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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말발이 끝내주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당장 수유 너무로 달려가 그녀와 함께 공부를 하고 싶어집니다. 냉철한 언변과 유머러스한 풍자까지.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또 다른 그녀의 책을 찾아보게 됩니다. 책에서 살짝 언급한 대승기신론소의 한 구절이 지쳐있던 제 어깨를 죽비처럼 내리치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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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1 "두 번재 화살을 맞지 마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희로애락은 그 자체로는 번뇌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거기에다 자신의 전도망상을 덧씌움으로써 스스로 번뇌를 쌓아간다. 그게 바로 두 번째 화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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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이라고 하던가요?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앗'하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내세울 만한 종교가 뚜렷하게 없는지라 맞는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저 구절을 보며 무릅을 쳤습니다. 이제껏 제가 힘들어 하던 일의 태만은 두 번째 화살이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물론 두 번째 화살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당장 그 두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와 모르고 있을 때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 구절이 한 동안 저의 수첩에서 저를 고이 바라보고 있을 듯합니다.
또한, 무엇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일삼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어쩜 저리도 통렬히 비판을 하게 하는지요. 그녀의 비판을 듣고 있다보면 나의 치부를 들여다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 욕을 듣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그녀가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규교육을 받으면서 그리도 하기 싫던 공부가 마구 하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부디 저의 아이에겐 함께 이야기하고 책을 읽는 공부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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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3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 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는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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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녀는 말합니다. 공부 역시 그러하다고. 무엇무엇이 되기 위해서 무엇무엇을 얻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이지요. 백배 공감입니다. 그녀가 들려 준 '페이'라는 화폐를 쓰는 인디언들의 이야기도, 모든 장소에 머무르기보다 모든 장소를 없애버릴 줄 아는 경지에 오른 성인들의 이야기도 한동안 저의 화두가 될 듯 합니다. 공부하고 싶은 모든 분들, 공부가 하기 싫어 죽을 것 같은 모든 분들,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님들,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자사자 입시에 매달리는 사람들 모두가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강권해 봅니다.