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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찾아서
박정석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딴에는 여러 미덕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한국인이 쓴 인도네시아 여행기라는 게 그리 흔한 물건도 아니고, 여행을 위해서건 교양을 위해서건 이런저런 정보들도 적당히 배치해두었다. 넉넉하게 자리잡은 컬러 사진들에 더해 책 디자인이 하도 그럴싸해서 올해의 비주얼 부문 후보로 추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고, 재치있는 글재간은 최소한 결코 지루하게는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알량한 여행이나마 몇 번 해본 사람들이 남의 여행기에서 가장 원하는 것 하나가 빠져있는데, 그게 좀 치명적이다. 공감. 발리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 대한 가지가지 정보에 호기심이 동하면서도, 여행기치고는 퍽 튀는 글재간 구사에 낄낄거리면서도 결국 남는 생각은 하나다. 이런 사람과 같이 여행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혹시라도 여행지에서 만나게 된다면 금세 제갈길을 가고 싶어질 거라는 느낌.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 저자의 여행관과 여행방식은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어서, 이를테면 상도 받은 적이 있는 소설가라는 이력이 영 의심쩍은 대사 처리 방식이나 여러 차례에 걸친 여행담을 뒤죽박죽 섞어놓아 괜한 데 이해력을 허비하게 만드는 구성 따위보다 한결 심각하게 여겨진다. 도대체 15년 여에 걸쳐 50여개국을 여행해본 구석이라고는 좀체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의 연작기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도 숙소의 인테리어에 집착하고 화장품을 한 보따리 들고 가서는 무겁다고 낑낑대며 해변 말고도 좋은 곳이 많다면서 거의 해변에서 뒹군 얘기만 늘어놓고 심지어 동식물 불법반입을 공모한 사실을 자랑삼아 공표하는지, 나로서는 아리송한 것 투성이다.
저자는 반격한다. 하드코어 배낭여행만을 선이라 믿는 흑백논리는 재수없다고. 그저 다 취향일 뿐이라고. 하지만 일개 소설가이고 더구나 인문사회계열 박사라는 자가 여행기를 냈다면 하룻밤 숙박비로 몇백 달러를 쓰면서 고작 몇 달러를 깎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게 바로 나라는 식의 슬며시 디비주기로 의무를 이행했다고 자부해서는 곤란한 것 아닐까. 내가 듣고 싶은 쪽은 오히려 팔십 노구에도 의연히 코모도 행 단신 여행길에 오른, "목적이 사라질까봐 두려워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저자에게 "사라지면 목적을 또 하나 만들면 되지"라는 가치 있는 잠언을 전한 프랑스 할머니(6부에 등장)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 취향이라고 해두자. 50개국을 여행했으면서도 5번째 바캉스를 온 듯한 여행방식도, 20대 초반의 대학생에게나 어울릴 가벼움을 사뿐함이라 믿는 모양인 30대 중반 지식인의 사고방식도 그저 스타일 차이에서 오는 혼선이려니 여기고 말자. 하지만 취향이란, 내가 아는 한, 모름지기 여러 가지 중에서 취사선택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봐온 것이라고는 메이드 인 헐리우드밖에 없으면서 키에슬로프스키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미국인을 두고 "그의 취향은 헐리우드"임을 인정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취향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