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이 작품은 잘 되었다. 그 자체만으로 놓고 볼 때 손색이 없는 걸작이다. 일반적인 작품들을 판단할 때 들이댈 수 있는 기준들로 보아도 그렇고, 유태인 문제라는 뜨거운 감자를 요리해낸 방법으로 보아도 그렇다. 미국에서도 유태인들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는 집단이 아니다.(물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태인을 거의 구경할 수도 없는 우리에게까지 알려져있듯, 돈만 알고 이기적이며 선민의식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악명이 높다. 슈피겔만이 그런 점을 모를 리 없고, 유태인의 비극을 다룬 만화에 대해 비유태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가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자신과 아버지라는 또하나의 대립항을 설정함으로써 위와 같은 비난들을 '일부 유태인만의 문제'로 비껴가게 만드는 것이었고, 이 카드는 멋지게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비유태인 독자들이 하고 싶은 비난을 저자에 다름아닌 주인공 아들(본작은 자전적 실화이다)이 대신 해주고 있으니 독자들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태인들이 '당한 사연'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정교하게 의도된 장치였든, 자신의 예술가 기질과 충돌해온 유태인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배금주의로 대표되는)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든, 결과적으로 거부감을 현저히 누그러뜨리고 있다.

한편 이러한 설정은 작품의 비극적인 중압감을 덜어주는 역할도 훌륭히 해낸다. 현실이라고 믿기조차 힘든 대학살극을 다룬 작품을 보면서도 우리가 종종 웃을 수도 있고 한숨을 돌릴 수도 있는 것은, 그리하여 과도한 부담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이러한 이중구조의 덕이다.

기법적으로도 <쥐>는 뛰어나다. 유태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인은 개, 폴란드인은 돼지 등으로 그려놓고는 유태인이 폴란드인 행세를 할 때는 돼지 가면을 쓰고 다니는 식의 묘사는 참으로 절묘하다. 만화만이 성공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기법이란 게 무엇인지를 작가는 영리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만화가일 뿐만 아니라 만화사 전문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내용/정신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이 형식/묘사에 있어서의 비사실주의적 기법과 어떻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상승작용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전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탄을 하며 읽어내린 다음에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유태인 작가가 유태인의 비극에 대해서 다뤘다는 사실 자체는 하등의 문제될 바가 없을 것이다.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도 그렇고, 러시아 치하의 동유럽 유태인들 이야기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도 그렇다. 슈피겔만이 시오니즘을 두둔하는 흔적조차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작가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쉽지 않다. 창작자의 책무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논하는 미학적 난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일례로 전범 당사자인 독일인들은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줄곧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진해서 교육시키고 있다. 그것도 학교수업을 통해서. 반면 유태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당한 것만 끊임없이 강조하며, 심지어는 자신들과 함께 당한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기실 2차대전 당시에 최대의 희생자를 낸 것은 유태인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이었다. 또한 수많은 동유럽 사람들과 집시들, 좌익 등 반나치파도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비롯한 유태인 수난사의 어디에서도 그에 대해 적절한 만큼의 언급을 해주고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이러한 점들이 본작의 성취를 절하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심심풀이용으로 소비될 것이 아닌 본작의 성격상, 더욱이 유태인도 독일인도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위와 같은 부분들에까지로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을 어찌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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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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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이 알려져있다시피 애니메이션판은 총 7권으로 된 만화판 중 2권의 앞부분까지만을 다루고 있으며 더구나 미야자키 스스로 밝혔듯이 '상업적 고려'가 들어간 버전이다. 그러나 '상업적'이라는 말에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고등학생도 잘 이해하기 힘든 만화판을 중학생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를 조정했다는 정도이지 그밖의 의심스러운 면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이 만화판 전7권은 대단한 수준과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다. 스케일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장대한 파노라마이자,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환경문제를 넘어 '생명문제'의 무척 답하기 곤란한 철학적 물음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작품을 묵직하게 만드는 이 부분(후반부에 나오는)이 결정적으로 애니메이션판에는 나오지 않는다. 환경문제,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언젠가 한번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물음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밖의 기법적 완성도나 재미 등에 있어서도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완벽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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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옥중수고 1 - 정치편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 거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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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20세기 유럽의 좌파는 레닌을 기점으로 하는 동유럽 좌파와 그람시를 기점으로 하는 서유럽 좌파가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람시 이후의 서유럽 맑스주의자 중에 그람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이 이 [옥중수고]이다. 동구권 붕괴 이후의 시대를 사는 좌파-맑스주의자라면 맑스-엥겔스의 저술 못지 않게 반드시 읽어야 할 '기본'인 셈이다.

[옥중수고]는 말 그대로 감옥에서 쓰여진 단편적인 연구노트들의 묶음이다. 원본은 상당한 분량을 자랑하는데(수천 페이지), 거름에서 낸 이 책은 그중 일부를 발췌하여 영역한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Hoare & Smith(500페이지 가량)의 국역본이다. 현재까지 영어권의 대표적인 번역선집으로 꼽히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가 채 해내지 못하고 후대의 과제로 미뤄두었던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 특히 상부구조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전개되었다고 말하여 무리가 없을 것이다.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것들은 낡기는커녕 오히려 [자본론]만큼이나 단단한 기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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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 1 - 일월총서 89
候外盧 지음 / 일월서각 / 198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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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이 책의 원서는 '북경대학교 후외로 교수 주편, [중국사상사강(中國思想史綱)], 중국 청년출판사, 1980년'이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좌파적 관점에 입각해 쓰여진 중국철학사 중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 나라에 소개되어있는 것이다. 1권은 은대부터 위진남북조까지, 2권은 당대부터 19세기 초까지, 3권은 아편전쟁시대 이후의 근대사상을 다루고 있다.

이런 만큼 익히 알려진 풍우란이나 노사광의 중국철학사와는 상당히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총3권에 각권 300페이지 내외밖에 안되는 '작은' 분량은 하나의 약점이지만. 철학사 서적에 정본이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저자의 철학적 입장이 개입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풍우란, 노사광 등을 별 생각없이 봐온 사람들은 그들이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피해 대만으로 망명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반드시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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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강의
김태길 외 / 철학과현실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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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근본문제'를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철학문화연구소가 편찬한 것이다. 한국의 중견 철학교수들이 철학의 분과별로 한 장씩을 맡아 집필하였다. 입문서로는 조금 버거울 것이다. 두세 권 정도의 입문서 및 철학사를 본 이후에 특정한 주제, 분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운동 정도로 좋을 듯하다.

1장은 김태길의 총론, 2장은 소흥렬의 과학철학, 3장은 백종현의 인식론, 4장은 김광수의 심리철학, 5장은 김태길의 윤리학, 6장은 황경식의 사회철학, 7장은 엄정식의 도덕철학(자유와 법칙성의 문제), 8장은 손봉호의 종교철학으로 되어있다. 얼핏 낯설어 보이지만 결국 존재론-인식론-가치론이라는 고전적인 편제에서 벗어나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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