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길
베르나르 포콩 사진, 앙토넹 포토스키 글,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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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된 게 2001년, 원서가 만들어진 건 2000년이니까 그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신선했을 수도 있다. 여행기는 모름지기 이국적인 풍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경탄과 비교(한국과의)여야 하고, 여행사진은 마땅히 쨍하고 환해야 한다고 여겼던 옛 관행에 비추어보면 당시로선 새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철저히 주관적인 감성으로만 이루어진 글과 사진, 오로지 여행 중의 소소하고 사적인 느낌, 감정, 생각으로만 채워진 이런 글과 사진을 우리는 90년대 중반 이래 이미 많이 보아왔다. 새로울 건 없고 그렇다고 별달리 남는 것도 없다. 책장을 덮는 순간 글과 사진은 호르르 증발되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내용 자체의 부실함이 결국 원인일 것이다. 한때 연출/합성사진의 중진이었던 사진가는 힘을 쫙 빼고 일회용 카메라로 틱틱 눌러놓았을 뿐이다. 레이소다 가면 하루에 수십, 수백장씩 올라오는 류의 것이다. 젊은 필자의 감수성 가득한 글 또한 그 감수성이 전부다. 글과 사진이 별로 어울리지도 않아서 과연 같이 여행한 게 맞긴 한지 의문이 들 정도다.

카피에는 마치 전세계를 여행한 듯 나와있지만 이 또한 기대 이하다. 미얀마와 쿠바가 아주 잠깐 등장할 뿐, 여행지역의 대부분은 프랑스어가 통하는 북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국한되어있다. 하긴, 이런 류의 책에서 어느 나라인지가 얼마나 중요할까만. 그저 남는 시간에 대충 넘겨볼 만한 가벼운 읽을거리 이상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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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온 태교 선생님 - 송금례 교수의 다중지능 태교법
송금례 지음, 이은영 그림 / 넥서스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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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그것도 첫 아이를 가지게 되는 산모와 그 남편의 긴장감과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죠. 더구나 예전처럼 시댁에 들어가 살지도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은 요즘, 전화로 친정에 어디에 물어보는 데도 한계가 있겠지요. 

네, 책이 또 한 권 필요해집니다. 앞으로 들어갈 어마어마한 비용들, 수고들, 시간들에 비하면야 책 한 권 사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죠.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인륜지대사이니만큼 믿을 만한 내용이 아니면 또 곤란합니다. 임신과 출산, 태교에 관한 책을 고른다는 것은 그래서 종교서적 고르기만큼이나 신중해집니다.

이 책은 그래도 권할 만은 합니다.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부분은 없습니다. 부정확해보이지도 않고, 부산스럽다거나 뭔가 찜찜한 구석 없이 믿고 참고할 만합니다. 다만 그만큼 무난한 것이 전부라는 느낌도 있네요. 내용들 대다수를 아마 어디선가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잘 정리되긴 했지만 몰랐는데 꼭 알아야 했던 그런 내용은 별로 없어요.

그래도 임신체조 따라하기, 모유수유 준비, 자연분만 준비같은 부분은 실질적이고 요긴할 것 같네요. 주별, 월별로 알아둘 것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구요. 부록 CD도 한 장 따라오네요. 네, 이미 많은 것을 찾아보시고 신경쓰신 분들께 크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 책 정도를 첫걸음으로 여기기엔 충분히 듬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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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s (Hardcover)
Josef Koudelka / Phaidon Inc Ltd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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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를 수 없는 비범한 감각의 소유자이자 흉내내기 힘든 천성적 방랑자인 사진가에 의해 탄생한 흑백 파노라마 사진의 결정판. 

한 번 본 사람이라면 (프로든 아마추어든) 누구나 617 파노라마 열병을 앓게 만든다는 마서(魔書). 

특히 세로 파노라마에 있어서는 달리 전범을 찾아보기 어려울 독보적인 경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역시, 짚시들을 망명자들을 누구보다도 애잔한 시선으로 포착해냈던 작가가 거의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황량하고 고담스러운 풍경으로 눈을 돌린 이유, 심정, 배경. 

파노라마 사진 혹은 '뻔한 다큐멘터리' 이후의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들춰봐야 할 필수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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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살뜸 - 육명심 사진집
육명심 사진 / 눈빛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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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계의 원로 육명심 선생의 사진집 중 꼭 한 권만을 추천하라면 선집인 [육명심]을 들겠다. 94년에 나온 것이 있고 2000년에 나온 것이 있는데, 아쉽게도 모두 절판이다. 현재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다시 고르라면 [장승], [검은 모살뜸], [문인의 초상] 중에서 이 책으로 하겠다. 사진 자체만을 집중적으로 감상하기에는 세 번째 것이 좀 떨어진다. 나머지 둘 중 사진 보는 재미로는 아무래도 이 책이 더 나을 것 같다. 

[장승]이 말 그대로 한국의 장승들을 찍은 사진집이지만 결코 민속학 자료집이 아니듯, [검은 모살뜸]도 제주도의 검은 모래찜질하는 모습들을 찍은 사진집이지만 결코 문화인류학 자료집이 아니다. 오히려 둘 다 고전적인 흑백사진 미학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장승 하나를 찍고 모래찜질하는 풍경을 찍어도 대가의 것은 이렇게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기념할 만한 소재 위에 감탄할 만한 화면구성과 빛, 그리고 특히 [검은 모살뜸]의 경우 질감까지가 형식미를 한껏 발한다.

