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음반 걸작선 - 국악명반의이해와감상 1
노재명 엮음 / 삼호뮤직(삼호출판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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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악계에서 소문난 '젊은 매니아' 노재명씨의 공들인 저술인데, 거의 팔리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판소리를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논문이나 책은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적지 않다. 그러나 음반 가이드는 아직까지 이 책 한 권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고려할 사항은 이 책의 눈높이가 초심자용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시대 유성기 음반 복각판들로부터 가장 최근의 [안숙선 춘향가]까지 총 34종의 음반에 대해서 낱낱이 상세한 해설을 가하고 있는데, 그중 CD로 발매된 적도 없는 것만도 여럿이요 발매는 되었으나 일찌감치 초판 소량이 품절되어 구경하기 힘들어진 것이 과반수다.

음반 구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 치고 선정기준도 '좀 들어본' 사람들이라야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화려하거나 대중적인 소리보다 깊이있고 고졸한 소리, 이를테면 박록주, 김여란, 박봉술 등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초심자들이 무턱대고 이 책을 따라 음반을 모았다가는 초장에 지루함을 느끼고 나가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노파심이 든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초심자이지만 원체 점잖고 깊이있는 소리에 더 친숙한 분들이라면 상관이 없을 것이고, 판소리 음반 한 10장 이상은 갖고 있고 공연도 여러 번 접해본 중급자 정도라면 이 책은 필독서다. 음반 및 소리꾼들에 대한 해설, 녹음 및 발매정보 등은 편집증인가 싶을 만치 꼼꼼하고 상세하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을 놓으셔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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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본 서유기 1
오승은 지음 / 동반인(맑은소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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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TV 만화만 해도 [손오공], [오로라 공주와 손오공], [날아라 슈퍼보드], [드래곤볼] 등 오공의 둔갑술 못지 않게 다양한 버전이 명멸한 바 있는 [서유기]의 번역출간 상황은 [삼국지]나 [수호지]에 비해 많이 열악하다. 위의 두 작품은 여러 번역본 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가 망설여진다면, [서유기]는 도대체 원본을 제대로 번역한 것이 있기나 한지가 난감하다. 실상을 알고 보면 여느 중국 고전들 못지 않게 방대한 분량(2000쪽 내외)을 자랑하는 본작이 한국에서 제대로 번역된 적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재 그런 판본을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대신 다행히도 연변대학의 교수진이 합동으로 번역한 판본은 나와있다.

이 판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연변 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한국문화사에서 그대로 수입한 것(전4권)이고 또하나는 동반인 출판사에서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편집과 교열을 거쳐 펴낸 것(전6권)이다. 전자의 경우는 활자나 인쇄상태 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대략 우리의 60년대 출판물을 보는 듯하다. 반면 후자는 편집도 말끔하게 다시 했고, 특히 지금 남한의 것과 적잖이 다른 맞춤법, 표기법들도 수정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후자를 추천한다.

연변대학 교수진의 중국 고전 번역물은 이미 정평이 나있어서 아무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다. 그중 [삼국지]와 [수호지]는 청년사, [서유기]는 동반인, 그리고 [홍루몽]은 예하를 통해 90년대에 각각 간행되었다. 왜 이렇게 각각의 출판사를 통하게 되었는지는 속사정을 알 수 없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서유기]만큼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이므로 일반독자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더구나 이 동반인 출판사의 판본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도 맺은 것이라니 마음이 가볍다.

작품에 대해서는 다만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만을 옮기고자 한다. [서유기]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그저 재미로 가볍게 읽는 이에게도 본작은 더없이 흥미진진한 판타지물이다. 기실 [서유기]야말로 동양 판타지 소설의 최고봉이 아니겠는가. 보다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이에게 역시 본작은 그만큼의 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근대소설의 기반을 다지고 있을 무렵, 동양의 명나라에서는 바로 이 작품이 쓰여지고 있었음을 상기해가며 읽는 재미는 또 다르다.(비슷한 시대의 작품으로는 [금병매]가 있다.)

그러나 어린이용 만화 소재로 각광받는 [서유기]를 [삼국지]같이 비장한 대하극과 함께 4대기서 혹은 6재자서로 꼽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역시 활극과 둔갑술 뒤에 슬그머니 깔아놓은 도저한 깊이일 것이다. 기본틀부터가 불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며, 중국 것이니만큼 당연히 유교와 도교도 섞여있다. 한 주역 전문가 교수에 의하면 저자가 주역에 통달했음을 요괴의 이름이나 지명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하며, 여타 중국 고래의 신화와 전설들도 즐비하다.(각주를 참고하지 않고는 이런 사정을 모르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가히 동양사상과 신화, 전설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서유기]의 진면목인 것이다.

더불어 그것이 지니고 있는 풍자문학적 성격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별다른 벼슬자리 없이 일생을 딸깍발이 선비로 살았다는 오승은은 그만큼 기층민중들의 정서에 가까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더구나 시대는 명나라 말엽, 부패한 왕조가 마지막 숨을 이어갈 당시였다. 결코 선비정신이니 군자의 풍모와는 연결지어 생각할 수 없는 손오공 등의 캐릭터는 이러한 당대의 사회현실을 바탕으로 반영웅을 고대하는 민중의 염원으로부터 탄생한 것일 터이다. 이 모든 복잡다단한 요소들을 판타지 모험극이라는 외양 속에 태연하게 감추고 있는 [서유기]야말로 기서(奇書) 중의 기서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중국/도교의 신화와 전설에 관련된 용어를 정리한 참고글 : 이곳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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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1 - 신역
시내암 / 청년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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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삼국지]가 청년사에서 낸 '중국 고전선'의 1-6번을 달고 있다면, 그 뒤로 7-13번을 달고 있는 것이 [신역 수호지]이다. 이 판본도 마찬가지로 연변대학의 조선어문 교수진들로 구성된 '연변대학 수호전전 번역 소조'의 공동번역물이다. 당연히 한문 원본으로부터의 직역이고, 토속적이고 고아하며 잘된 번역이다.

