못 되지는 않았는가... 전화가 닿지 않을 때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러 개월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수술이 잘 됐다는 것이다. 많이 여위어 있었고 빠진 머리를 감추느라 모자를 썼다. 창백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웠다.
짧게 친해졌던 사람들과 함께 환송모임을 하고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역사학 연구자가 LA에 갔다가 그녀를 만난 소식을 전했다. 그녀가 당신 이야기를 하더라고. 반가운 마음에 이메일을 썼다. 2008년 3월이었다.
곧 답장이 왔다. 이번에는 말문이 막혔다. 건강이 회복되어 잘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그게 아니었다. “의욕상실”이며 “수술을 3개월 전에 다시 받았는데 또 해야 된다”고 했다. 세상의 의욕을 꿈꾸지만 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했다. 뭐라 위로해야 될지 몰랐다. 답장을 못 쓸 것 같았다. 그녀는 약해져 있었다. 그녀는 건강한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면서도 이메일 말미에 이렇게 썼다.
“저도 나중에 이런 일들을 돌아보고 웃을 날이 있겠지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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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후배가 전했다. ‘그녀가 미국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벌써 작년 가을이었다고.
삽십대인 그녀가 어떻게 그 육신과 육친을 두고 떠났는지 전혀 모른다. 그래서 ‘명복을 빈다’는 따위의 말을 감히 하지 못한다. 죽음은 평등한가? 아닌가?
먼 타인이라도 ‘요절’은 사람을 황망에 빠뜨린다. ‘나중에 돌아보고 웃을 날’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중’이 오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절도 연속만큼 깊고 강하다. 결국 둘 다 강하다. 둘 사이에서 어찌할지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것. 그럼에도, 운명은 있다는 것.
작성 : J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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