이들보다 앞선 '백민' 시리즈까지 합쳐 '장승' 시리즈와 '검은 모살뜸' 시리즈는 작가의 "우리 것" 3부작이다. 그 중 이 책이 가장 뒤의 것에 해당하는데, 83년과 94년에 이어 2008년에도 추가촬영을 함으로써 이 책이 탄생했다. 똑같은 제목으로 여러 해 전에 나온 것이 있는데(역시 절판) 이 책이 개정증보판에 해당한다. 책의 어디에도 각각의 사진을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는 밝혀져있지 않지만, 서문으로 짐작하건대 대충 이러이러한 사진들이 최근 것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결론적으로 한결 풍부해졌겠구나 싶다. 

제책방식이 특이하다. 하드커버의 뒷면만을 속지에 접착해놓았다. 그 밖에도 책 전반에 걸쳐 상당히 신경 쓴 디자인임을 알 수 있는데([장승]과 동일한 디자이너에 의한 동일한 제책방식이다), 다 좋지만 내구성은 불안하다. 여차하면 떨어지기 쉬워 접착제가 동원되어야 할 판이다. 하나 더 아쉬운 점이라면 인쇄 품질인데, 이것만 놓고 보면 충분히 좋아보이지만 선집 [육명심]에 비해서는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장승]에 비해서는 한결 안정적이다.(개인적으로 [장승]은 아예 인화부터 다시 했으면 좋겠다. 무리한 닷징이 남발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진인화 담당자라는 이철수 씨에게 왜 이렇게 해놨는지 좀 물어보고 싶다.)

이렇게 되면 시중에서 전혀 구경할 수 없는 것으로 '백민' 시리즈가 남았다. 이것이 출간되면 우선순위에 조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나의 추천은 [검은 모살뜸]이다. 노대가의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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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로서의 사진 시공아트 47
샬럿 코튼 지음, 권영진 옮김 / 시공아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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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진'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찍은 사진을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자료나 기록을 위해, 기사나 책을 위해, 광고나 홍보를 위해 등등 다른 목적을 갖고 실용적 용도로 찍은 것이 아닌, 그리고 그저 취미나 소일거리, 연습이나 숙제로 찍은 것도 아닌, 오로지 예술작품이 되고자 하는 목적만으로 찍은 사진이 예술사진이라고 정의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영어로는 'Fine Art Photography'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순수사진'이라고도 하지만 대체 뭐가 순수냐 하는 논란만 일으키기 좋은 명칭이라고 본다. 

이런 류의 사진은 사진이 발명된지 얼마 후부터 있었다. 없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스스로 예술이고자 하는 사진의 몸부림은 끝없이 이어져왔다. 때로는 그림을 흉내내고, 때로는 그림과 어떻게든 다른 길을 모색하고, 또 때로는 그림과 영상과 글과의 경계를 묘하게 침범하거나 뒤섞기도 하면서 (어떤) 사진은 집요하게 예술로서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애써왔고, 이제 이런 노력은 거의 완전히 결실을 맺은 듯도 하다. 요즘 시대에 "사진 따위가 무슨 예술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려면 어지간한 용기로는 어렵게 됐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꽤 어려워졌다. 그저 예쁘고 아름답게, 멋지고 절묘하게 찍은 사진은 예술 축에도 못 낀다. 대체 이따위걸 뭐하러 찍었나 싶은데 알고 보면 사진 한 장에 수백 수천만원이라니 입이 떡 벌어진다. 이상의 <오감도>를 읽고 20세기 초의 한국인은 욕을 해댔다. 지금은 인상은 찌푸려도 감히 욕을 하지는 못한다. 딱 그런 상황이 사진계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무시하고 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만약 궁금하다면 이제는 책을 들고 공부를 할 차례다. 이쯤부터는 대충 어떻게 되지가 않는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개념미술, 현상학, 포스트 모더니즘 등 별의별 예술적, 학문적 경향들로부터 다 영향을 받아들인 현대 예술사진은 이제 마음껏 느끼는 것만으로는 독해가 불가능한 지경에 들어서버렸기 때문이다. 

추천할 만한 책이 두 권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만한 것이 이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이다. 설명도 딱 적절한 분량과 수위이고 수록된 사진도 분량이 상당하다. 책값도 부담이 없으며 번역에도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현대 예술사진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이 한 권은 읽고 나야만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추천할 만한 것이 [예술사진의 현재]다. 설명을 곁들인 사진모음집 같은 성격이라 더 비싸고 크고 고급스럽다. 

그밖에도 수많은 자료가 있겠으나 일단은 첫걸음만 소개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예술작품이기를 작정한 사진과 사진가들에 대한 이론서(별로 어렵지는 않지만)이니만큼 수위조절은 필요하다. 이제 막 사진을 찍는 데 취미를 붙인 이들에게는 다른 많은 참고서들이 준비되어있다. 참고로 두 책 모두에 한국 사진가도 몇 명 소개가 되고 있으니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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