또한 저본 역시 가장 내용이 길다는 120회본의 상해 인민출판사 판이다. 시중의 다른 판본들의 경우 일부 내용이 생략되어있는 100회본이나 70회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완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일부가 빠져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외한다고 치더라도 만화판이나 수많은 축약발췌본을 논외로 한다면 2002년 4월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완역본 수호지는 선택의 여지가 매우 좁다. 특히 이문열 평역본을 이런저런 이유로 저어하신다면 대안은 이 판본 외에 김홍신 역본, 재출간 예정이라고 하는 김구용 역본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이 판본도 이미 전권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 이 판본에 따른 양산박 108 두령 색인 : 이곳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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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삼국지 2
나관중 지음 / 청년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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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삼국지를 읽고 싶어할 것이다. 처음 시도해보려는 이도 있고, 만화로만 봤다가 소설로 제대로 읽어보려는 이도 있고, '복습'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 요즘의 판본들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특히 이문열 평역본이 내키지 않는다면? 여러 해 전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이 청년사 간 연변 판(전6권)이었다. 결과적으로 참 운이 좋았다.

우선 이것은 정본이다. 만화야 아예 다른 장르로 옮긴 것이니 별개겠지만, 삼국지 정도의 고전을 평역이니 축약이니 해서 이본으로 읽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정본을 다 읽은 후에 이본을 찾는 경우는 제외하고.) [파우스트]를 복거일 평역본으로 읽고 싶겠는가? [불멸]을 이인화 축약본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나겠는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소제목 하나까지 멋대로 고치지 않은 엄연한 정본이다.(중국 고전들의 소제목은 언제나 길다란 문장으로 해당 단원을 요약해놓은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소제목만 봐도 정역인지 멋대로인지 눈치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연변대학 '삼국연의 번역조'가 집단번역해낸 작품이다. 일어본으로부터의 중역이 물론 아닐 뿐더러 집단번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간다. 흥미로운 것은 연변의 동포들이 번역한 것인 만큼 고풍스럽고도 토속적인 문체의 맛이 잘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일제시대 소설들 정도를 생각하면 안되고, 그보다는 현대적이면서도 경박하게 반짝대지 않는 딱 적절한 수준이다.

아쉬운 것은 출간된 지가 좀 지나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 판본 외에 다른 번역본을 새로 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참고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여타의 판본 중에서는 김구용 선생의 [정통완역본 삼국지연의](전7권, 솔 출판사)가 가장 충실한, 혹자의 말로는 남한에서 번역된 것으로는 유일하게 정역을 한 판본이라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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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칼 1 - 존 디풀의 모험, 그래픽 노블 01
뫼비우스 외 지음, 이세욱 옮김 / 교보문고(교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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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한 것이 1980년이라고 하니까 80-90년대의 그 많은 SF/환타지 물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이 본작 [잉칼]이다. 그림을 담당한 뫼비우스가 만화가일 뿐 아니라 [에일리언], [제5원소]에도 참여했다는 점, 글을 담당한 조도로프스키가 만화 작가일 뿐 아니라 그 기기묘묘했던 영화 [성스러운 피]의 감독이기도 하다는 점은 흥미거리를 넘어 [잉칼]을 이해하는 주요열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 둘이 힘을 합친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만화가 이루어낼 수 있는 성과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내용적으로 보면 SF, 모험, 환타지의 모든 장점들을 끝까지 밀어올리다 못해 드디어 그 윗단계라고 할 종교, 신비, 초월의 세계에까지 도달해버렸다. [에반게리온]과 [매트릭스]를 통해 이제 익숙해진 광경이지만, 1980년이라는 연표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는 물질문명 발달의 극한치에 근접한 서양사회가 서서히 동양이며 참선이며 정신세계 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러한 '터닝 포인트'에 본작은 깃발을 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환점을 돈 서양인들은 물론, 그들이 왜 우리를 향해 다시 뛰어오는지 영문도 모른 채 여전히 반환점이 종착점인 줄 착각하고 정신없이 내닫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이 작품은 필독을 요한다.

형식적으로 보아도 [잉칼]은 완벽한 작품이다. 우선 감지되는 것은 놀라운 밀도이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는 걸 묘사하는 데에만 종종 한두 페이지를 소비해버리는 일본과 한국의 극화들에 비한다면 본작의 컷 전개는 몇 배의 밀도를 보유하고 있다.(두 권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이 점을 감안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만으로도 매 컷마다의 복잡성과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더구나 올 컬러판이다. 페이지마다의 컷 구성도 천양지차여서 무슨 일련의 형식실험을 보는 것 같다. 상업적 연재만화의 그렇고 그런 관습들과 정반대로 치닫는 이러한 특징들은 복잡하고 심오한 스토리와 화학작용하며 고도의 완성도를 이루어내고 있다.

좋은 질의 종이에 잘 인쇄된 한국판의 외양도 마음을 놓게 해준다. 이세욱씨의 번역은 능수능란하여 노련미까지 느껴지고, 편집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나우시카], [아키라], [공각기동대], [총몽], [에반게리온]들중 하나에라도 매혹을 느꼈다면, 혹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중 하나에라도 환호한 기억이 있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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