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로콜리너마저 - 2집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 스튜디오 브로콜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말(언어)'은 브로콜리 너마저에게 사랑과 관계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중요한 매개물인 것 같다.
어린 소녀가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음미하는 표지의 1집에서는
사랑과 이별의 기억을 "말들"로 더듬어가며 섬세한 떨림과 흔들림의 느낌을 담았다면,
푸른잉크 한 방울이 동그랗게 떨어진 듯한 표지의 2집은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좌절된 소통과 말의 한계에 대한 피로와 불안, 상처를 담고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덕원의 보컬이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런 분위기가 더 고조된다.
소통의 좌절은 오해나 실수 같은 단지 어긋남의 문제라기보다는,
서로 "누구도 위로할 수 없고",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근본적인 불능의 문제인 듯하다.
내 안에는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있지만,
"꼭 맞는 만큼만 말하고 싶"어도, 결국 "나의 말은 자꾸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나"게 되어버린다.
"말같지 않은 말"들로 인해 "약한 사람"들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해야 하고,
사람들은 무심하게도 그건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니까요"라고 말해버린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도 될 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같이 울어주는 것"뿐임을 안다.
이런 좌절감과 패배감은, 환절기와 졸업이라는 표제가 상징하듯
어떤 경계에 위태롭게 걸쳐 있을 약한 브로콜리들의 힘겨운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상처입은 읊조림 가운데에서도 타인에게 나즈막하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래도 울지마"라고. "말같지 않은 말"들에 상처입을 필요 없는 거 아니냐고.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한다고.
바로 내가 "널 잊지 않을" 거라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라고.
2집은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말 같지 않은 말들에 상처 입은
약한 브로콜리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위로이다.
p.s. 1. <졸업>의 후렴구는 너무나 큰 위로다.
2. 근데 정말 잉크 냄새가 심하다!!!
.....................................................
+ 나는 가사 위주로 듣는 편이라 보컬과 사운드 얘기를 거의 안 했는데 몇 가지 추가.
계피가 빠진 브콜에 대해 호불호가 엇갈릴 텐데 개인적으로 아래의 평가에 동의한다.
http://gall.dcinside.com/indieband/93799
어쩌면 소품 느낌이 드는 곡이 많았던 1집에 비해, (반으로?) 보컬 비중이 줄어든 만큼
원래의 성격인 밴드 사운드가 강화된 것 같다.
물론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색깔이 담겼던 속에서
특유의 서글픈 색조를 지녔던 계피의 보컬이 그립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