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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ㅣ 범우문고 173
데카르트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9년 1월
평점 :
학교 다닐 때부터 무수히 들어왔던 데카르트. 그의 책을 이제야 접한다. 얇은 문고본이라 가볍에 집어들긴 했으나 철학자라는 타이틀이 나의 손을 떨리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학교에서 배울 때가 아니라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러서이다. 아무리 이것저것을 의심해 보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의심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라던가? '소피의 세계'라든가 '드림 위버'와 같은 책으로 인해-난 후자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심심치 않게 철학을 접해 본 다음이기에 이 책도 집어들 수 있었다.
여튼 읽은 소감을 말하라면? 만족이다. 방법서설은 그야말로 데카르트의 저서의 앞 부분에 서문으로 쓴 내용이다. 이 짧은 부분의 내용으로도 데카르트의 소심한(?) 귀여움이 엿보여 읽는 내내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이해력이 맞다면 말이지만.
다만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은 번역은 너무 아쉬운 점이다. 2002년에 초판이 나오고 벌써 2판 1쇄에 접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은 전혀 수정되지 않은 모양이다. 누구누구처럼 번역의 허술함을 비판하며 선뜻 원서를 집어들 만한 실력이 있다면 걱정이 없겠으나 영어 실력이 워낙 미천한지라 새로운 번역서가 나오길 기다릴 뿐이다. 다른 책에서 '범우사'에서 나온 '방법서설'을 추천받은지라 이 책을 읽긴 했는데 다른 출판사의 번역은 어떤지 모르는 일이긴 하다. 조만간 제대로 된 번역본을 발견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데카르트는 자기가 기존에 받아들인 모든 지식을 소멸시킨 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지식의 토대로 마련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떨치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을 권하는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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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그렇지만 여행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 나중에는 자신의 나라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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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재치있는 답변인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우리들조차 떠돌이로만 살아간다면 우리 나라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집시처럼 방랑하며 사는 것을 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여행과 이방인의 관계를 저렇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의 파급 효과를 보고 책의 출판을 망설이는 데카르트의 모습은 인간적인 면이 물씬 느껴진다. 게다가 토련이라는 방식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진리를 뭔가 하나라고 발견했다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그의 용감한 발언을 보고 있으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진리를 얻는 데는 무엇보다 본인의 노력과 탐구만한 것이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기인한 생각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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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나 지식욕 때문에 도와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서는 지원자는 대개 자신이 실행할 수 없는 약속을 하고,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할 훌륭한 제안을 할 뿐만 아니라, 그 보수로 반드시 몇 가지 어려운 문제의 설명리라든가, 적어도 인사치레나 쓸데없는 대화를 요구해 오며, 이 때문에 낭비되는 시간은 결코 적은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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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실제적인 답변인가. 어설픈 호의는 서로에게 해가 될 뿐이니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경우에만 덤비자는 말 아니던가. 역시 의욕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그는 어설픈 도움보다는 학문을 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제적 지원이나 해 주라고 충고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악평만은 모면하자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박장대소가 터질 지경이다.
번역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걸 후회하진 않는다. 다들 데카르트의 생각을 살짝 엿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