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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 중국을 누빈다 5
광뚱여행출판사 엮음, 김택규 외 옮김 / 예담차이나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광동에 사는 중국사람들이 만든 가이드북의 번역본인 이 책은, 여행 가이드북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얼마나 흉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귀한 표본사례라 부를 만하다. 겉보기엔 그럴싸하다. 티벳만을 352쪽에 걸쳐 자세히 다룬 여행 가이드북이라니, 그것도 중국에서 나왔으니 어쩌면 더 확실할 지도 모르고, 이것 외엔 2005년 8월 현재 대안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2002년판이라는 한계만 제외하면 티벳 여행을 꿈꾸는 이들로선 응당 시선이 고정될 법도 하다.(티벳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혜초여행사에서 [티벳]이라는 제목의 괜찮은 가이드북을 2004년에 내긴 했다. 하지만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회수를 해버린 통해 현재로선 여행사에 직접 연락해서 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은 가히 가관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1959년 민주개혁을 통해 봉건농노제를 폐지하였다." 한심한 티벳인들을 중국이 구원해줬다는 소린데, 이거 20세기 초반에 조선이라는 땅에서 일본인들이 했던 소리의 개정판으로밖에 알아들을 도리가 없다. 시종일관 이렇다. 중국 덕에 티벳에 도로도 생기고 댐도 생기고 경제도 발전하고 하여간 무지무지 좋아졌다는 흉포한 서술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티벳 여행이 아니라 티벳 해방운동에 동참하게 만들고야 만다. 정치적 사정은 그렇다고 하자. 여행 가이드북이라면, 그 찬란한 티벳 사원의 대다수가 왜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되고 있는지 일말의 언급은 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랬다면 이 책은 원본부터가 발간되지 못했을 테지만.
이 뿐이 아니다. 티벳의 지명과 인명을 최대한 중국식으로 표기해놓아 어디가 어디고 누가 누군지 알아먹기가 곤란하다. 이를테면 갼체를 장쯔로, 사키야를 싸자로, 남쵸를 나무춰로, 총카파를 쭝커바로 쓰는 식이다. 이래서야 갼체 가서 갼체 어떻게 가면 되냐고 물어봐야 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2개나 준 데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정보의 양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라싸~카트만두 구간의 유명지역들은 물론이고, 북서쪽에서 남동쪽에 이르기까지 티벳의 구석구석을 이 책만큼 골고루 소개하고 있는 티벳 관련 한국어 가이드북은 아직 없다. 혜초여행사의 [티벳]도 다루고 있는 지역은 이 책의 반 정도밖에 안된다. 올컬러에 풍부한 사진이 곁들여진 것도 강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미 티벳의 주요지역 여행을 마치고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준비하는 분들, 그 중에서도 포악한 서술을 너끈히 참아낼 수 있는 인내력의 소유자들만 보면 될 책이다. 티벳 여행자의 대다수에게 이 책은 오해, 혼란, 그리고 분노만을 야기하기 안성맞춤이다. 론니 플래닛 티벳 영문판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만일 그것이 괜찮다면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줄어들어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